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 인사이트] 중국 소비시장 진출, 다윈의 '진화론'처럼

2022-08-05 05:00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 KFC는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으로 중국 내 시장 점유율 1위의 패스트푸드 업체가 됐다. [사진=KFC차이나 홈페이지]

'근데 지금 중국은(Meanwhile in China)'. CNN이 전하는 중국 뉴스레터의 제목이다. 잊고 있다가도 떠올려야 하는 정보라는 의미를 담았겠다. 우리 경제에서 '지금 중국은'을 꼽는다면 중국 소비시장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탈세계화, 공급망 위기 같은 글로벌 화두에 한동안 가려 있었다.

지금 중국 소비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규모가 크고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기업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꽤 오래 신경 쓰지 못했던 문제다. 글로벌 이슈가 망원경으로 내다봐야 하는 영역이라면, 소비시장의 흐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답이 나온다.

소비는 장소에 따라 외출 소비와 재택 소비로 나뉜다. 팬데믹 위기가 한창일 때 외출 소비가 재택 소비로 대체되는 장면을 보았다. 식당 매출이 급감하고 온라인 식품 소비가 증가한 것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선도하는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계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시장의 단기 파동과 같다. 위기 상황이 진정되면 매출이 원상복귀하거나 줄어들기도 한다.

소비를 필요성에 따라 구분하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필수 소비와 안 쓰거나 줄여도 되는 선택 소비가 있다. 충격 요인이 발생하면 선택 소비는 오랜 기간 부진해 전체 경제의 발목을 잡지만 필수 소비는 큰 변화가 없다.

기업이 주목하는 부분은 중장기적 소비 트렌드다.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Z세대(1995~2009년 출생)의 등장은 중국 소비시장 전반에 걸쳐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소비는 장기간 고정성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변화는 먹거리에서 가장 뚜렷하다. 부모 세대까지는 전통 차를 즐겼지만 젊은 세대는 이제 커피를 찾는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다쉐컨설팅(Daxue Consulting)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주요국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한국이 367잔으로 세계 1위이며 미국과 일본이 각각 329잔과 280잔이다. 중국은 9잔에 불과하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얘기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스타벅스에 도전장을 내미는 중국 브랜드들이 속속 나오는 이유다. 중국 커피 시장은 지금부터 지속해서 전망이 밝다.

이와 관련해 한국 업계엔 아쉬운 기억이 있다. 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프랜차이즈 기업 A사는 10년 전 베이징에 1호점을 내며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목표는 3년 내 스타벅스를 앞질러 중국 1위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시장 선점을 위해 사전 시장조사와 재료 공급 유통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속전속결에 나섰다. 무리한 가맹점 확장 전략은 곧 경영 압박 요인으로 이어졌다. 당시 컨설팅 업계에서는 시장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너무 빨리 진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중국의 커피 시장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후 본격적인 트렌드로 등장했다.

1987년 초 일찌감치 중국 시장에 진출한 KFC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 1600개 도시에서 8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KFC는 중국 패스트푸드 업계(QSR)에서 13.5%의 시장 점유율로 선두를 지키며 지속 가능한 식음료(F&B) 브랜드 1위로 평가받고 있다. 맥킨지(McKinsey) 등 글로벌 컨설팅사들이 중국에 잘 정착한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 사례로 꼽는 KFC는 중국 도시 인구의 급증세를 타고 성장한 경우다. KFC는 대표 메뉴인 프라이드치킨 외에도 중국 전통 메뉴를 다양하게 제공하며 현지화 전략을 강조한다. 이 덕분에 중국 소비자들로부터 환경 친화적인 건강 음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중국 소비자에게 잘 다가간 경영 사례로 학습할 만하다.

지금 중국에선 건강 관련 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팬데믹을 계기로 건강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국제당뇨병연맹(IDF)의 세계당뇨병 지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중국은 인구 10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라고 한다. 인구 수로 1억4000만명에 달한다. 가공식품을 선호하고 운동이 부족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비만인 비율이 20%에 달하고 젊은층 환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관련 검사 및 진단기기와 치료제 시장이 장기적으로 유망하다. 국제 권장 기준에 부합하는 중저가 제품에 수요가 집중될 전망이다.

중국은 성인 남성 넷 중 한 명이 탈모로 추정되는데 최근 Z세대의 탈모 인구가 많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다. 바쁜 직장 생활로 인한 불규칙한 일과와 늦은 취침 시간 탓이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에서 해시태그 조회 수가 6억건을 넘어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탈모샴푸 등 모발·두피 관리 제품과 식이요법 식품의 시장 잠재력이 크다.
 

바이주 시장 신흥 강자인 장샤오바이는 마오타이로 대표되는 기존 바이주보다 낮은 도수, 입맛대로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등을 앞세워 중국 젊은층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장샤오바이 공식 홈페이지 ]

Z세대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급성장 중인 저도주 시장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종래 중국 주류 시장의 중심인 맥주 대신 과일주와 칵테일을 선호한다. 스몰 캠핑 붐도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최근 장기 연휴 기간이 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최다 노출 단어가 될 정도가 됐다. 관련 기업이 이미 3만개 이상이고 많은 스타트업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웨딩 시장 규모는 연간 4조 위안(약 7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4억 인구에 노총각이 4000만명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개성화 원스톱 웨딩 업계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모두 새로 떠오르는 시장들이다.

제도적인 개방 조치도 소비시장의 변화 측면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앞으로도 코로나 등 감염병으로 인한 봉쇄조치가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다. 지정학적 불안 요인들도 단기간에 해소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새로운 소비 진작 카드를 계속 검토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외국계 금융회사와 보험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중국 개인연금 시장 개방 소식이 들려온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올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에 개인연금 판매를 허가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국민 대부분이 의존하고 있는 공적연금이 2035년 고갈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연금펀드 시장의 규모가 현재 약 3000억 달러에서 3년 후 1조700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시장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거센 변화 속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중국의 지역별 특성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두유 계통 음료를 좋아하고 우리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허베이(河北)성에선 생선을 잘 먹지 않는다. 동부의 산둥(山東)성과 장쑤(江蘇)성 사람들은 각각 대파(green onion)와 단 음식을 즐겨 찾는다. 상하이 사람들은 콜라를 쌓아 놓고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장시(江西)성 사람들은 중국식 쌀국수를 좋아하지만 허난(河南)성과 후베이(湖北)성에선 각각 쌀과 잉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 대로 후난(湖南)성과 쓰촨(四川)성, 충칭(重慶)에선 매운 음식을 즐기고 산시(山西)성 사람들은 유난히 식초를 즐긴다. 동북 지린(吉林)성 사람들은 체구가 커서 생활용품 기업들은 이 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 헤이룽장(黑龍江)성은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전출이 이어져 인구가 줄고 있다. 소비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현지화 전략의 기본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과거 수십 년에 걸친 세계화 시대의 비즈니스 원리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지금 중국에선 "시장은 변하고 기회는 생겨난다"가 흐름이다. 시장의 흐름을 포착하려는 기업들은 더욱 분주해질 수 있다. 이제 시장은 크기와 성장 속도보다는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필자 주요 이력

▷현 코트라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객원교수 ▷전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 ▷전 한중사회과학학회 부회장 ▷중국 푸단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