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담합 2라운드] 5개월 만에 또…해운업계 과징금 800억원

2022-06-09 14:16
공정위, 한·중·일 항로 운임 담합 심의 결과 발표
"불법적 운임 담합 관행 없어지는 계기 될 것"

지난 5월 23일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당국이 3년 넘게 이어온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운임 담합 제재를 마무리했다. 17년간 기본운임을 최저수준에 맞추고 각종 부대운임을 인상한 한·일 항로의 선사들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800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한·동남아 노선에 대해 1000억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받은 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돼 해운업계와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반발이 예상된다.
 
흥아라인 158억···한·일 노선 선사에 과징금 '철퇴'
공정위는 9일 한·일 항로에서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15개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원(잠정)을 부과했다. 

업체별로 살펴보면 △흥아라인 157억7500만원 △고려해운 146억1200만원 △장금상선 12억300만원 △남성해운 108억3600만원 등이다.

한·중 항로에서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운임을 합의한 27개 선사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 없이 시정명령만 내리기로 결정했다. 양국 정부가 해운협정과 해운회담을 통해 선박투입량 등을 오랜 기간 관리해온 시장이라는 점이 반영됐다.

다만, 중국 노선 역시 행위 자체는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날 브리핑을 진행한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한·중 항로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이들 행위가 합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27개 선사들은 해운법에서 요구하는 신고가 아예 없거나 허위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했다"며 "해운협정 등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경쟁제한 효과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선사들은 약 17년간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각종 부대운임 도입 및 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제반 운임에 대해 합의했다.

운임 합의를 실행하기 위해 다른 선사들의 화물을 서로 침탈하지 않기로 하고, 기존 자신의 거래처를 유지하도록 하는 '기거래 선사 보호'를 합의해 운임경쟁을 제한하기도 했다.

나아가 합의 운임을 수용하지 않거나 담합에 참여하지 않는 맹외선을 이용하는 화주 등에 대해서는 컨테이너 입고금지, 예약취소 등 공동으로 선적을 거부해 합의 운임을 수용하게끔 사실상 강제했다.

조 국장은 "지난 1월 한·동남아 항로에서의 운임 담합 행위를 제재한 데 이어 한·일·중 항로에서 17년간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운임 담합 행위를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를 통해 그간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선사들의 운임담합 관행이 타파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 과징금 1700억 '훌쩍'···해운업 경쟁력 약화 우려
공정위가 지난 1월 한·동남아 노선 해운담합에 과징금 962억원을 부과한 데 이어 다시 한 번 제재를 가하면서 해운업계 과징금은 1762억원으로 뛰었다.

일부 선사는 현재 동남아 항로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에 대해 이의제기를 한 상태다. 당초 이의신청 없이 곧바로 행정소송에 착수하는 방안이 고려됐으나 이의신청시 공정위 재결 전까지 과징금 납부를 유예할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다.

5개월 전과 비슷한 규모의 제재가 다시 이뤄지면서 해운업계는 일본 노선에 대해서도 이같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과징금 규모보다 해운업계가 더 우려하는 것은 자칫 국내 해운업의 경쟁력 약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제재를 빌미로 중국에서도 우리 국적선사에 같은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있다. 그간 유지되던 항로 점유율이 가격 경쟁으로 중국 선사들이 독점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는 국회에 계류 중인 해운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고 있다. 개정안은 해운법에 따른 선사들의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9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림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해운법 개정안은 이미 신고된 협약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은 무효가 된다.
 
공정위 vs 해수부···부처 갈등 불가피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해수부와의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해운업계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해수부는 지난달 열린 전원회의에서 공정위 측에 해운산업 특수성과 과징금 부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설명하고 불법성이 없다는 선사 입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일본 항로에 대해 동남아와 같은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사실상 공정위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일단 두 부처간 해상운임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공정위는 한·중·일 운임 담합 관련 심사보고서에서 "국내외 해운사 20여곳이 약 17년간 담합해 운임을 올리면서도 절차상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며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공정위가 지적한 절차상 요건은 해운법에서 정한 '해수부 장관에 대한 신고와 화주 단체 협의'다. 해운법 제29조는 공동행위 결정을 30일 이내에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 전에 합의한 운송 조건 정보를 화주 단체와 충분히 교환·협의하도록 하는 경우에만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공동행위는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절차적 문제뿐 아니라 화주에 대한 보복, 합의를 위반한 선사에 대한 각종 페널티 부과 등 내용적인 한계도 크게 이탈해 공정위는 해운법에 따른 정당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4년간의 심리를 거쳐 지난 1월 과징금 처분이 나온 한·동남아 운임 담합 사건도 이같은 이유로 제재가 결정됐다.

조 국장은 "앞으로 해운당국의 공동행위 관리가 강화돼 수출입 화주들의 피해가 예방될 수 있도록 해수부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해운법 개정안 수정과 관련 제도개선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해운사들의 운임 담합은 정당한 공동행위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 7월 운임 관련 122건의 세부 협의에 관해 신고할 필요가 없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해운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불법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번 심의 결과에 대해서도 해수부 관계자는 "한·중 항로의 경우, 특수성을 인정해준 것으로 보인다"며 "한·일 항로는 동남아 노선과 유사한 결과가 나와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추후 해수부 수장이 다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 장관은 지난달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해운 선사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에 "기본적으로 해운 공동행위는 우리 해운산업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하는 등 해운담합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