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정리하고 총수 바뀌고…넥슨그룹 신사업 속도·방향 바뀔까
2022-04-30 08:00
공정위, 5월 1일부로 공시대상기업집단 '넥슨' 동일인으로 유정현 감사 지정
엔엑스씨, 故 김정주 관심 쏟았던 '아퀴스' 청산…非게임 전략 논의 재개 신호
유럽·한국·일본서 암호화폐거래소·유아용품·반려동물·콘텐츠·테마파크 등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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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일부로 유정현 엔엑스씨 감사가 넥슨그룹의 동일인이다. 이는 지난 27일 공정거래위원회의 '2022년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다. 당시 공정위는 이에 대해 "(김 창업자와 공동경영을 해온 유 감사가) 넥슨 창립 및 회사 경영에 관여한 점"과 "최상위 회사 엔엑스씨의 등기임원(감사) 중 유일한 출자자임과 동시에 개인 최다출자자(29.43% 보유 중, 자녀 지분까지 합하면 30.79% 수준)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자본력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한 특정 기업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돼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공시하고 기업집단별 '동일인'을 발표한다. 해당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자연인'이나 '법인'이 동일인이 되고, 자연인인 동일인은 '총수'로도 불린다.
즉 넥슨그룹의 동일인은 '넥슨그룹의 실질적 지배자'라는 뜻이다. 기존 넥슨그룹 동일인은 김 창업자였다. 그룹 지주사 엔엑스씨가 지난 3월 1일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엔엑스씨 이사가 지난달(2월) 말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부고를 전해, 동일인의 변경은 예고된 사안이었다. 김 창업자의 사후 이 회사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은 이제 유 감사라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의 발표에 따르면 유 감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한다고 볼 수 있는 국내 넥슨그룹 소속 계열사는 △㈜티디에프 △㈜엔미디어플랫폼 △㈜넥슨코리아 △㈜아퀴스코리아 △㈜넥슨스페이스 △㈜중앙판교개발 △㈜엔엑스씨 △㈜넥슨네트웍스 △유한책임회사 와이즈키즈 △스토케코리아 유한회사 △㈜네오플 △㈜넥슨게임즈 △㈜넥슨커뮤니케이션즈 △㈜데브캣 △㈜니트로스튜디오 △㈜띵소프트 △유한책임회사 엔엑스프로퍼티스 △브이아이피사모주식형펀드일호 등 18개사다.
다만 엔엑스씨 측은 관련 문의에 "유 감사는 최다출자자이자 등기임원으로서 엔엑스씨 이사회 의결 과정에 참여하고 (넥슨그룹) 동일인 지정 대상자에게 법적으로 규정된 역할을 따를 것"이라면서도 "넥슨 일본법인, 엔엑스씨, 넥슨코리아 등 주요 기업 경영 자체는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넥슨그룹의 동일인 변경에 따른 경영상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비트코인 거래 공시로 2년 만에 재조명된 '아퀴스코리아'
이 관계자는 또 "3월 31일 자로 아퀴스코리아 운영이 종료됐고 현재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절차가 많아 정확한 청산 완료 시점은 답할 수 없다"면서 "아퀴스코리아 임직원들은 희망자에 한해 엔엑스씨 산하 조직으로 적극 흡수하기로 했고 구직 활동에 대해 제한하지 않겠다고 3월 중 안내했다"고 덧붙였다.
아퀴스코리아가 보유 중이던 비트코인은 모두 퀀트(계량투자) 분야의 핀테크 스타트업인 웨이브릿지와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 두 회사로부터 인수된 것이다. 아퀴스코리아의 '비유동자산 취득결정' 공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020년 말부터 2021년 7월 사이에 이 두 회사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총 88억원어치의 암호화폐를 사들였다.
김 창업자 게임 외 신사업 움직임 재개 신호
엔엑스씨가 넥슨컴퓨터박물관 운영을 맡던 자회사 '엔엑스씨엘'을 2019년 감자한 뒤 2020년 2월 재출범한 법인이 아퀴스코리아다. 엔엑스씨는 2020년 3월에 아퀴스코리아의 설립 배경과 사업 목표 등을 발표한 주체였고, 이 회사의 유상증자에 수차례 참여해 수백억원 규모의 출자를 결정했다. 아퀴스코리아는 게임처럼 쉬운 디지털 자산 거래 서비스를 내놓겠다며 출범했고, 생소한 전문용어와 번거로운 거래 과정을 없애 자산관리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아퀴스코리아의 서비스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김 창업자가 지난 2021년 7월 29일 엔엑스씨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다면서 돌연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등기이사로서 사내이사 직함만 남긴 뒤 아퀴스코리아와 관련된 소식은 사실상 전무했다.
아퀴스코리아의 출범부터 정리 기간 전반에 걸쳐 이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김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아퀴스코리아의 재출범, 이 회사에 대한 엔엑스씨의 유상증자 참여, 비트코인 인수 등 법인 활동과 관련된 주요 결정은 모두 김 창업자가 엔엑스씨의 대표로 재직할 동안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엔엑스씨 측은 비트코인 양수의 배경이 된 아퀴스코리아 법인 운영 종료 계기가 김 창업자의 별세 이전부터 결정돼 있었던 것이라는 입장이다. 운영 종료와 법인 청산이 김 창업자가 신사업 분야에 관여한 마지막 의사결정이었다면, 앞으로 넥슨그룹의 암호화폐·블록체인 관련 투자 기조도 달라질 수 있다.
투자법인은 암호화폐거래소·유아용품·반려동물 사업 투자…사업법인은 콘텐츠IP·테마파크 베팅
엔엑스씨는 아퀴스코리아와 별개로 한국의 '코빗'에 투자했고, 계열사 가운데 벨기에 투자법인인 NXMH를 통해 유럽의 '비트스탬프' 등 암호화폐거래소에 투자하기도 했다. 특히 NXMH는 노르웨이의 명품 유모차 회사 '스토케'와 프랑스의 '베이비젠', 이탈리아의 반려동물 사료 회사 '아그라스 델릭'과 '세레레' 등을 인수하며 그룹의 해외 비게임 사업 확장을 지속해 왔다.
최근 넷마블·엔씨소프트·위메이드·카카오게임즈·크래프톤 등 국내 대형·중견 게임사들은 대체불가능토큰(NFT)과 연동되는 블록체인 게임, 메타버스와 웹3 기술 관련 신사업을 통해 성장동력 확보를 선언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반면 넥슨그룹 차원에선 김 창업자의 생전이 암호화폐 투자에 가장 적극적일 때였는데 이 기간에도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넥슨은 김 창업자의 꿈인 '아시아의 디즈니' 비전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오웬 마호니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지난 3월 김 창업자를 추모하고 넥슨을 세계 최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메시지를 주주서한으로 내놨다. 넥슨은 지난 2020년 6월 1조8000억원가량을 투자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되겠다는 구상 아래 각국 게임·영화·문화 관련 회사에 투자해 왔다.
넥슨 일본법인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놀이시설을 갖춘 시설의 기획 및 경영', '행사 기획 및 운영', '요식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넥슨이 창업자의 뜻을 이어받아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IP 기반의 테마파크 사업 추진에 힘을 더 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