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기름값] "휴가철엔 더 오른다"...고공행진에도 대응책 없어 한숨만

2022-06-13 18:00
OPEC+ 증산 결정했지만...실제 생산 증가 '글쎄'
고물가에 고유가까지...유가환급금 지급도 부담

6월 12일 서울 시내 한 셀프주유소. [사진=연합뉴스]

​고삐 풀린 기름값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국내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 모두 ℓ당 2000원대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의 여름 휴가철을 맞아 수요가 늘어나면 ℓ당 2200원 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 고물가에 고유가 상황까지 겹치면서 서민 가계 주름살은 더욱 깊어진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응 카드는 거의 바닥났다는 것이다. 고유가 상황이 계속될 경우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경윳값, '또' 휘발윳값 추월
기름값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이미 상승 페달을 밟은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또다시 추월했다.

13일 한국석유공사의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0분 기준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2073.40원으로 휘발유 가격(2073원)보다 비싸다.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4.40원 올랐지만, 경유는 하루 만에 5.41원 오르면서 가격이 역전됐다.

통상적으로 경유보다 세금이 많이 붙는 휘발유가 더 비싸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의 영향으로 경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경윳값이 휘발유 가격을 뛰어넘고 있다.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웃돈 건 2008년 6월 이후 약 14년 만에 처음이다.

문제는 기름값이 더 오를 요인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는 여름휴가철인 '드라이빙 시즌(driving season)'에 유가가 더 오른다. 방학까지 겹치면서 자동차 운행이 증가해 휘발유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미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가 더 크게 뛰어 국내 기름 가격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들어 미국의 주간 원유 재고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점도 우리에겐 악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3일로 끝난 주간 원유 재고는 전주보다 202만 배럴 늘었다. 주간 전체 재고는 늘었지만, 휘발유 재고는 81만2000배럴 줄어든 2억1818만4000배럴을 기록했다. 당초 시장 예상(30만 배럴 증가)을 크게 밑돈 것이다. 

공급 역시 미온적이다. 러시아 등 OPEC 비회원 산유국을 합친 OPEC+는 오는 7~8월 각각 하루 64만8000배럴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증산량보다 50%가량 많으나 전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양의 0.7% 수준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원유 시장을 안정시킬 정도로 큰 증산 규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분석이다.

국제 유가가 더 오를 여력이 충분한 점을 고려하면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기름 가격도 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 경유 가격이 지난주에만 배럴당 10달러 이상 올랐다"며 "국제 유가가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가격 상승 폭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특히 경유는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는 한 오름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또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하반기 국제 유가 상승세를 점치고 있어 제품 가격을 밀어올리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고, 가격 진정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령 해제도 당분간 원유 수요를 끌어올릴 또 다른 요인으로 거론된다. 중국의 도시 봉쇄령이 해제되고,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부분 금지 조치까지 맞물리면서 국제 유가는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바닥난 정부 대응책...유가환급금도 부담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유류세 인하 폭을 현행 30%에서 37%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대응책으로 거론된다. 유류세 탄력세율을 조정하는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한다면 유류세 실질 인하 폭을 37%까지 늘릴 수는 있다. 유류세 중 교통세는 현재 법정세율보다 소폭 높은 탄력세율(ℓ당 529원)을 적용하고 있다. 탄력세율 대신 법정 기본세율(ℓ당 475원)을 적용하고, 이를 기준으로 30% 인하 조치를 시행하면 ℓ당 유류세(휘발유 기준)는 573원에서 516원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국제 유가 상승 폭이 터무니없이 높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관론이 짙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류세 인하 폭을 15%에서 20%로, 지난달 1일부터는 20%에서 30%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는 ℓ당 83원, 경유는 ℓ당 58원의 원가 절감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 유가는 이보다 더 올랐다. 5월 첫 주만 해도 ℓ당 1092원 수준이던 국제 휘발유 가격은 불과 한 달 만에 100원 가까이 치솟았다. 폭등하는 국제 유가에 원·달러 환율이 오른 효과까지 더해진 영향이다.  

또 다른 카드로는 유가환급금 지급이 거론된다. 유가환급금은 유가 급등으로 국민이 추가 부담한 교통비와 유류비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미 고물가 상황인 가운데 물가를 더 자극할 우려가 크고, 재원 마련도 만만치 않아 쉽지 않다. 소비자물가 6%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현금을 뿌리는 정책은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막대한 유동성이 시중에 공급된 상황에서 또 한 번 현금 살포가 이뤄질 경우 되레 물가만 자극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취약계층에 한해 유가환급금을 지급한 바 있다. 그때처럼 에너지 취약계층에만 한정해 환급금을 지급할 경우 일반 대중에게는 효과가 작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지난 4월에도 저소득층에 한해 유가환급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재원 부담과 물가 자극 우려로 무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