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이재명 소환'과 '김건희 특검'
2022-09-07 07:54
"김건희 특검법과 함께 나에 대한 특검도 받을 수 있다."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것으로 전해진 말이다. 이어 민주당은 지난 5일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별검사법 도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이미 민주당 ‘처럼회’ 소속 강경파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개별 의원들의 발의일 뿐, 당 차원의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었다. 그러던 민주당의 입장이 순식간에 ‘김건희 특검법 당론 추진’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러한 급선회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 통보 떄문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대표에 대한 소환 조사를 ‘정치보복’이며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은, ‘눈에는 눈, 이네는 이’ 식의 ‘여당보복’의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대신 이 대표에게는 불출석할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이같은 결의에는 의아한 대목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재명 대표와 김건희 여사가 어째서 한 묶음의 패키지가 되어 정치적, 사법적 거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과 관련된 의혹은 같은 사건도 아니요, 전혀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다. 이 대표가 소환 통보를 받은 사건은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에 대한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공소 시효 만료가 9일이면 종료되니, 기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직접 조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해야 한다는 이유는 ‘주가조작’와 ‘허위경력’ 의혹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과 관련된 혐의나 의혹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헌집 줄께 새집 다오’ 하는 식으로 ‘이재명 소환’과 ‘김건희 특검’을 주고받으려 하는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을 받으면 자신에 대한 특검도 받을 수 있다는 이 대표의 발언은 그래서 생뚱맞게 들린다. ‘김건희 특검법’은 하자고 하면서 이 대표는 검찰에 나가지 말라는 민주당의 결의는 더욱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해 김건희 여사를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민주당이 가장 곤혹스러워할 부분을 건드렸으니,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가장 곤혹스러워 할 김건희 여사 문제를 건드리겠다는 신호를 발신한 셈이다. 문제는 두 사람 관련 사건을 패키지로 묶었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민주당이 제기한 ‘김건희 특검법’의 내용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물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먼저 ‘허위경력’ 문제는 공소시효 자체가 만료되었기에 아주 단순하게 결론내릴 수 있는 사안이다. 최근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불송치 결정을 하면서 ‘해당 대학에서 채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와 함께 ‘공소 시효 만료’를 이유로 밝혔다. 아무리 특검을 한들,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을 뒤엎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비판과 의심의 대상이 뒤바뀌었다. 민주당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불공정하다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경찰과 검찰이었다. 특히 검찰에서의 수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시절에 검찰총장은 수사지휘에서 배제한 채 이성윤·이정수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맡겨서 수사했던 사안이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통제 아래에서 경찰과 검찰을 거치면서 수사는 진행되었지만, 범죄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진즉에 무혐의 결론이 내려졌다는 전언이 파다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사 결과 발표는 마냥 미루어지고 윤석열 정부의 검찰로까지 넘겨지게 된 사건이다. 윤석열 정부 검찰의 불공정 수사를 의심하기 이전에, 문재인 정부 시절에 매듭지었어야 할 수사를 어째서 장기화하고 표류시켰는지, 대선 과정에서 무혐의 결론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닌지를 오히려 의심해야 할 판이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 시절에 매듭지었어야 할 일을 회피해놓고서, 이제 새삼스럽게 특검을 하자고 나서는 민주당의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의 부인이니까 위법이 있었어도 덮고 넘어가자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대통령에게야 불소추 특권이 있지만, 그의 부인은 위법을 했으면 법적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지금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서 제기하는 의혹들이 과연 특검을 해야 할만한 기본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민주당이 그동안 강경파 의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특검법 추진에 신중했던 것도 자칫 과도한 정치공세로 비쳐져 여론의 역풍이 불 수 있음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표 소환 통보에 대한 야당의 경계심과 우려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해도, 그렇다고 함량미달의 특검법을 무기로 꺼내드는 민주당의 모습은 자칫 정치적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 합리성은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공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강성 팬덤 지지층만 의식한 극단주의적 초강경 노선의 길만 질주하다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강경한 질주를 멈추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합리적이고 균형있는 길을 가는 것이 민주당이 살 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고언을 했다. 그런데 지금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선거 3연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도로 민주당’의 모습 그 자체이다. 이재명 대표에게 소환 통보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꺼내들더니, 마침내는 윤석열 대통령을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소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직선거법상의 공소시효가 9일로 만료된다는 것은 민주당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검찰더러 어떻게 하라는 얘기였을까.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던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이런 것이었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장면들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