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물폭탄] 도시계획·교통 전문가 "결국 문제는 예산이다"

2022-08-09 15:40
현재 기준 30년 빈도…최근 기후변화 반영하는 기준으로 바꿔야
"관로 늘리는 것 당장이라도 가능…장기적으로 저류시설도 키워야"

서울 강남 지역 도로가 집중호우에 제대로 배수되지 않아 잠겨버렸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쳐]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중심 입지로 꼽히는 강남에서도 그 피해가 심각했다. 강남구 서초동에서 해탈한 표정으로 침수된 차 위에 앉아 있는 남성이 인터넷에서 밈(Meme)처럼 확산했으며, 비교적 열악한 주거 지역에서는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도시공학계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기후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분석과 함께 문제는 결국 '예산'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 교수는 “최근 기후가 변화하고 있는데 기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30년 빈도 기준을 쓰고 있는데, 이번 강우만 해도 80년 만에 최고로 많이 내렸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기준이 '30년 동안 가장 많이 내린 비의 양'에 맞춰져 있어 대응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특히 강남 지역은 저지대인 상황에서 간선관로(하수나 오수가 최종 처리 시설로 집적될 때까지 주로 이동하는 관)와 저류시설(빗물을 일시적으로 모아 두었다가 바깥 수위가 낮아진 후에 방류하기 위해 설치하는 유입시설, 저류지, 방류시설 등)이 특히 미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치역을 예로 들며 “삼성동 등을 지나면서 대치역으로 내리막길이 계속되는데, 결국 근처 물이 전부 대치역 쪽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며 “이 물이 양재천으로 다 흘러가야 하는데, 관이 작아 결국 역류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문제는 예산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상황에 서울시는 최근 들어 수방과 치수 관련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2022년 예산서'에 따르면 시는 올해 수방과 치수 분야에 4202억원을 배정했는데 2021년 5099억원보다 897억원(17.6%) 줄어든 규모다. 최근 서울 지역에 큰비 피해가 없긴 했지만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대책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에 내린 폭우는 150년 빈도에 해당하는 천재지변 성격으로 현재 강남역 일대 방재 성능 용량을 크게 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에서 편성·제출한 수방 예산 4450억원 중 248억원(5.9%)이 시의회에서 삭감돼 통과됐다”며 “서울시는 수방과 치수 안전대책을 강화하고자 제2회 추경 편성 시 수방 예산 292억원을 복원해 긴급 추가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치수예산 삭감은 서울시 측 뜻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는 “기준을 200년 빈도로 늘리면 좋겠지만 예산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준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되 조사를 통해 침수 지도가 나올 테니 생명과 직결된 쪽을 우선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유 교수 또한 예산에 따라 100년이나 50년 등 차등적으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선 관로를 키우는 것이 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예방은 의지와 예산 문제로, 관로를 키우는 것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며 “이후 장기적으로는 도시 내 저류시설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화가 진행되며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녹색공간이 많이 줄었다”며 “오픈스페이스(설치한 공터나 녹지 공간)를 추가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