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물 님비] 7년 뒤처진 부지 선정 기술...주민 설득까지 '산 넘어 산'

2022-07-25 19:30
운반·저장 기술 발전해도 부지·처분 단계 까지 못 이어져
해외에서도 어려운 부지 선정..."모든 과정 공개하고 추진"
정부, 첨단 IT 기술 접목해 객관성과 정확성 확보 계획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물에 보관 중인 방폐물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술 분야 후발 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입지 선정 등 부지 분야 기술은 선도국들의 62.2%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폐물 관리 기술 연구개발(R&D)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방폐물 처리장 부지 선정을 두고 계속되는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관련 기술력을 갖춰도 주민 수용성을 감안하면 시설 가동까지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방폐물 운반·저장 기술 마련해도 부지 선정 어려워
25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른 R&D 후속 조치로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R&D 로드맵’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방폐물이란 방사성 물질이나 그에 따라 오염돼 폐기 대상이 되는 물질을 일컫는다. 방폐물에는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해 원전 내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작업자들이 사용했던 작업복, 장갑, 기기 교체 부품, 관련 연구 기관이나 대학, 산업체 등에서 발생하는 방사성동위원소(RI) 폐기물 등이 포함된다.

이 중 고준위 방폐물은 알파선 방출 핵종농도가 그램(g)당 4000베크렐(Bq) 이상, 열 발생량이 제곱미터(㎥)당 2킬로와트(㎾) 이상인 폐기물로 주로 사용후핵연료가 해당한다. 그동안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돼 왔지만 앞으로 원전 활용도가 높아지는 만큼 사용후핵연료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대목이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기술은 크게 운반, 저장, 부지, 처분 등 4가지 핵심 분야로 나뉜다. 산업부는 1997년부터 올해까지 방폐물 분야 R&D에 1522억원을 투자했으나 이중 운반·저장 분야에만 72%가 투자됐다. 그 결과, 한국은 운반·저장 분야 기술은 일정 수준으로 경쟁력을 갖췄지만 부지, 처분 분야에서는 여전히 추격 그룹인 것으로 나타났다.

운반에는 방폐물 운반 용기 설계, 제작, 검사, 운반 위험도, 경로 평가 등이 포함된다. 저장은 중간저장, 안전성 평가, 저장용기 설계 등이 해당한다. 이 두 분야 최고 선도국은 미국이다. 한국은 운반·저장 분야 기술이 미국의 각각 83.8%, 79.6%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 격차는 각각 3.4년, 5.1년이다.

부지 분야에는 부지 선정 기준·요건, 조사-평가 절차, 부지 특성 모델링, 장기변화 예측 등이 해당한다. 처분 기술은 처분시스템 개발, 종합안전성, 시설 건설·운영·폐쇄 등이다. 부지와 처분 분야 최고 선도국에는 각각 스웨덴과 핀란드가 꼽힌다. 한국은 선도국 수준의 62.2%(부지), 57.4%(처분) 수준에 그친다. 평균 기술 격차는 7.1년(부지), 8.7년(처분)으로 추산된다.

특히,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입지 선정이 포함된 부지 분야 기술은 국내에서 발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중·저준위 방폐물 처리장은 유일하게 경주에 마련됐지만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은 용지 선정도 못 한 상태다.

박병기 순천향대 에너지환경공학과 교수는 “저장·운반 분야는 기존대로 산업화된 기술들이 있지만 부지·처분 분야는 국민의 동의를 받는 일이다 보니 큰 반발들을 겪은 여파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부지 후보 꼽으면 시위 시작....기술력으로 신뢰도 높여야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회원들이 7월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울산 핵폐기물 저장 반대 1만명 서명안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그동안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건설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안면도, 굴업도 등 방폐물 처리장 부지 후보를 선정할 때마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됐다. 특히, 2003년 정부가 전북 부안군 위도에 방폐물 처리장 설치를 계획할 때는 주민의 반대 시위가 2년간 이어지면서 유혈사태까지 일어난 바 있다.

이러한 님비 현상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일 시민단체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기자회견을 통해 산업부의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과 관련 특별 법안 폐지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해당 기본계획과 법안은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을 명시해 핵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핵발전소 부지에 보관하도록 하는데, 언제 영구처분시설을 지을지 불투명하다”며 “이미 울산은 지역과 주변에 핵발전소 16개가 있는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 지역인데 정부 계획대로면 울산은 핵폐기장에 포위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방폐물 처리장이 기피 시설인 만큼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준위 방폐물 R&D 로드맵을 살펴보면 정부는 부적합지역 배제, 부지공모, 기본조사, 심층조사, 부지확정 과정까지 총 13년에 걸쳐 부지를 선정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13년 안에 고준위 방폐물 부지 선정까지 이뤄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세계 최초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을 건설 중인 핀란드 정부는 1983년 계획을 수립해 올킬루오토섬으로 최종 선정하기까지 18년이 소요됐다. 스웨덴 역시 1992년 부지 확보 사업을 시작해 17년만에 포스마크를 최종 선정했다.

박 교수는 “해외의 경우 부지 선정 과정에서 처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후보를 고르고 해당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여러 활동을 거쳐 겨우 동의를 받은 곳들”이라며 “주민들에게 방폐물 처분까지 과정을 공개해 안정성을 확인받고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독일 등은 주민들이 방폐물 폐기장 설치를 반대해서 포기한 상태”라며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처분한 것이 아니라 처리 후 처분 방식을 택했지만 역시 설득 과정이 오래 걸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을 부지 선정 과정에 접목해 객관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고 주민 신뢰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방사성 핵종의 이동 관련 부지특성 확인을 위한 부지모델링 기법은 현행 2차원(2D) 기반에서 3D 모델 기술로 고도화를 추진한다.

또한, 인간 생활권으로부터 고준위 방폐물의 영구적인 격리가 가능한 부지 선정을 위해 지질환경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2029년까지 개발한다. 지각·기후·해수면 변동에 따른 생태계 영향을 고려하고,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 협력해 지질·기후변화 데이터까지 반영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로드맵 자체가 전체적으로 국민의 의구심이나 불안감, 우려 등을 낮추고 신뢰도를 올리기 위함이고 주민 수용성을 올리기 위한 소통도 준비 중”이라며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이 제정되면 곧바로 실행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