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300원 시대] '달러값 1300원' 새 표준 되나…"1350원까지 오를 수도"

2022-06-29 18:00
원·달러 환율 15.6원 오른 달러당 1299.0원에 마감
美 금리 인상 따른 강달러…선진국 수준 펀더멘털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달러당 1300원이 원·달러 환율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원화값이 고달러·고위험·고유가의 복합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숫자인 만큼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내려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력한 심리적 저항선인 1300원선이 뚫리면서 단기적으로는 1350원선까지 상단을 열어놔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원화 약세 압력 가중…1350원까지 상단 열어놔야"
29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15.6원 오른 달러당 1299.0원에 거래를 마쳤다. 간밤 발표된 6월 소비자 신뢰지수가 시장 기대치를 크게 하회하면서 위험회피 심리가 심화했다.

지난 23일 1301.8원에 장을 마치며 13여년 만에 1300원을 넘긴 환율은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이더니 이날 다시 급등하며 1300원에 바짝 다가섰다. 

환율은 이제 30일(현지시간) 발표되는 미국 5월 PCE물가지수를 기다리고 있다. PCE지수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가늠할 때 가장 선호하는 지표 중 하나여서 지수 추이에 따라 환율이 다시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다만 물가 상승률이 예상치를 하회하더라도 글로벌 경기 흐름 등을 고려할 때 원화 약세 흐름이 빠르게 방향을 돌리기는 어렵다.

시장 전문가들은 1300원이란 상징적인 '빅피겨'가 뚫린 만큼 시장의 달러 매수 심리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금리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리스크 지속, 무역수지 적자폭 확대로 경상수지 악화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환율이 단기적으로 추가 상승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현재 외국인의 역송금이 꾸준히 나오며 환율 하단을 지지하고 있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1350원까지 상단을 열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이달 들어 경기 침체 우려에 한국 수출 전망이 나빠지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두드러졌고, 외국인의 증시 이탈도 지속되는 모습"이라며 "단기적으로 시장을 지배한 이 심리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320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상황이 이렇자 달러당 1300원대가 당분간 환율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1300원대였던 2009년 당시 80대 중반이었던 달러인덱스가 지금은 100대 중반"이라며 "달러화 대비 원화의 관점으로 보면 1300원이 비이성적인 수준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 거래일보다 0.09% 내린 104.41에서 움직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높은 레벨에 따른 부담감으로 상승 속도가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도 있다.

지난 4월과 같이 미국의 근원물가가 하향 움직임을 나타내면 달러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증시의 안정세, 중국 위안화의 강세, 배럴당 100달러대에 진입한 유가 수준 등은 환율의 변동 흐름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당국의 개입도 환율의 상승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지난 2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정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시장 불안 등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필요하면 시장안정 노력을 하겠다"고 밝히며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시사했다.
 
환율 1300원 줄타기, 과거처럼 큰 위기 아니다
환율이 달러당 1300원 위에서 움직인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대 세 차례에 불과했고, 그때마다 한국 경제는 위기 국면이었다. 이번에도 1300원선에서 줄타기를 하자 한국 경제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공포가 지나친 기우라고 보고 있다. 한국이 이미 선진국 수준의 펀더멘털을 갖춘 만큼 과거처럼 우리 경제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파괴력은 없을 것이란 자신감에서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우리 경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린 여파로 강달러 현상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8년 만에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엔화 등 다른 나라의 통화도 모두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원화 약세를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취약성과 직접적으로 연결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원화 가치는 올 초와 비교해 8.4% 하락했는데 이 기간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8.5% 올랐다.

원화 가치 절하율은 일본(-14.6%), 영국(-9.0%)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중국(-4.8%)과 대만(-6.9%)보다는 높지만 대부분의 통화가 약세를 보여 환율만 놓고 한국 경제의 위기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도 나쁘지 않다. 

한국의 대외지급능력을 보여주는 순대외 금융자산 규모는 1분기 말 기준 6960억 달러였다. 대외 자산보다 부채가 많았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7년 3분기(-2166억 달러)와 격차가 크다.

외환보유액도 4000억 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477억1000만 달러다.

4월 말 대비 15억9000만 달러 줄어들며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으나 외환시장 개입의 '실탄'으로 활용되기엔 부족하지 않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IMF 외환위기 때는 우리 기업의 과잉 투자라는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고, 금융위기 때는 미국을 중심으로 금융기관의 부실 문제가 있었다"면서 "현재는 구조적 부실보다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