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고인돌 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2-09-07 07:58
아무리 모양을 갖춘 격식 있는 고인돌이라고 할지라도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져 흙에 덮이고 비바람에 떠밀리다보면 각각의 돌덩어리로 해체되기 마련이다. 널부러진 모습은 보통사람들의 눈엔 그냥 자연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오래 전부터 다수의 고인돌이 있는 인근 동네 주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축대 담장 등 필요한 곳에 가져다가 사용했을 것이다. 한반도는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남아있는 고인돌의 나라인 까닭이다.
북방식(탁자식)과 남방식(바둑판식) 어쩌구 하며 소싯적에 배웠던 기억까지 들추었다. 고인돌 실물이 생각나서 인천시 강화섬으로 갔다. 하점면 부근리에는 교과서의 사진으로 보던 그 고인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덮개돌의 무게가 53톤이며 길이 7.1m 너비 5.5m인데 전체 높이는 2.6m정도다. 굄돌 두개가 남북 방향으로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문패처럼 달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은 그 무게 위에 권위까지 더해준다.
온 김에 안내판을 따라 주변에 있는 고인돌 흔적을 따라서 걸었다. 크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거의 부분적 파편이 대부분이다. 바닥에 누워 흙에 파묻힌 채로 등짝 혹은 옆구리만 내놓은 채 가을햇살에 반짝인다. 고인돌도 무덤인지라 추석을 앞두고 거의 벌초가 끝난 상태였다. 대부분 자연석을 연상케 하는 고인돌에는 사각형 철로 만든 보호용 담장이 낮게 쳐져 있고 표지석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 몇 백미터 간격을 두고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옛무덤을 뒤에 두고서 근처에 새로 만든 무덤도 보인다. 고대인들은 각진 돌무덤을 만들었고 현대인들은 흙으로 둥근 봉분을 만들었다. 옛날과 지금이 시간을 초월하여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방(方사각모양)과 원(圓둥근모양)이 함께하는 공간도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마지막 번호표가 붙은 곳은 철제 보호담장도 없이 그대로 노천에 노출되어 있다. 자연스러운 본래 모습 그대로다. 그저 그런 평범한 고인돌을 보려고 마지막 고인돌까지 찾아오는 이가 얼마 되지 않기에 굳이 보호용 담장이 필요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또 마지막 고인돌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의 정성에 보답하느라고 원형 그대로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내친 김에 인근 내가면 오상리에 있는 고인돌 구역까지 들렀다. 크기는 부근리 대표 고인돌보다 작았지만 완성형 고인돌 5~6기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모습이 가족묘처럼 더없이 정겹다. 탁자형 고인돌의 전형을 보여 준다. 부족장급은 아닌 것 같고 동네 촌장급 정도는 될 것 같다. 사람의 실물 크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규모였다. 특히 굄돌과 덮개돌이 분리된 채로 해체되어 남아있는 고인돌은 그 자체로 조립을 위한 설명서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 굄돌과 작은 덮개돌이 완성형으로 한쪽 구석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앙증맞은 막내 고인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하면서 정감까지 듬뿍 준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