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열여덟 여공의 고단함…금천 순이의 집으로 가자

2022-06-11 07:00
생활 흔적 곳곳…공장 노동자의 삶 엿보기
아웃렛 구경·안양천 산책…삶에 '쉼표' 찍기

금천 순이의 집 '쪽방 체험관'에 있는 봉제방. [사진=서울관광재단]

여공 순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얼마 되지 않는 봉급을 손에 쥐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채 잔업과 철야에 파묻혀 살았을 순이의 '고된' 삶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려온다. 

1970년대 '구로구'였던 금천구(서울)에는 제조업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산업단지가 모여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올라왔던 공장 노동자들은 이곳에 터전을 일궜다. 

산업화 시대와 함께 성장·발전한 금천구는 세월이 흘러 구로구에서 분리됐지만, 지금도 지역에는 여전히 산업화 흔적이 남아있다. 

◆여공 순이의 삶, 참 고단했구나 

금천구에는 과거 공장 노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체험관이 있다. '금천 순이의 집'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여성 노동자들의 거주 시설이 재현됐다. 

과거 구로공단에는 어린 여성 근로자가 많았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서울에 올라온 10대 여성들은 섬유공장이나 가발공장,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소위 '공순이'로 불린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다. 잔업에 철야까지···. 하루 근무 시간만 12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일해도 여공들이 손에 쥐는 돈은 6만원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당시 방 한 칸 월세는 5만원. 그러니 한 건물에 조그만 부엌이 딸린 한 칸짜리 '쪽방'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공장 근처에 이런 쪽방이 많게는 50개까지 모여있었는데, 이를 '벌집' 또는 '닭장집'으로 불렀다. 

금천 순이의 집은 이런 쪽방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이다.  

지하 1층 쪽방 체험관으로 내려가면 당시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은 패션방, 문화방, 공부방, 추억방, 봉제방, 생활방 등 6개의 작은 쪽방으로 구분돼있다.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지하, 좁다란 복도에 서니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여성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고됐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층 전시 공간. 공장 기숙사로 사용됐던 곳이다. [사진=서울관광재단]

◆공장의 흔적,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과거 구로공단의 공장이 현대적으로 개보수된 카페가 있다. 바로 인크커피(가산점)다.

순이의 집이 구로공단의 과거가 재현됐다면, 이곳 카페는 공단 지역의 공장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카페 1층 원형 통로 가운데 있는 분수가 물줄기를 뿜어낸다. 2층과 3층은 깔끔한 정원에 온 듯한 분위기다.

카페 사장은 현지 커피 농장에 가서 품질 좋은 커피콩을 직접 확인한 후 수입한다. 수입한 커피콩은 카페 내부에 있는 공장에서 직접 볶는다.

오렌지 라테에 크림을 얹은 '인크슈페너', 커피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섞은 '인크 아포가토' 등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가 특히 인기다. 

구로공단의 시설을 현대적으로 탈바꿈한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도 들러볼 만하다.

1층은 여전히 공장으로 운영 중이다. 과거 기숙사로 사용했던 2층부터 4층까지는 카페와 전시관으로 개보수했다. 
 

금천구에 처음 생긴 대형 의류 할인매장 '마리오 아울렛'. [사진=서울관광재단]

◆섬유공장 패션 단지로···아웃렛 '시초' 되다

금천구는 '패션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과거 구로공단 2단지를 중심으로 봉제·섬유 공장이 곳곳에 자리했다.

다수 의류공장은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 자체 할인 매장을 운영했다. 소위 '땡처리'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1997년 IMF를 겪으면서 공장 상황은 바뀌었다. 성업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았다.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업체도 부지기수였다. 남은 공장 부지들은 헐값에 팔려 나갔다.

2001년 '마리오 아울렛'이 문을 열었다. 1980년대에 마리오상사를 설립한 후 의류 사업을 하던 홍성열 회장이 가격이 내려간 공장 부지를 인수해 건립한 금천구 '최초' 아웃렛(의류 할인매장)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에게 '아웃렛'은 천국이었다. 정가보다 최대 90%까지 할인해주는 '패션 천국'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2012년 3관까지 확장한 마리오 아울렛은 하루 매출 25억여원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W몰 등 대형 할인매장이 생겨나면서 현재의 '패션 아웃렛 단지'가 조성됐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하루 평균 유동 인구만 30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매장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부쩍 줄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안양천에서 만날 수 있는 금계국. [사진=서울관광재단]

◆천천히 걷고, 잘 먹고···일상에 '쉼표'를 

사실 금천구 명소는 따로 있다. 바로 안양천이다. 봄날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이 상당히 유명해 지역민뿐 아니라 외부인의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매년 봄이면 안양천 제방 위에 일렬로 늘어선 벚나무가 꽃 터널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꼭 봄날이 아니어도 좋다. 6월에는 금계국이 안양천을 수놓는다. 바람에 살랑이는 금계국의 자태가 퍽 아름답다.

성장 시기에 따라 바다를 오가며 살아가는 기수어(汽水魚)인 숭어도 볼거리다. 매년 4월이면 산란기를 맞은 숭어가 무리를 이뤄 안양천에서 상류로 이동하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이 광경을 만나기 위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금천구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했다. 도심 속에서 자연도 만끽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그건 여행에 정점을 찍을 맛집 탐방이 빠졌기 때문이리라. 
 

1951년 문을 연 중국집 '동흥관' 전경. [사진=서울관광재단]

발걸음을 옮겨 '금천구 터줏대감' 동흥관으로 간다. 

지난 1951년 문을 연 중국집 '동흥관'은 짜장면이 가장 유명하다. 짜장면 소스는 사골 육수를 이용해 만들어 느끼하지 않고 구수하다. 현지 조리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화교 출신의 주방장만 고용한다.

1대 장연윤 사장은 화교 출신이다. 고향인 중국 산둥성을 떠나 옛 시흥역 근처에서 짜장면과 왕만두를 팔았다. 그러다 큰돈을 벌어 적산가옥을 사들였고, 간판을 내걸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1대 사장의 막내아들이 운영 중이며,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