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금융소비자보호는 갈 길이 멀다

2022-06-21 10:06

[윤영섭 고려대 명예교수]

금융소비자는 금융지식이 적어 자신의 금융거래에서 얼마나 이익이 침해되는지 모른다. 금융기관은 설계사가 금융상품을 관행에 따라 설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관행이 어떻게 금융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알고도 묵인했다면 불법행위이다. 금융감독원 민원실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부서임에도 소비자보호는 뒷전이고 기관 편에 선다. 금융정책의 큰 방향에 따라 금융행위가 위법인지 아닌지, 얼마나 많은 금융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하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 소비자보호를 위해 새로운 일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위험이라 여긴다. 금융정책 당국은 어떨까? 금융정책의 영역은 크게 두 가지, 금융기관 건전성과 금융소비자보호다. 금융위원회는 주로 금융기관 위주의 정책을 펴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보호 문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알아도 그냥 넘어갈 것 같다. 금융소비자는 기댈 데가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경험한 내용을 가지고 금융소비자보호와 관련된 금융행위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한다. 작년에 95세로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상속재산으로 받은 특정금전신탁과 연금보험에 관한 이야기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출했더니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사망하신 어머니가 동의한 계약이고, 상속재산으로 없던 돈을 받았는데 무슨 민원이냐고 한다. 상속인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고, 30년 이상 대학에서 금융과 재무를 가르쳤던 사람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갖고 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특정금전신탁의 경우

특정금전신탁이란 고객이 믿고 맡긴 금전(신탁금액)을 고객이 특정한 운용 방법과 조건대로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운용수익과 상환금액(채권의 경우 원금)을 돌려주는 고객과 금융기관 간의 거래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객이 아닌 금융기관이 투자할 방법과 조건을 미리 정해 놓고 고객을 끌어들이고 판매하는 변질된 형태로 진행된다. 부언하면, 특정금전신탁은 원래 금융기관이 재량을 갖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재량을 거의 전부 가지게 됨에 따라 금융기관이 고객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

금융소비자 이익이 어떻게 침해되는지 살펴보자. A금융사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고 B은행과 판매계약을 체결하며, B은행은 고객이 맡긴 금전을 이 특정 채권에 투자하는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B은행은 신탁금액을 가지고 채권을 시장에서 매입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와 원금을 고객에게 지급한다. 이 간단한 구조에서 고객에 대한 이익 침해가 B은행이 신탁금액에서 현금을 차감하는 행위에서 발생한다. 차감은 선취보수(수수료)와 채권할증액을 신탁금액에서 빼는 행위를 말하는데, 그럼으로써 실투자금액을 줄이고 시장에서 매입하는 채권 단위를 줄인다. 이는 고객에게 주는 원리금을 줄이겠다는 일종의 꼼수다. 채권할증은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할 때 액면가보다 비싸게 사는 것을 말한다. 은행이 보수를 선취하고, 채권할증액을 고객에게 부과하는 것은 신탁계약과 관련된 위험을 대부분 고객에서 전가하는 행위이다.

선취보수에 대해 구체적인 예로 설명을 더한다. 발행 당시 상품설명서에는 선취보수가 ‘신탁원본의 1.5%’라고 되어 있다. 신탁원본이란 신탁금액에서 선취보수를 차감한 금액이다. 선취보수가 신탁금액이 아닌 신탁원본의 1.5%라 한 데는 처음부터 선취보수를 신탁금액에서 차감하겠다는 의도가 숨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은행이 선취보수를 수취하는 방법에는 투자원금인 신탁금액에서 차감하는 방법 말고 완전히 별도로 수취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을 비교해 보면 은행이 별도 수취할 경우 거의 모든 경우에 고객에게 유리하다. 이는 간단한 산수로도 금방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수취 방법이 가져오는 투자 원리금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금융거래에서 수수료의 두 가지 수취 방법은 이런 차이를 가져온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차감 수취 방법이 업계 관행이라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은행이 선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당한 금융행위다. 채권할증액을 차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채권할증액을 추가로 차감하여 실투자금액(채권액면이라 함)을 더 낮추고 원리금도 더 낮추겠다는 것이고, 이는 부당 금융행위이다. 채권의 매매는 시장에서 거래당사자인 발행사와 판매사 간의 거래일 뿐, 고객은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여지가 없다. 채권을 유통시장에서 매입할 경우 액면가보다 비싸게도 싸게도 살 수 있으며, 이것이 가격변동에 따르는 위험이다. 수수료에는 이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영국의 금융회사인 푸르덴셜사(PLC)가 발행한 같은 조건의 후순위채를 보면 글로벌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수수료의 차감은 전혀 없고, 채권의 매입 단위는 투자원금을 액면가로 나눈 값으로 정해지며, 어떤 형태든 차감 행위는 없다. 채권매입이 할증이든 할인이든 (PLC의 후순위채는 액면가 이하 할인가에 매입) 이자와 만기상환액은 투자원금 대비하여 정해진다. 이런 사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제안한다면, 신탁계약을 금액이 아닌 단위 수로 하는 것이다.

연금보험의 경우

10여년전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전화로 모 은행 지점으로 오라고 하셨다. 갔더니 두 가지 연금보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신다. 요즘 알게 되었지만 상속만기형과 상속종신형 두 가지였다. 딱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은행 직원이 상속종신형의 경우 납입보험료의 10%를 사망 시 장례비용으로 추가로 준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상속종신형을 택했다.
연금보험이란 보험가입자가 보험료를 납입하고 보험가입자의 생존 시 매월 연금을 받고, 사망 시 보험금을 지급받는 보험이다. 여기서 보험금을 결정하는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 상속종신형의 경우 사망 시 지급보험금은 납입보험료에서 사업비를 차감하고 거기에 장례비용을 합한 금액으로 적어도 납입보험료의 105%는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받는 금액은 납입보험료의 98.7%밖에 되지 않았다. 약속했던 장례비용은 사라진 셈이다. 여기서도 차감이 문제다. 납입보험료에서 예정사업비와 추가보험료로 11.3%를 차감하고 그 잔액을 책임준비금이라 한다. 책임준비금은 납입보험료의 88.7% 밖에 되지 않았다. 책임준비금은 매월 받는 연금과 사망 시 지급보험금을 결정한다. 책임준비금을 낮추면 월 연금도 지급보험금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금융소비자 이익 침해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변수를 어떻게 산출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보험약관에도 상품설명서에도 없다. 그래서 보험상품을 판 생명보험사에 책임보험금 산출설명서를 달라고 연락했더니 줄 수 없다고 한다.

책임보험금은 ‘판도라의 상자’다. 판도라 상자는 열면 온갖 악취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누구도 열지 못하게 하는 상자다. 책임보험금을 공개하면 보험업계의 부당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고, 보험업계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그렇더라도 책임준비금 산출 근거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책임보험금은 보험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영업비밀을 공개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다. 책임보험금을 한꺼번에 완전히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 있다. 그래서 공개해도 괜찮을 부분을 점차 정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 본다. 보험업에서는 보험설계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한다. 차제에 보험설계사의 상품 설계가 옳은 방향에서 행해지는지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금융소비자 이익 침해

위 두 가지 금융거래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금융기관이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고객으로부터 권리를 부여 받지 않고 하는 임의적 금융행위가 많고 이것이 금융소비자 이익의 침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금융거래 구조에서 금융기관의 조작 가능성이 높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 두 거래에서 차감 행위가 일어난 후의 실투자금액인 채권액면과 책임보험금을 미리 정해 놓는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나서 금융기관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차감액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임의적으로 정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약관 등 어디에도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많은 부분 ‘관행’이라는 것을 업고 간다. 그런데 그것이 ‘욕망’이라는 걸 잘 모른다. 이제 금융거래의 세부 내용을 잘 들여다보고 관행이라는 걸 고쳐야 할 때이다. “신은(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사소한 것을 잘 아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우리가 금융에 대해 아는 것을 늘려야 한다. 아는 것이 많으면 모르는 것도 많아진다. 모르는 것을 줄여야 금융소비자 이익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일반투자자를 상대로 설명 부족으로 인한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도 줄일 수 있다. 그래야 금융 개선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