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 배상책임 첫 인정
2022-09-29 13:05
1950년대부터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을 상대로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기지촌 위안소' 운영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이 70년 만에 인정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9일 이모씨 등 95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원고들에게 각 300만원∼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 등은 1957년부터 미국 주둔지 주변의 상업지구인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일본군 위안부와 구분하기 위해 '미군 위안부'라고 불렀다.
이들은 경찰들이 성매매 알선업자와 유착했고, 도망친 여성들을 잡아서 다시 성매매 알선업자에게 넘기는 행위도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정부가 면세 주류를 제공한 것 역시 방조 혹은 지원이라고 했다.
또 컨택으로 지목된 여성을 강제경리 상태로 치료한 것은 위법하다고도 주장했다. 컨택은 성병에 걸린 미군이 자신과 성매매한 여성을 지목하는 것으로, 상대 여성은 강제 격리됐다.
1심은 당시 시행되던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에는 강제격리 대상자에 성병 환자가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다른 여성들의 청구의 경우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국가가 성매매를 중간 매개하거나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1심보다 배상 범위를 넓혔다. 이에 따라 43명에게는 각 300만원, 74명에게는 각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는 기지촌 내 성매매 방치·묵인을 넘어 적극적으로 조장·정당화했다"며 "이씨 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나아가 성으로 표상되는 이들의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성병 감염 여성을 격리 수용한 부분도 "의사 진단 없이 강제 격리 수용하고 항생제를 무차별 투약한 행위는 위법하다"며 1심보다 책임을 넓게 인정했다. 양측은 항소심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 심리 중엔 원고 22명이 소를 취하해 판결 당사자가 95명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이날 "정부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및 성매매 정당화·조장 행위는 법 위반일 뿐 아니라 인권 존중 의무 등 마땅히 준수돼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양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또 국가의 이러한 행위는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해 이에 대한 국가 배상 청구는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