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한중 교류 확대의 유일한 길

2022-07-27 00:10
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기고
"한중 우호 증진, 문화로 풀어가자" 강조

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사진=한국방송협회]

'문화로 나눈 우정, 미래를 여는 동행(文化增友谊, 同行创未来)'.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부가 만든 공식 표어다. 문화로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해서 함께 미래로 나가자는 밝고 희망찬 뜻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체감하는 한·중관계는 이런 구호가 현실을 비꼬는 반어법으로 들릴 만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실제로 한국리서치에서 매 분기 실시하는 한반도 주변 5개국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이달 들어 100점 만점에 23.9점을 받았다. 2020년 1월만 해도 36.6점이었는데, 2년여 만에 35%나 줄어든 것이다. 이는 일본(29점)보다도 낮고, 미국(59점)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여기에다 우리 언론들이 전해주는 소식은 반도체, 한복, 김치 등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미국과의 대립, 대만을 둘러싼 위기고조 등 반중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이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기조가 틀을 잡아가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어느 모로 보나 절대 멀리해서는 안 되는, 아니 멀리 할 수 없는 나라다. 우리가 매일 먹는 농수산물, 호흡하는 기후문제에서 북한의 핵문제, 희토류 등 자원문제까지 중국은 중요한 국가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난 속에서 중국의 경제적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들어 대중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지만 이는 중국 정부가 올 상반기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대도시 봉쇄 조치를 실시한 여파로 보여 곧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중국정부도 내수진작을 위해 내년 인프라 투자 예산 조기 집행에 나서는 등 경기 부양에 나설 움직임도 주목할 대목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리먼 사태 당시 내수 침체와 재정 압박 속에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25%를 넘어서면서 우리 경제의 경기회복에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는 정부는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관리돼야 한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여행과 교류가 단절되는 상황에서, 양국 국민들 간의 반감이 일방적으로 증폭되고 고착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양국 국민들 간의 오해와 불신을 줄이고 공감대를 넓혀가야만 한다. 하지만 이른바 언택트 시대, 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국민들이 동일한, 같은 콘텐츠를 함께 향유함으로써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 밖에 없다. 콘텐츠의 교류 확대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를 위해서 한·중 양국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반민반관(半民半官)'의 형태로 '문화 콘텐츠 교류 협력 특별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양국 간 문화 콘텐츠의 교류와 협력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양국 정부의 차관급 인사가 위원장으로 참여할 경우 실질적인 집행과 결정권한을 갖는 기구가 되어 양국 간 우호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콘텐츠들에 대한 심의와 유통을 걸러낼 수 있는 이른바 '질서 있는 교류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특별위원회 산하에 방송과 영화 등 영상 콘텐츠 외에 게임, 웹툰, 케이팝 등 다양한 장르 저작권과 제3국 공동 진출을 위한 투자 분야 등의 소위까지 만들 경우 양국 간의 문화 콘텐츠 교류는 전방위로 확대되며, 양국 간의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내는 일석이조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인 한·중 FTA 서비스 분야의 콘텐츠 등을 통합시켜 추진, 관리하는 것도 양국 간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국제방송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중국의 전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가입자는 약 3억8000만명에 이른다. 이는 넷플릭스 전체 가입자 2억2000만명보다 1억6000만명이 많은 숫자다. 더욱이 중국 내 OTT 이용자수는 2017년 1억7000여 만명에서 3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급속히 늘고 있다. 이 추세면 2025년에는 40조원 규모의 시장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2017년 말 사드사태 이후 이른바 한한령을 통해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수입을 일절 금지해오다가 지난해 말부터 서서히 빗장을 풀기 시작한 상태다. 올 들어서만 '당신이 잠든 사이',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이태원 클라쓰' 등 모두 9편의 드라마가 중국 당국의 심의를 완료했다. 중국 측과 본격적인 콘텐츠 교류 협력 확대를 논의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측이 한한령의 빗장을 열었다고 해서 과거처럼 무질서하고 무원칙하게 중국 시장으로 달려가기 보다는, 양국 정부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저작권 문제와 투자 보증 문제 등 과거의 문제점들을 개선, 극복해 나가는 진일보한 형태로 양국 간의 문화 교류를 재개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우리의 K-콘텐츠가 글로벌 콘텐츠로 도약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중국 측에게도 내수용으로 전락해 있는 중국 콘텐츠들이 제3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로 나눈 우정, 미래를 여는 동행'이 진정으로 이뤄지는 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가 한·중 수교 30주년인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중 정상회담 석상에서 이뤄지기를 꿈꿔본다. 정상회담 자리에서 양국의 정상들이 양국 간 우호의 상징으로서 '문화 콘텐츠 교류 협력 특별 위원회'를 설립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