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한물간 유원지에 '예술'을 입혔다…가을냄새 물씬 '안양예술공원'

2022-10-14 00:00
2000년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국내외 건축가·예술가 60여명 참여
'지붕없는 미술관' 관광명소로 활기
'안양파빌리온' '전망대' 대표작 눈길
도슨트 투어·기념 스탬프 찍는 재미도

작품명 '리.볼.버'. 삼성산 중턱에 설치된 투명한 원통 구조물 두 개를 교차해 만들었다. [사진=기수정 기자]

올가을 안양(경기)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이들조차도 헤어나올 수 없게 하는 매력이 바로 이곳 안양에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데, 곳곳에 예술품이 들어앉아 메말라가는 감성을 살며시 자극한다. 폐부 깊숙이 전달되는 몽글한 낭만이 부유하는 공기만큼 신선함을 안기는 그곳, 안양예술공원이다. 

◆전성기 누리던 안양 유원지, 왜 쇠락했을까

안양예술공원 전신인 '안양유원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30년대(일제강점기)로 잠시 거슬러 올라간다.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안양역장이었던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는 삼성천을 막아 천연 수영장을 만들고 '안양풀'이라고 이름 붙였다. 피서객을 끌어모아 막대한 철도 수입을 챙기려는 목적이었다. 

바윗돌과 콘크리트로 둑을 쌓아 천연 수영장을 만들고 계곡 양쪽에 계단식으로 돌을 쌓아 피서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둑에는 청소 등을 위해 물을 빼낼 수 있는 일종의 수문을 만들어 놓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풍부한 수량과 숲을 품은 삼성천 계곡에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천연 수영장이 생기자 단연 인기였다. 1969년 정부가 이곳을 국민 관광지 '안양유원지'로 지정하면서 명실상부 수도권 최고 피서지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에는 한 해 평균 100만명이 이곳에 몰려들었을 정도로 서울과 수도권 인근 여름철 피서지로 명성을 날린 곳이 바로 이곳 안양유원지다. 

하지만 안양유원지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77년 유례 없는 대홍수가 안양유원지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천연 수영장이 참혹하게 파괴되면서 옛 모습을 완전히 잃었고, 1984년에는 국민관광지 지정이 취소됐다.

그렇게 안양유원지가 누렸던 영화는 가슴속에 묻힌 추억이 됐다.
 

덴마크 작가 예페 하인이 설치한 거울미로. [사진=기수정 기자]


◆'예술' 옷 갈아입고 '안양예술공원'으로 재탄생

잠들었던 안양유원지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안양유원지 정비 사업'을 통해서다. 이름하여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안양예술공원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APAP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회복하고 예술과 건축이 어우러진 휴식 공간을 지향한다. 첫 회에 세계 각국 건축가와 예술가 6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유원지 일대에 영구 설치 작품 50여 점을 선보였다.

안양예술공원이란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예술가가 참여하니 '추억'만 남았던 폐허 공간이 '낭만'과 '감성'의 옷을 입고 명실상부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디 그뿐이랴. 공원 곳곳에 스며든 예술작품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 '인증사진 촬영 명소'로 주목받으면서 국내외 여행객이 이곳 안양예술공원으로 몰려들었고 침체한 분위기도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국내 아이돌그룹 골든차일드와 태국 인기 록밴드 뮤직비디오를 이곳 안양예술공원에서 촬영한 이후 태국인 관광객이 100명 정도 몰려왔다. 또 안양예술공원이나 #anyangartpark 등을 검색하면 게시물이 수천 장에 달할 정도다.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이란 제목이 달린 이 작품은 예술공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사진=기수정 기자 ]


◆천천히 걸으며 마주하는 작품들···메마른 감성 자극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것 그 이상으로 얻어가는 것이 있다." 여행자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일 터. 유원지에서 예술공원으로 탈바꿈한 역사를 귀담아들었으니 이제 그 속살을 들여다볼 차례다. 그저 풍광에 취해 발길 이끄는 대로 무작정 걷는 것만으로는 안양 여행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초록빛 잎사귀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이 따스하고 부유하는 공기가 청량한 오전, 본격적으로 안양예술공원 나들이에 나섰다. 

안양예술공원 탐방은 예술공원 공영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차장 입구에는 다양한 관광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는 '관광안내센터'가 있고, 그 옆에 높게 솟은 철제 구조물이 있다. 이 구조물도 작품이다. 작품명은 '1평 타워'로, 프랑스 작가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가 한국의 면적 단위인 한 평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예술공원 탐방을 위해 무장애나눔길로 들어섰다. 기존에 500여 m에 이르는 나무 데크길이 있었는데 안양시가 200여 m 연장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울창한 숲을 따라 조성된 길 양옆에도 공공예술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양예술공원 안에는 여행자 관심을 끄는 작품이 즐비하지만 안양예술공원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안양파빌리온'과 '전망대'라고 할 것이다. 안양파빌리온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의 작품이고, 전망대는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의 작품이다. 특히 안양파빌리온은 APAP 역사와 주요 작품을 전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조성됐다. 

전망대는 삼성산 주변 빼어난 풍경은 물론 안양 시내와 공원 전체를 조망하는 공간으로 이곳을 찾는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 전망대를 설계한 MVRDV는 과거 서울역 고가도로를 시민공원 '서울로 7017'로 재탄생시킨 주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코 프라워토의 '안양 사원'은 대나무로 둘러싼 돔 형태 구조물이 인도네시아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품었다. 

볼프강 빈터와 베르트홀트 회르벨트의 '안양상자집'은 다양한 색으로 된 음료박스를 재활용했다. 단순히 빈 음료박스를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작품의 진면목이 빛을 발한다. 햇빛이 비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빛줄기가 그 색을 달리하며 여행자 마음을 매료시킨다. 

이승택의 '용의 꼬리'는 전통 가옥의 기와지붕을 활용해 전설 속 용의 비늘처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기와지붕이 마치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은 '용'의 역동적인 형상처럼 보여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투명한 원통 구조물을 직각으로 연결한 '리.볼.버'는 총구를 형상화했다.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잇는 산책로를 복합 구조물로 완성한 아콘치스튜디오의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은 기하학적인 조형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투명한 원통 모양 터널을 지나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구성된 공연장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조명이 들어오는 저녁 시간에는 더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안양파빌리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성된 작품은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APAP 누리집(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그저 걷기보다는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공원 곳곳에 자리한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안양예술공원 스탬프 투어를 통해 주요 건축물에서 기념 스탬프를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사진=기수정 기자]

독일 작가 볼프강 빈터와 베르트홀트 회르벨트가 설치한 작품 '안양상자집-사라진 탑에 대한 헌정'. 음료 상자를 재활용해 만들었다. [사진=기수정 기자]

작품명 '용의 꼬리'[사진=기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