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한반도 전략적 과제
2022-05-30 06:00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제 3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당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시도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분쟁은 외교적으로 해결될 여지가 있었음에도 양국 지도자들의 비이성적인 선택으로 결국 전쟁으로 비화하였다. 처음 전쟁이 시작될 때 이 전쟁이 길게 지속되지 않고 제한전의 성격을 띨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이제 당사국인 두 나라는 물론 유럽과 전 세계 국가들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 종전될지 가늠할 수 없는 장기전의 양상을 보인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물리치고 승리할 때까지 무기와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공언을 하였다. 미국 행정부는 물론이고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까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이 같은 약속을 하고 미국 의회는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제3국에 대한 무기 지원을 보장하는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켰다.
우크라이나를 먼저 침공하였고 민간인에 대해 반인도적인 행위를 했다고 알려진 러시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가중되고 있어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는 분위기가 서방에서는 지배적이다. 게다가 전쟁 초기에는 양국 간 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중재에 나섰던 국가들의 노력이 무산된 이후 이제는 중재를 위한 노력도 중단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전쟁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원인분석에 대해서는 현실주의 외교의 관점과 가치중심 외교의 관점에서는 차이가 난다. 개전 책임에 대한 논의는 덮어두고 이 전쟁이 장기화되고 서방여론이 바라는 대로 결국 러시아가 패배할 경우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전쟁 초기 양국의 피해가 적었을 때는 외교적 타협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양국이 서로 깊은 상처를 받은 지금 타협을 통한 출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 전쟁이 길게는 3년까지 지속되어 제2의 한국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 이후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권으로 양분화된 구냉전 전선이 확고히 형성된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는 다시 자유진영과 권위진영 간의 대립이 일상화되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러한 신냉전 시대 도래는 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며 대치하는 양 진영 간 긴장은 계속 고조될 것이다.
장기간 전쟁의 참화를 무릅쓰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물리치는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국이 주권적 의사결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원했던 것처럼 NATO에 가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서방국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여 자유가 독재에 대해 승리했다는 정신적 승리, 가치의 승리를 얻은 것 이외 실질적 이득은 별무할 것이다. 서방세계를 권위주의 진영에 대해 하나로 묶어 단결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도 종전 이후 실제로 구체화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의 공격성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지겠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서방국 모두를 일치단결한 연합체로 만들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유럽 주도로 역내문제를 풀어나갈 역량을 갖추려는 자각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는 국제정치적 인식과 경제적 이익이 다른 유럽이 미국이 구상하는 국제질서에 편승하기보다는 유럽 독자적인 행보를 해나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런 유럽의 독자행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촉발하였다. 설립 초기인 유럽군을 더 확대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하려는 유럽의 행보는 이러한 유럽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주권적 권리와 가치의 승리라는 무형적, 정신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이득은 온 세계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비해 그리 큰 이득이라 할 수 없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굴욕적인 철군을 하더라도 이러한 군사적 패배는 러시아 민족적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가해 앞으로 러시아가 이를 만회하려 절치부심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경제적으로는 2류국가이지만 군사적으로는 2대강국이라고 여겨졌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패배하게 되면 러시아는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가 되는 수모를 감수하더라도 중국과 연대하여 서방국에 대한 복수를 벌이려 할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복수심과 중·러 양국 간 전략적 동맹은 전 세계의 신냉전 구도 형성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잠재적 적국의 하나인 러시아를 자국의 조력국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자국의 치명적 약점인 에너지와 식량안보를 러시아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와 공유하는 4천㎞ 이상의 국경에 대한 인보우려를 불식하고 자국의 배후전선에 배치할 군사력을 남중국해 방면 전선에 집중하여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에서 전략적으로 한결 유리한 구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의 복수를 막기 위해 유럽전선에 계속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양면전쟁의 위험에 대비하느라 전략적 자산과 관심이 반분되는 단점을 안게 된다. 중국에 유리한 이런 지전략적 구도를 배경으로 적정한 시점에 중국이 모험주의적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반도는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이러한 우려스러운 상황까지 고려하여 우리의 전략적 운신과 대비를 해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마주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