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인간 욕망·방향감각 상실의 시대 투영한 최우람 작가 '작은 방주'

2022-09-13 00:00
최우람 작가의 신작 49점(설치·조각 12점, 영상·드로잉 37점) 등 총 53점

‘작은 방주’ 앞에 선 최우람 작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개인은 자유로움을 찾는 동시에 (누군가가) 좀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특징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수만년 전이랑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죠.”

최우람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자신을 태워줄 방주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최 작가가 우리 눈앞에 만들어낸 움직이는 ‘작은 방주’로 상상은 잠시나마 현실이 됐고, 많은 생각을 남겼다.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윤범모)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를 내년 2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지난 9일 개막한 전시는 최 작가가 2013년 서울관 개관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로 1년간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를 선보인 이후 약 10년 만에 돌아온 서울관 전시이자, 2017년 국립대만미술관에서의 마지막 개인전 이후 5년 만의 전시이기도 하며, 첫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이다.

최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생명체(anima-machine)’를 제작해왔다.

김경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기술 발전과 진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의 관점은 지난 30여년간 사회적 맥락, 철학, 종교 등의 영역을 아우르며 인간 실존과 공생의 의미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됐다”고 짚었다.
 

각기 다른 인간의 욕망에 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은 방주’ [사진=전성민 기자]

세로 12m에 달하는 대형 설치작인 ‘작은 방주’는 이런 작가의 철학이 집약된 작품이다.

최 작가는 지난 7일 열린 간담회에서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다”라며 “그것이 우리를 아름답게도 하지만 욕망이 항상 충돌한다. 모순적으로 자유를 원하면서 평등도 원한다”라고 말했다.

‘작은 방주’는 ‘등대’, ‘두 선장’, ‘닻’ 등 배 또는 항해와 관련된 여러 오브제가 함께 설치되어 ‘방주의 춤’을 다각도로 설명하고 인간의 모순된 욕망과 출구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질문한다.

‘작은 방주’는 검은 철제 프레임에 좌우로 35쌍의 노를 장착하고 노의 말미에 흰색을 칠한 폐종이상자가 도열해 있는 큰 배 혹은 ‘궤’의 모습이다. ‘방주의 춤’은 흰 종이 노를 몸체에 바짝 붙이고 정지했다가 서서히 노를 들어 올리며 장엄한 군무를 시작한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방주의 춤’도 마지막에는 결국 처음 모습으로 돌아간다.

최 작가는 “순환 속에 있는 우리들 모습을 방주와 움직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라며 “욕망을 균형 있게 공유한다면 조금 더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코로나와 이상기후 등 동시대의 위기 속, 방향 재설정과 같은 시의적절한 질문을 끌어내고 따스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예술가의 역할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프리즈 서울’ 기간 서울관을 방문한 전 세계 미술관 관장들이 최우람 전시를 감동적이라고 평가했다”고 귀띔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국내 중진 작가 한 명(팀)을 지원하는 연례전이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 2016년 김수자, 2017년 임흥순, 2018년 최정화, 2019년 박찬경, 2020년 양혜규, 2021년 문경원&전준호에 이어 2022년에는 최우람이 선정됐다.

특히나 올해는 로봇에 진심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최우람 작가가 만나 더욱 기대를 모았다. 최 작가는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 분들이 정말 많은 자문을 해줬다”며 “모터를 사용할 때 하중이 얼마나 될지 등 방주를 만들 때 수학적으로 풀어야 하는 부분을 많이 도와주셨다. 후원으로 7년 전 생각했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도록에 실린 인사말을 통해 “이번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이 기술 자문으로 참여하여 ‘인류를 향한 진보’에 기여하고자하는 현대자동차의 바람이 전시를 통해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머리가 없는 지푸라기 몸체가 등으로 원탁을 밀어 올리는 ‘원탁’과 코로나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착용한 방호복을 만드는 타이백(Tyvek) 섬유로 만든 꽃잎 모양의 ‘하나’ 등 총 53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에이로봇, 오성테크, PNJ, 이이언, 클릭트, 하이브, 한양대 로봇공학과 등과 기술협력을 통해 완성됐다.
 

'원탁', 2022 [사진=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