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유럽發 글로벌 질서 재편의 축 아시아 쪽으로 이동

2022-05-31 13:41
중국 주도 RCEP vs 미국 주도 IPEF 힘겨루기, 각국 이해계산 복잡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경제 질서를 크게 흔든다.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러시아 연합전선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각국이 국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상정하며 계산기를 분주하게 두드린다. 변수가 계속 늘어나는 고차원 방정식으로 변하면서 이를 푸는 해법 찾기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단기적 혹은 중장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긍·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면밀한 검토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상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하여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포지션을 명확하게 정리해 나가는 국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점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겠다는 것이 엿보인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유럽 쪽에서는 최근 교통정리가 확실하게 되고 있다.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중립 지대에 있거나 러시아 편에 가까웠던 국가들이 서방 진영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뚜렷하다. 러시아에 근접해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NATO) 가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이어 조지아와 몰도바까지 EU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유럽 내에서 러시아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우군(友軍)이라고는 고작 벨라루스뿐일 정도다. 한편 아시아 지역에서도 구(舊)소련 시절 연방으로 묶어두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마저 정치·경제적으로 러시아보다 중국에 더 접근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다급해진 러시아가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러시아의 구원 요청을 마다할 리가 없다. 중국의 계산식에는 이번 기회에 미국의 괄목상대가 중국이라는 것을 재확인시키고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자국의 우산 속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하여 원유나 가스를 비롯해 희귀 금속 등 원자재와 식량 부문에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미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세력들을 규합하는 데 공을 들인다.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 당근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더해 미국 편으로 간주하는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편으로 쏠리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제 시계추가 급속하게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시아권은 전통적 가치 규범이나 종족 구성, 지정학적 여건, 경제적 상황 등이 유럽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고, 중국은 훨씬 가깝다. 이에 따른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편짜기가 빠르게 진행되는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당장에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안보적인 측면에서 보면 현실적인 위협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시아 각국 정권들이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곡예를 하는 이유도 이에서 기인한다. 일부 국가는 이를 역이용해 이익을 챙겨보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양다리 걸치는 전략적 모호성은 곤란, 가까운 시기에 린치핀 결정하는 수순 밟을 듯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듯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국익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 주도의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 주도의 CP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이다. RCEP가 중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ASEAN(동남아) 등 15개국이지만 CPTPP는 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북중미 4개국·싱가포르 등 ASEAN 4개국 등 11개국이다. RCEP가 순수 아시아권 국가들이 회원국인 반면 CPTPP는 태평양을 공유하고 있는 북중미 국가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RCEP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CPTPP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아시아 국가는 한국을 필두로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등 7개국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CPTPP보다 RCEP에 더 많은 수의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CPTPP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 수단으로 새로운 경제 블록인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를 출범시키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IPEF에는 미국·일본·한국·인도·호주·뉴질랜드에 더해 ASEAN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ASEAN 10개국 중에 빠진 국가는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다. 또 하나 특징은 인도의 참여다. IPEF에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원국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결국 RCEP와 이의 대항마인 IPEF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경제적 이익과 안보적 위협 수위에서 결정된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와 같은 양 다리 걸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회색지대에서 탈피하여 가장 먼저 미국 편에 선 국가가 인도이고, 다음이 한국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다소 시차를 두고 전략적 판단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으로 중국에 밀착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적 종속이나 부채 함정 등 부정적 사례가 커지면 등을 돌릴 공산이 크다. 또한 중국의 패권 지향적 해양 진출로 국익 손실이 가시화되면 반중(反中) 연대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IPEF를 포함해 RCEP·CPTPP에 몸을 담그며 유불리를 계산하면서 린치핀(중심축)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