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집단 극단화의 산물 ··· 민주당의 잇단 패착

2022-05-29 19:14

[임병식 위원]


더불어민주당 비대위가 주도하는 지방선거 전략에 그늘이 드리웠다. 이재명과 송영길을 앞세워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하겠다는 구도에 차질이 빚어졌다.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수도권 3곳 모두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밖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갤럽 마지막 여론조사(24~25)에 따르면 서울시장은 국민의힘 오세훈 57.9%, 민주당 송영길 31.8%로 26.1%p 벌어졌다. 또 인천시장은 국민의힘 유정복 46.1%, 민주당 박남춘 37.2%로 8.9%p 격차다. 경기도지사 또한 국민의힘 김은혜 45%, 민주당 김동연 37.4%로 7.6%p로 오차범위 밖이다.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민주당 이재명(45.5%)도 국민의힘 윤형선(44.3%)과 접전 양상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어느 한곳도 장담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나선 이재명도 자신하기 어렵다. ‘이재명 효과’를 기대했으나 ‘이재명 구하기’로 전환해야 할 만큼 다급한 상황이다.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이재명과 송영길을 투입한 지도부는 벌써부터 내분과 함께 책임론에 휩싸였다. 비대위가 이재명과 송영길 공천을 결정할 당시 반대 여론은 비등했다. 주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명분 없는 출마. 둘째, 조급한 결정. 셋째, 오만함이다. 정치적 고향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을 서울시장과 인천에 공천한 건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하기 어렵다. 또 대선 패배에 책임 있는 두 사람 출마는 성급했고, 결과적으로 오만했다.

왜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결정을 반복할까. 모두가 인식하는 이재명과 송영길 출마 불가론이 왜 그들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동안 민주당은 핵심 쟁점마다 강성 지지층에 굴복해 오판을 거듭해 왔다. 비례위성 정당 설치, 4·3 재‧보궐선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공천, ‘검수완박’ 법안 처리, 그리고 불발에 그쳤지만 언론중재법 개정 강행까지 적지 않은 무리수를 범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정치전쟁>에서 “2022년 대선은 그런 신앙으로 인해 빚어진 ‘진보의 자해극’이 누적된 결과였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가 말하는 ‘신앙’이란 “우리는 정의롭다, 우리는 틀리지 않다”는 ‘내로남불’과 ‘오만’을 뜻한다.

민주당이 합리적 판단을 상실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집단 극단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캐스 R. 선스타인 교수가 쓴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를 토대로 짚어보자.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면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또 생각이 같은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은 높아진다. 특히 정치적 극단주의는 집단 극단화 산물인 경우가 많다. 그는 2005년 콜로라도 주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통해 ‘집단 극단화’를 설명했다. 동성 결혼과 어퍼머티브 액션(할당제나 의무고용), 지구온난화 등 세 가지 이슈를 제시하고 집단토론 한 결과 극단주의는 한층 강화됐다.

진보성향 볼더 주민들은 보다 진보적 입장을 보인 반면 보수성향 스프링스 주민들은 반대 입장을 강화했다. 내부 다양성은 저하된 반면 극단주의 성향은 심화됐고, 진보와 보수 간격은 더 벌어졌다. 전문가인 판사들 또한 집단 극단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선스타인 교수는 판사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판사들끼리 함께할 때 더 극단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3인으로 구성된 연방항소법원 판결문 1만4000건을 분석했다. 이 결과 재판부가 모두 민주당이거나 공화당으로 구성될 경우 극단적 판결은 두드러졌다. 전원 민주당 성향 판사인 DDD 패널에서는 진보적 판결, 전원 공화당 성향 RRR 패널에서는 보수적 판결이 높았다.

통상 민주당 판사와 공화당 성향 판사는 판결에서 15%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비슷한 성향을 가진 판사들과 함께할 때 판결문 차이는 34%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책은 집단 극단화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정보의 힘, 확증의 힘, 평판 압력을 꼽았다. 집단 내부에서 강경론자들이 그릇된 정보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높이면 확증도 덩달아 확대돼 극단화로 흐를 가능성은 높아진다. 또 집단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돌아올 시선을 우려한 나머지 생각과 신념을 유예하거나 수정하는 평판 압력을 받게 된다.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들이다. 민주당이 고비 때마다 여론과 거리가 있는 판단을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스타인 교수는 링컨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를 비교해 성패를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나타난 많은 실책은 집단 극단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다양성이나 반대 의견은 충성심 부족으로 간주되거나 억제됐다. 이라크 침공은 대표적이다. 스콧 매클렐런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링컨은 건강한 라이벌 팀을 이끌었다. 링컨은 자기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이들 주장을 하나하나 테스트한 뒤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 나오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지금 민주당 상황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집단 극단화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책은 견제와 균형을 제시한다. 내부 견제와 다양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집단 극단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극단주의를 부채질하는 내부 유대와 결속력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끼리끼리 문화와 내편은 괜찮다는 ‘내로남불’을 극복하는 게 우선이다. 온건한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이 밀려나면 집단 극단화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기에 반대 의견을 장려하고 경청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자기 입장과 반대되는 목소리는 외면하고 같은 입장만 받아들이는 편향동화도 극복해야 할 걸림돌이다. 다른 의견도 허용하고 경청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지금 민주당에 그런 리더십이 있는지 의문이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