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스페셜 칼럼] 30년지기 한국과 중국 ... 미래 30년이 문제다
2022-08-11 16:32
8월 24일은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지 30년 되는 날이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중국은 요즘 한국과 미묘한 외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항상 '수교 30주년을 맞는 이웃 친구'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중국과 수교한 181개 나라 중에서 2022년에 수교 30주년을 맞는 나라가 15개나 되고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다.
6·25전쟁 때 한국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중공'이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경제 교류가 확대되면서 '중국'이라고 불리면서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한때 중국이 한국을 사장님, 큰형님(大哥)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호칭이 친구(朋友)로 낮아지더니 이제는 한국인(韩国人)으로 부른다.
한국과 중국은 30년 지기라고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 민주주의 국가 한국이 이념의 친구가 될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어 사귄,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다.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한·중 관계는 더 악화되었고 이제 중국은 한국에 대해 홀대에서 박대 단계를 지나 냉대를 하고 있다.
한국은 1994년 GDP 규모가 중국 GDP 대비 83%였지만 2022년에는 9%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은 미국 GDP 대비 8%에서 출발해 2022년에는 79%에 달하는 거대 국가로 부상했지만 한국은 1992년 5.5%에서 2022년 7.1%로 1.6%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한국에 대한 중국 측 태도 변화는 '가게가 커지면 종업원이 손님을 깔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중국 '공급망의 덫'과 미국 '제조의 덫'에 걸린 한국
강대국이 전쟁하면 고약한 것이 작은 나라들을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다. 미·중 전쟁이 무역전쟁에서 기술전쟁으로 바뀌면서 미국이 중국의 공급망 차단에 동맹국을 동원하고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을 1번으로 가입시켰고, 대중국 반도체 동맹인 칩(Chip)4에도 한국에 대해 가입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반도체 수출 중 63%가 중국으로 가고 있고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의 생산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품목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동맹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들 4대 품목에서 대중국 소재 의존도가 반도체 40%, 배터리 93%, 의약품 53%, 희토류 52% 등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봉쇄 동맹에 가입해도 중국이 한국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한국은 중국 공급망의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에 탈중국화를 하든, 공급망 봉쇄를 하든 먼저 다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plus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리쇼어링 정책이다. 돈과 외교력 그리고 군사력을 모두 동원한 미국의 생산 내재화 정책인데 한국의 최대 경쟁력인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경쟁자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될 상황이다. 지금 한국은 중국 '공급망의 덫'과 미국 '제조의 덫'에 걸렸다.
한·중 관계 지난 30년이 아니라 2000년을 돌아봐야 한다.
한국 제조업은 지난 30년간 중국과 수직적 산업 협력에서 꿀을 빨았다면 이제 미래 30년은 피 터지는 처절한 전쟁의 시대로 들어간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88%가 중간재인데 메모리 반도체 하나를 제외하고는 중국은 한국이 생산하는 모든 것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의 국산화율 제고는 필연적으로 대한국 수입 감소는 물론 한국 기업과 경쟁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2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이 대중국 무역적자를 냈다고 난리다. 중국의 코로나19 도시 봉쇄로 인한 생산 중단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국 수출구조를 보면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대중국 적자가 나타날 수 있다.
요즘 한국은 새 정부 들어 '안미경중(安美经中)'의 수명이 끝났다는 얘기가 난무한다. 실상은 아직 먼 얘기지만 현재와 같은 제조업 추세라면 5~10년 뒤면 자연히 경중(经中)은 사라질 판이다. 중국 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 경쟁력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래 30년을 내다보면 중국이 한국에 재앙이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제조업에서 중국은 한국의 경쟁자로, 금융에서는 침략자로, 4차 산업혁명에서는 흡입자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극중(克中)을 하고 싶으면 지중(知中)해야 한다.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고 경영은 시장에 가까이 가라는 것이 철칙이다. 지금 중국은 벤츠 S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리고 전 세계 명품 브랜드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로 부상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한국이 팔 만한 브랜드와 제품이 보이지 않는다.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었고 2027년은 건군 100주년이다. 하지만 중국 측 관심은 2049년 건국 100주년에 있다. 중국은 경제대국에서 30년 뒤 군사대국, 초강대국의 꿈을 꾼다. 한·중 관계, 눈을 크게 뜨고 지난 30년이 아닌 2000년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중국이 초강대국이었을 때 한반도를 가만 내버려둔 적이 없다.
2000년 한·중 간 역사에서 한국이 우위에 선 짧은 30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한국은 중국 위기론, 중국 붕괴론을 갑론을박하면서 시간 다 보내지만 정작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에서 세계의 패권으로 간다면 그에 대한 대응책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항상 옳고 돈은 항상 정확하다. 전 세계 최대 자동차·휴대폰 시장이 지금 중국이고 서방 언론에서 중국 위기론이 넘쳐 나는데도 전 세계 투자자들과 기업들은 중국에 주식과 FDI로 돈을 묻고 있다. 이런데도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经中)'의 수명이 끝났다는 담론만 얘기하지 액션플랜이 없다.
정책의 기억력이 자본주의는 4~5년이지만 사회주의는 최하 10~15년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전쟁에서는 지속적 투자와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한데 4~5년 표심에 목숨 거는 자본주의 국가와 달리 사회주의 국가는 기술 개발이든 경제정책이든 자본주의보다 멀리 보고 길게 간다.
한국은 시진핑 주석 3연임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지만 단지 임기 5년 더하려고 헌법까지 개정했겠느냐를 생각해 보면 답이 있다. 한국은 시진핑 주석 3연임보다는 장기 집권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리고 3기 정부 내각에 누가 들어가는지를 잘 봐야 한다. 한국이 '탈중국'을 제대로 하려면 당장 시진핑 3기 정부 5년간 경중(经中)의 그늘에서 벗어날 전략과 실행 계획이 있어야 한다. 말만 앞세우면 안 된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푸단대 경영학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