[엄태윤 칼럼] 한.미 경제기술동맹은 윈윈이 되어야
2022-10-09 19:01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에 대한 글로벌공급망 재편작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2021년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공급망구축 회의를 시작으로 해서 삼성·TSMC 등 세계 반도체 선두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유치 작업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방한 시에도 현대자동차 등 국내 간판 기업들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기존 평택공장과 중국공장을 제쳐두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다 파운더리 공장을 세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국가안보는 물론 경제안보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경제안보와 국가안보를 동일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지난 9월 12일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이제 경제안보 문제는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냉전체제에서는 미·소 간 경쟁에서 군사력 증강이 중요했으나, 구소련이 붕괴한 이후 세계 각국의 주요 관심사는 경제문제이다. 경제력을 등에 업은 중국의 대국굴기 도전에 직면해 있는 미국은 미·중 간의 첨예한 패권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동맹국들과 함께 글로벌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다자주의 외교 노선을 지향하면서, 쿼드(Quad), 오커스(AUKUS),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 동맹 등을 통해 군사·경제 분야에서 반중국 전선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를 중시하는 이유는 미래산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를 막지 못하면, 조만간 미국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까지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된다는 의미는 군사력 우위도 곧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 정부는 중국에 결코 경제패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글로벌공급망 재편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자국 우선주의 성향을 보여 걱정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가치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대미 투자 확대와 칩4 동맹에 참여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IRA에 따르면, 미국 내 일자리를 더 창출하기 위해 동맹국의 기업들에 차별적 대우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칩4 예비회의에 참석하였고, 한국기업들도 대미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에 대한 IRA의 차별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 중국은 “한국이 칩4 동맹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칩4 동맹’이 중국의 반도체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며 노심초사한다. 윤 정부가 미국의 글로벌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도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바이든 정부와 경제기술동맹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 “한국 전기차가 IRA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글로벌공급망재편 과정에서 한국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한·미 간에도 윈윈(Win-Win)전략이 바람직하다. 바이든 정부는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이 희토류 분야에까지 글로벌공급망 재편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6월 미 정부는 한국, EU, 일본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MSP)’을 출범시켰다.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MSP 장관급회담에 박진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그 까닭은 중국이 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채굴, 중간공정(정·제련) 등의 글로벌공급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편중된 핵심광물의 공급망을 분산시키자는 취지이다. 희토류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풍력, 태양광 등 미래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원이다. 희토류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없이는 미래산업 제품들을 생산할 수 없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나, 향후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에 이어 희토류까지 글로벌공급망의 주도권을 놓고 힘을 겨루게 되었다.
지금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 봉쇄, 미국의 글로벌공급망 재편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에 따라 세계 각국의 환율 가치가 하락하면서 경제에 적신호까지 겹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극심한 에너지난과 치솟는 물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비중이 높은 프랑스와는 달리, 러시아 가스에 의존해 왔던 독일이 러시아의 가스중단 위협에 더욱 난감해하고 있다. 곧 혹독한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 가스를 대체하는 방안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으며, 원자력 에너지의 중요성을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한국과 같이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는 에너지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원자력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재인 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문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내 원전산업의 경쟁력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흑자 기업이었던 한전이 문 정부 5년 만에 최악의 적자기업으로 변했다. 국민도 전기세 인상에 걱정이 많다. 윤 정부는 원전 정책을 원래대로 복원하고 원전산업의 경쟁력 회복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가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를 강화하고 있고. EU도 ‘EU 배터리 여권제’, ‘유럽 주요 원자재 법’ 등 각종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윤 정부는 해외에서 추진 중인 글로벌공급망 재편 문제와 관련된 각종 법안에 대해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난 9월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한·캐나다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향후 미·중 간은 물론 전 세계 각국 간에도 핵심광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캐나다 정상회담이 본격적인 해외 자원외교의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광물자원 부국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이 시급하다. 윤 정부는 미·중 간의 기술패권경쟁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 시장 자본주의, 국익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대한민국의 나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미 간의 경제기술동맹은 윈윈관계가 되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특임 강의교수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