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인플레 급등 부유세로 극복?

2022-08-25 07:00
아시아 비즈니스 리뷰

로렌스 웡 싱가포르 부총리 [사진=로렌스 웡 페이스북]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싱가포르 차기 총리로 낙점된 로렌스 웡 부총리 겸 재무장관(49)은 지난 2월 상위 1%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그의 관심사는 ‘포용적 성장’이다.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저소득층 생활고가 우려되는 만큼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차기 총리 “부자와 고소득자 세금 더 내야”
웡 부총리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하면서 “(정부는) 좀 더 포용적인 성장으로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12년 0.41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찍은 뒤 2020년 0.35, 2021년 0.36을 기록하는 등 싱가포르 소득 불평등이 크게 개선됐지만 경제·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는 고물가 영향에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고 있지만, 더 큰 소득을 가진 사람들, 즉 부자와 고소득자는 더 많이 내야 할 것”이라며 “정부 지출이 저소득층 등 더 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웡 부총리 발언이 나오기 한 주 앞서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물가 상승에 저소득 가구가 대처하도록 돕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리 총리는 최근 국경일 연설에서 “정부는 취약 가구가 인플레이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전망이 악화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포용적 성장은 웡 부총리 개인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 방향임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올해 초 부유층 상위 1%에 대해 세금을 인상한 바 있다. 이렇듯 세금 인상을 강조하고 나서는 데는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가 자리 잡고 있다. 블룸버그는 “싱가포르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며 “이번 회계연도에 예상되는 재정적자는 약 3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GDP 대비 0.5%에 달한다”고 전했다.
 
웡 부총리는 인플레이션이 연말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물가가 더 오르면 정부가 추가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웡 부총리는 특히 지정학적 긴장감 고조, 공급망 혼란 등으로 인한 고물가 고착화를 우려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완화할지, 또 새로운 물가 상승률이 어느 수준에서 안착할 것인지 등이 큰 불확실성”이라며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새로운 균형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웡 부총리는 올해 4월 중순에 이른바 4G(세대) 팀 리더로 임명돼 리 총리 후계자가 됐다. 총리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 지도부나 소속 의원들의 추인을 통해 확정된다. 리 총리는 지난 4월 페이스북을 통해 "로렌스가 나를 이어 총리가 되는 것은 아마도 다음 총선 전후가 될 것"이라며 "그것(총선)은 2025년으로 예정돼 있으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웡 부총리는 차기 총리로 지명된 후 이뤄진 6월 정책 연설에서도 평등과 안전망 구축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당시 “소수가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와 시스템을 보기를 희망한다”며 소득과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인플레이션 고공 행진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MAS)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작년부터 긴축통화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정부는 지난 6월 저소득층·취약계층 지원, 가구당 640 싱가포르달러 현금 지원 등을 골자로 한 15억 싱가포르달러(약 11억 달러)에 달하는 패키지를 발표하는 등 물가 상승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물가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MAS와 통상산업부는 이달 23일 성명을 통해 싱가포르의 7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4.8% 상승하며 13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올랐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전망치인 4.7%도 웃돌았다.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경제학자들 예측과 동일한 7%를 기록했다. 6월 근원 인플레이션과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각각 4.4%, 6.7%였다.

블룸버그는 “웡 부총리가 이어받을 싱가포르 경제는 고물가와 성장 둔화로 씨름하고 있다”고 짚었다. 여론 조사 기관인 블랙박스 리서치가 지난 5월 20세 이상 싱가포르 국민 7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약 55%가 정부가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10명 중 9명은 인플레이션이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문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달 초 2022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긴축정책과 중국 경제 회복 지연 등 글로벌 경제 환경 악화가 수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2분기 GDP(확정치)는 전년 동기보다 4.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웡 부총리 역시 이번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리스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성장 리스크가 커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6월 정책 연설에서도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강력하게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강한 역풍으로 (기대는) 날아갔다”며 “우리는 우리나라 여정이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2월 부유세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이번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적자가 30억 싱가포르달러(GDP 대비 0.5%)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관련 지출에 약 1000억 싱가포르달러를 투입하며 2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회계연도까지 적자가 되면 3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프랑스계 금융회사인 나타시스(Natixis S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찐 응우옌은 “싱가포르가 약간 적자를 예상한다는 것은 재정 흑자 전환보다는 경제 회복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10월 또 긴축" 전망 
경제학자들은 MAS가 오는 10월에도 긴축에 나설 것으로 본다. 블룸버그가 8월 15~18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인플레이션이 내년 1분기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10월에도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이다.
 
올해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추정치는 기존 4.9%에서 5.6%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2022년 GDP 성장률 전망치는 3.7%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2023년은 이전 추정치인 3%에서 2.8%로 낮췄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가레스 레더는 “하반기에 성장세가 살아나긴 하겠지만 글로벌 수요 냉각과 더 높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약할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다만 별도의 설문조사에서 경제학자들은 금융 중심지로서 싱가포르가 홍콩 대비 경쟁력이 있다고 답했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뱅킹그룹의 아시아 연구 책임자인 쿤 고는 싱가포르가 최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점을 높게 평했다. 중국이 본토와 홍콩 등지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엄격한 국경 통제와 검역 조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