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긴급조치 9호' 국가배상 책임...대법, 7년 만에 판례 변경

2022-08-30 15:27

김재형 대법관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2022.8.30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유신정권 때 발령한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일 뿐만 아니라 민사적 불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가는 당시 체포‧처벌 등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15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례가 7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A씨 등 71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5년 5월 제정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거나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청원‧선동‧선전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A씨 등은 이같은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한 피해자들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3년 긴급조치 9호에 대해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등을 심각하게 제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2015년 3월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 등이 2013년 제기한 이번 소송과 관련해 1심은 1년 넘게 심리한 끝에 2015년 3월에 나온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그해 5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사건 하급심에서는 2013년 나온 대법원 전합 판례를 근거로 정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 수사와 공소 제기(기소), 유죄 판결의 선고를 통해 현실화했다"고 긴급조치 9호가 민사상 불법행위임을 못박았다.

이어 "긴급조치 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써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긴급조치 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