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김지훈 감독, 분노는 나의 힘
2022-05-04 00:00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교 폭력으로 무너진 아이들의 영혼을 담아낸 작품이다. 학교 폭력으로 고통당하던 '건우'가 스스로 몸을 던지고 그가 편지에 남긴 4명의 아이가 가해자로 지목된다. 그들의 부모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명 일본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지난 2011년 대구 수성구에서 벌어진 학교 폭력 사건을 덧대 관객들의 상처를 건든다. 실제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목포는 항구다'(2004) '화려한 휴가'(2007) '타워'(2012) '싱크홀'(2021)로 관객들과 만나온 김지훈 감독이 2017년 촬영한 영화다. 여러 차례 투자·배급이 무산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때마다 김 감독은 "'건우'의 아픔과 그의 영혼이 파괴되는 지점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텨냈다.
김 감독이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은 덕에 영화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신세계 그룹의 자회사 마인드마크가 배급을 맡아 5년 만에 극장 개봉하게 됐다. "피해자의 마음으로, 분노를 원동력으로 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한 그는 아직도 분노의 불씨에 마음을 끓이고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김지훈 감독의 일문일답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목포는 항구다'(2004) '화려한 휴가'(2007) '타워'(2012) '싱크홀'(2021)로 관객들과 만나온 김지훈 감독이 2017년 촬영한 영화다. 여러 차례 투자·배급이 무산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때마다 김 감독은 "'건우'의 아픔과 그의 영혼이 파괴되는 지점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텨냈다.
김 감독이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은 덕에 영화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신세계 그룹의 자회사 마인드마크가 배급을 맡아 5년 만에 극장 개봉하게 됐다. "피해자의 마음으로, 분노를 원동력으로 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한 그는 아직도 분노의 불씨에 마음을 끓이고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김지훈 감독의 일문일답
- 그야말로 '감개무량'하다. 배급사가 다섯 군데 바뀌고 개봉하기까지 녹록지 않았는데 '불씨'를 꺼지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었던 건 '건우'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의 아픔과 영혼이 파괴되는 지점들을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전달하고 싶은 연출자의 마음이 강했다.
최근 재난 영화 등 장르적으로 주력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
- 제가 들은 말 중에 가장 신선했던 말이 '이거 김지훈 영화 맞아? 많이 반성했네'였다. 제게 기대치를 가지셨던 거라고 본다. '화려한 휴가' 이후 재난이라는 장르에 초점을 두기도 했고 컴퓨터 그래픽에 관심을 가졌었다. 결이 다를 수는 있으나 이번 영화도 결국 재난 영화라고 본다. 학교 폭력은 결국 영혼의 재난, 마음의 재난이다. 다른 재난은 회복할 수 있으나 마음의 재난은 치유되지 않는 거지. 이번 영화를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고 많은 스태프와 아이들 덕이라고 하고 싶다. 그 힘, 그 도움으로 결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이 작품을 보고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 분노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촬영까지 이어갔으나 막상 촬영하면서는 시작과는 다른 분노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건우'의 아픔, 영혼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가해자를 향한 분노였다면 지금의 분노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지 않고 은폐하려는 세상에 관한 분노다. 모른 채 눈을 감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다. 그 마음이 이 작품은 끝까지 끌고 오게 만든 거 같다.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 중에서도 독특하게 '가해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연출할 때도 주의해야 할 요소들이 있었을 텐데
- 이 영화의 주요 서사는 '건우'의 아픔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더라. 들여다보고 싶지 않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땐 '피해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내 아이가 학교 폭력 피해를 본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더라. 하지만 촬영을 진행할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어떡하지?' 두렵더라.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다. '건우'의 아픔이 온전히 전달되었는가? 스스로 전달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천우희가 연극의 열혈 팬이라고 고백했다. 희곡과 시나리오는 많은 부분 차이가 있고 그 지점이 매력적인 요소였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달라진 건가?
- 원작 자체가 탄탄했다. 이야기적으로 매료될 부분이 많았다. 연출자에게 '가해자의 시선'이라는 건 솔직히 탐나는 지점인 거 같다. 완벽한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게 어려운 점이었다. 한국적인 상황으로 변형하고 현재성을 담아 입체화하는 게 중요했다.
원작자는 작품을 보았나?
- 코로나19 시국이라 영화 완성본은 아직 보지 못하셨다(인터뷰는 영화 개봉 직전). 시나리오는 보여드렸는데 '참 잘 고쳤다'라고 하시더라. 처음에 제게 '이게 영화로 가능하겠느냐'라며, '아이들의 아픔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달라'고 하셨는데 뜻이 잘 전달된 거 같다.
주인공 '강호창(설경구 분)'은 복합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이면서 가해자이고 영화 말미에는 피해자라는 사실도 드러나는데. 인물의 온도를 어떻게 설정했나?
- '강호창'은 가해자의 탈을 썼지만, 또 피해자의 탈을 쓰기도 했다. 결국 평범한 '우리'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경험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순간 중 하나를 겪었고 어찌 보면 그건 형벌이기도 하다. 이 복잡한 캐릭터를 누가 소화할 수 있을까? 저는 설경구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의 눈빛 하나하나가 미리 읽히더라. 잘 해낼 거로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연출적인 지시는 따로 하지 않았다. 많은 부분을 배우에게 맡겼다.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소년 범죄를 다룬 작품들이 대거 공개됐다.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겠다
- 최근 넷플릭스 '소년 심판'과 '인간 수업'을 재밌게 봤다. 솔직히 마음을 졸이면서 봤다. '나보다 잘 찍었으면 어쩌지!' 하고(웃음). 5년 전에 찍은 영화보다 더 좋으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마음이었다.
보고 나니 어떤가?
- 세월이 지나면 모든 사건은 부패하고 발효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과 문제만큼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처음에 품었던 마음이나 연출적 방향이 아직 유효하다는 확신이 든다.
인물들의 배치나 공간 등 미술적인 부분도 인상 깊었다
- 연출자로서 욕심이 많았다. 과욕을 부린 부분도 있다.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아마 괴로운 요구사항이었을 거다. 나선형 계단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길 바랐다. 부모와 자식의 상징처럼. 영화 중간중간 이런 저의 어설픈 해석이 깃들어 있다.
절벽은 영화의 핵심 장소였는데 제가 요구하는 게 거의 억지였다. (절벽에 관해) 말하면 말할수록 제작진들 표정이 안 좋더라. 오죽하면 해외 촬영까지 생각했겠나. 간절하면 통한다더니 영화 속 절벽은 정말 우연히 찾게 됐다. 스태프 중 한 명이 우연히 지나가다가 발견했다고 하더라.
영화 말미에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호수 절벽을 계속해서 찾아갔다고 하던데
- 사실 영화 엔딩신을 찍지 못한 채 크랭크인(촬영 종료) 했다. '강호창'이 보는 그날의 진실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설경구도 영상 없이 설명만 듣고 연기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연출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였다. '건우'에 관한 마음이 힘들었다. 스태프들이 3개월 동안 대기하고 있고 저는 넋을 놔버렸다. 일주일에 3~4차례씩 절벽을 찾아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건우'가 어떤 마음을 느꼈을까 생각했다. 감정 이입하니 정말 힘들더라. 결국 마지막 엔딩 장면은 콘티 없이 찍었다. '건우'의 아픔을 던지기로 한 거다.
최근 연예계에도 학교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를 바라보는 김 감독의 마음은 더욱 좋지 않았을 것 같다
- 아이들에게 폭력은 단순한 외상이 아니다. 영혼이 파괴되는 일이다. 우리는 절대, 아이가 주저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가해 학생이 재미, 쾌락으로 '폭력'을 저지른다면 우리는 그것이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걸 계속해서 알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반복되지 않는 철저한 반성과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