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망쳐도 채용해요"… 신세계‧카카오도 쓰는 '평판조회 플랫폼'

2022-09-13 06:00
윤경욱 스펙터 대표 인터뷰
면접 30분간 지원자 진면목 파악 못해
전 동료들의 업무 역량·인성 평가 활용
1년 반 만에 1800개 기업 평판조회 이용

윤경욱 스펙터 대표 [사진=스펙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쉽게 말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찰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을 배운 물리학도인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이 이론을 채용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구직자란 없으며, 회사에 따라 맞느냐 안 맞느냐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표가 평판조회 플랫폼 ‘스펙터’를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창업한 첫 회사를 폐업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이 재취업에 실패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동료임에도 면접에서 자기 PR(홍보)를 하지 못해 탈락할 때면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동료들에게 알맞은 회사를 이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스펙터 개발로 이어졌다.
 
윤 대표는 최근 아주경제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채용 시장의 불공정을 해결하고 싶었다”며 스펙터 개발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허울 좋은 동료들이 정작 실속 있는 동료들 보다 좋은 회사에 취직했을 때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면접 시간 30분 안에 지원자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대표가 찾은 해답은 ‘평판 조회’다. 면접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지원자의 실제 업무 역량, 성향, 인성 등을 평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업 인사 담당자가 스펙터에서 지원자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만 입력하면 지원자의 동의 하에 그동안 재직했던 회사의 인사권자나 팀장, 동료들이 작성한 평판을 열람할 수 있다.
 
평판은 객관식과 주관식을 합쳐 총 65문항으로 구성된다. 단 스펙터의 질문은 절대적인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를 따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원자의 업무 스타일이 내근형인지 혹은 외근형인지, 성향이 리더형인지 혹은 팔로워형인지를 묻는다.
 
윤 대표는 “우리나라는 리더형 인재가 돼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면접에서 누구나 자신이 리더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회사는 좋은 팔로워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스펙터를 이용하면 전통적인 관점의 인재상에 맞는 지원자가 아니라 회사가 진정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윤경욱 스펙터 대표 [사진=스펙터] 

이 같은 장점 덕분에 스펙터를 이용하는 기업 회원은 신세계·카카오 등 대기업을 포함해 총 1800개사를 넘어섰다. 2021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이룬 성과다. 윤 대표는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이 활발해지면서 기업들의 채용 부담이 늘어난 점이 호재로 작용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면접이 늘면서 지원자에 대해 추가 검증을 하고자 하는 수요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스펙터의 개인 회원은 2만5000여명, 누적 평판 데이터베이스(DB)는 10만여건이다. 평판 조회를 ‘당하는’ 개인 회원 입장에서는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서비스 이탈률은 2.8%에 그친다. 스펙터 이용 후 채용 당락이 뒤바뀐 경험을 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서비스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도 스펙터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벤처 투자 위축 흐름 속에서도 스펙터는 지난달 6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해 총 83억원의 누적 투자금을 확보했다. 윤 대표는 이를 통해 서비스 고도화 및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스펙터는 현재 베트남과 싱가포르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추진하며, 내년 상반기 사업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구직자가 자신의 학력‧경력‧수상내역 등을 스스로 관리하고 증명할 수 있는 구직자 전용 커리어 브랜딩 서비스 ‘마이스펙터’를 선보일 계획이다.
 
윤 대표는 “기업에서 면접 시 탈락시키려 했던 지원자의 평판을 보고 채용했다는 후기를 많이 전해온다.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자부심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며 “향후 HR 분야뿐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 네트워크 분야로 평판 조회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