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론스타 배상 판정의 뼈 아픈 교훈 … 민심보다 법이다
2022-09-06 06:00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배상금은 론스타가 청구했던 금액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나 사건 중재판정부가 이렇게 기업에 호의적이고 관료주의에 반하는 판결을 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 측이 자체적인 법률이나 국제법을 어겼거나, 최소한의 합의된 기준을 위반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금전적 보상이 사과(apology)로 해석될 수 있다면 과연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그저 사과만 하면 되는 오래된 역사적 문제인가? 아니면 어떤 변화를 위해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며 추이를 지켜봤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들이 의외로 느껴지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통념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지난주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판결문을 발표한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대부분 보도는 소송에서 진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수 있는지, 론스타 측과 연루된 누가 정치적 오점을 남겼는지, 그리고 정부가 항소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비난과 연루에 관련된 테마는 오직 타블로이드 미디어에서나 보도할 가치가 있는, 도덕적으로 비열한 주제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는 가능한 한 납세자가 내야 할 돈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ICSID 판결에 항소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관해 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론스타 논란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래된 사안일 뿐 아니라 극도로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원적인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은 마치 침실에서 모기를 잡는 것과 같다. 하얀 벽에서 발견된 모기가 갈색 장롱으로 날아가더니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찾아내야 한다. 이를 찾는 데 실패하면 결과가 따르기 때문이다.
우선 간략하게 스토리의 배경을 짚고 넘어가자.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IMF 위기 이후 한국에 처음 투자할 때 론스타는 환영받았다. 한국 납세자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사라졌을 회사와 일자리들을 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사모펀드를 가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또 경험도 부족했기에 이에 관한 이해가 미흡했다. 그러나 론스타는 기본적으로 '부실자산'을 매입했다. 마치 그것은 운전자들이 원하지 않는 손상된 자동차를 사서 수리한 다음 이익을 위해 운전자에게 판매하는 것과 같았다. 2003년 론스타는 이런 식으로 정부조차 돕지 않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약 14억 달러, 시세 대비 13%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지분 51%를 사들였다.
2006년에 이르러 수리 과정을 마친 외환은행은 적절한 은행에 매각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론스타가 HSBC에 매각하기 위해 금융당국에 공식적으로 승인을 신청했을 때 당국은 의도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으며 사실상 매각을 막았다. 그로부터 6년 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할 수 있게 되자 그 가치는 2006년 74억 달러에서 2007년 61억 달러로 줄어들었고, 2012년에는 19억5000만 달러(약 2조200억원)로 가격이 내려갔다. 가치 하락은 불행한 것이지만 정부 잘못은 아니었다. 이론적으로, 최종 가격은 더 높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주요 포인트가 아니다. ICSID 사례의 핵심은 정부가 론스타에 승인을 내주거나 또는 인가를 거부하였을 때 적절한 설명을 일정한 기간 내에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단순히 통상적인 관행 위반이 아니라 금감원 자체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외환은행 매각을 고의로 저지한 행위는 한국 법에 의하면 불법이었다.
당시 금융당국은 언론에 론스타 관계자에 관한 형사사건이 계류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사건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상관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얄팍한 핑계에 불과했다.
의사결정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규정을 완전히 어기지는 않았더라도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두 번째 질문으로 이끈다.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질문을 해야겠다. 왜 그들은 고의로 법을 어겼나?
바로 민심(Public Sentiment) 때문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전에 계열사 외환카드는 쓸모가 없어 구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수 후 금융감독 관계자들은 은행의 미래 사업을 위협함으로써 카드 부문을 살릴 것을 강요했다. (이것 역시 불법일 수 있겠지만 관료적 위협은 일반적인 관행이다.)
카드사 구조조정을 하며 론스타는 직원 중 8명을 해고했다. 이들 중 일부는 '투기적 외국 자본'에 반대하는 운동가(activists)로 바뀌어 언론에 흥미롭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들에 따르면 론스타는 비참한 IMF 위기에서 이익을 얻어내는, 한국의 피를 빨아먹은 탐욕스러운 뱀파이어였다. 한국의 불행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교활하게 벨기에에 펀드를 등록하고 한국이 아닌 벨기에에서 수익에 관한 세금을 낼 것이라면서. '과도한 이익' '먹튀'와 같이 귀에는 쏙 들어오지만 법적으로 황당한 생각들로 뒷받침되었던 이 메시지들은 민심의 야수적인 면을 깨웠다. 곧 나라 전체가 열정적으로 론스타를 증오하게 되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언론이 아니라 정부 부처, 경찰, 검찰, 그리고 가장 확실한 법원에 의존하여 법의 정신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우리 중 증오받는 사람들을 폭도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일들은 항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관습적으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공화적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국민들의 동의' 측면은 '관습에 의한 정부(government by institutions)'나 '법치주의(rule of law)'보다 강력하다.
민심이 크고 분명할 때 기관들은 이에 복종해야 한다고 느낀다. 정의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에 맞서기 이전에 먼저 고개를 숙인다. 관료들은 개인적으로는 언론의 비난을 피하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와대, 국회, 세무서, 검찰 등 여러 기관은 모두 민심에 복종해야 한다고 느낀다.
법은 이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널리 해석될 여지가 있게 모호한 언어로 쓰여 있다. 그래서 정부 기관은 엄밀하게 법을 따를 수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민심에 순응하는 것이 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더 강력한 민주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행위를 도덕적으로 생각하여 이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론스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기관들은 민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 여겼다. 그래서 일례로, 검찰은 론스타의 한국인 직원들을 소환하여 그들을 심하게 압박했다. (필자는 검찰이 쓰라고 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에게 서서 벽을 향하라고 지시한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몇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검찰들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매우 의심스러운 판결 속에서 론스타의 한 임원은 주가 조작으로 수감되었다. 세무당국은 론스타의 벨기에 법인이 “페이퍼컴퍼니”라고 판단하고 세금을 부과했다. 이것은 국제 금융계뿐만 아니라 벨기에 이외 외국 정부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이런 문제애 대해 반론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 그리고 특히 전 세계 투자펀드 커뮤니티에 대한 한국의 명성은 진흙탕에 빠졌다. 실제로 이를 회복하는 데에도 몇 년이 걸렸다. 물론 기업인들은 대중에게 결코 부정적인 모습을 내비치고 싶어하지 않기에 겉으로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1990년대 후반부터 추진하던 금융허브에 관한 주제는 농담처럼 취급되어 왔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솔직히 한국 정부의 다수가 이 모든 이야기와 그 과정 그리고 현재를 필자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현 상황을 바꿀 기회가 찾아오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민심이 여전히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사건은 아직 5건 더 존재한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선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기를 희망한다. 즉, 법이 민심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김양희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