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물, 빛, 바람이 머문 '붓다의 언덕'
2024-11-26 06:00
작년(2023)년 여름 어느 날 강원도 원주의 오크밸리 리조트 안에 있는 ‘뮤지엄 산’을 찾았다.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일본출신의 유명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1941~) 특별전 관람을 위해 일부러 갔었다. 강원도를 오가는 길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그냥’ 훌쩍 들리는 곳이라 나름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안도 다다오는 공업고등학교 졸업 학력과 아마추어 권투선수 트럭 운전수 이력을 가진 건축계의 이단아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근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1887~1965 스위스 출신. 프랑스에서 활동) 작품집을 접하고서 ‘내가 할 일은 이것이다’라는 영적인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절 가난했던 청춘은 당장 그 책을 구입할 만큼의 돈이 수중에 없었다. 그래서 혹여 다른 이에게 팔릴까봐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한 쪽 구석에 감추어 두었다. 한 달 후에 다시 와서야 비로소 그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건축기행과 독학으로 건축학을 공부했다. 1969년 건축사무소를 낸 후 80살을 훨씬 넘긴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미 돌아가신 코르뷔지에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서 정진했던 것이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은 그의 아이콘이다. 그동안 회색 콘크리트는 건물의 골격 역할만 부여되었으며 겉은 마감재로 가려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를 밖으로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많은 공정을 줄일 수 있는 혁명적 발상이 대중의 각광을 받으면서 현대건축의 흐름까지 바꾸었다. 기존 건축이론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기존교육의 틀에 편입되었다면 그의 천재적 창작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멸되면서 그저 그런 주변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건축가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수십만평 넓은 부지는 공원묘지 였다. 입구에는 칠레 이스터 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을 세웠고 한 켠에는 영국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까지 재현했다. 공원은 1980년대 조성했다고 한다.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안도 다다오에게 혼자 덩그러니 외롭게 앉아있는 높이 13m 무게 1000톤이 넘는 거대한 불상의 주변을 장엄할 수 있는 작품을 의뢰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과 기존 조형물을 살리는 선에서 뭔가 추가적인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거리가 덜어지는 듯 같지만 사실은 더 늘어나는 지난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것저것 실험을 거듭한 흔적을 ‘뮤지엄 산’에서 스케치로 이미 보았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붓다의 언덕’이다. 완만하게 만든 인공 경사지 중앙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불상의 머리만 보인다. 그 언덕에는 봄이면 파릇한 신록으로 덮히고, 여름에는 라벤더 꽃이 보랏빛 카펫를 만들며, 겨울에는 하얀 눈이 이불처럼 내려앉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늦가을 언덕은 말라가는 잎들만 바랜 빛으로 겨우겨우 남아있는 그저 그런 밋밋한 풍광이었다.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60도 각도로 세운 벽은 기둥 한 개 한 개를 요철(凹凸) 배치하면서 오목함과 볼록함이 서로 겹쳐지도록 했다. 가운데는 뻥 뚫린 지붕없는 돔 양식으로 만들었다. 달이 뜨는 날은 법당 안으로 달빛이 쏟아질 것이며, 바람이 부는 날은 그대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비가 오는 날은 비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 내리는 날에는 불두와 어깨 그리고 무릎에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도록 하여 노천불상의 원래 의미도 그대로 살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잘 생긴 부처님 얼굴을 보면서 내는 염불소리는 에코가 되면서 즉시 실내 음악당으로 바뀌었다. 실내 기능과 실외 풍광을 동시에 만족시킨 건축이었다.
본래 집이라고 하는 것은 비와 바람을 막고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지어졌다. 또 보온과 안전을 위하여 문의 크기는 최소화 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단열기술이 발달하면서 창문의 크기는 넓어졌고 자연채광을 통해 실내를 환하게 만드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바깥의 바람 그리고 눈·비와 단절되면서 완전히 자연과 격리된 공간에 대한 심리적 불만층도 늘어갔다. 뺨에는 바람이 스쳐가고 마당에는 눈이 쌓이고 처마에는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그리워하는 자연주의자들을 위한 집들도 등장했다. 안도 다다오는 공공건물에 빛과 바람과 눈비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건축계의 선구자로 불리운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