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좌충우돌] 민주당의 '검수완박' 무리수...근간엔 '검찰포비아'
2022-04-22 08:00
검찰 출신 대통령, 與원내대표, 법무장관..."검사동일체, 삼위일체 완성"
그러나 현재 민주당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정치세력이 검수완박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물론 '검찰개혁'에 한목소리를 내온 정의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같은 시민단체,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현재 추진하는 내용과 밀어붙이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검수완박' 내용을 살펴보니
"개인의 생명‧재산 보호 및 공공의 안전 보장을 위한 검찰의 국가형벌권은 그 행사에 있어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음. 그러나 검찰의 국가형벌권 행사에 있어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있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와 기소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음."
"수사권과 기소권 이원화는 민주 국가 사법 체계의 기본이며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국회 속기록에 따르더라도, 대한민국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자 의욕하였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축소하는 것은 오래된 시대적 과제임."
"이에 현행 '검찰청법'상의 6대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한 규정 등을 삭제해, 공소 제기 및 유지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검찰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국가형벌권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고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함."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제안 이유다. 세트인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비슷한 논지를 담았다.
검찰청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검사의 직무를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과 경찰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 수사로 한정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수사는 사법경찰관의 직무로 하며 검사의 수사는 다른 법률에 규정이 있는 예외적 경우에 한함(안 제196조 삭제 및 안 제197조제3항 신설 등)"이 골자다.
즉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아닌 '일부만 남기고 박탈'이 더 정확한 이야기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었던 기소권은 보존하고, 검찰의 경찰과 공수처에 대한 수사권은 남겨둬 검찰과 경찰, 공수처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설명이다.
◆ "尹 당선인, 대통령 취임하면 '검수완박' 거부권 사용"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1일 "국민의 인권을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국제형사사법 절차의 혼란과 법체계의 혼돈을 초래하는 소위 '검수완박법'의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월 10일 공식 취임하면 '거부권'을 사용할 것도 예고했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인수위원들은 이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제처 문의 결과를 공개했다. 다만 브리핑이 나가고 법제처는 "공식의견이 아닌 개인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법제처 관계자는 "위헌성 및 법체계상 정합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국제형사사법 절차의 혼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개인 의견을 제시했다.
인수위에 따르면 '검수완박법'은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영장신청권을 법률 단계에서 형해화함으로써 위헌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법경찰관이 검사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사후영장을 청구하도록 한 것은 위헌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검수완박법'은 이미 검사의 수사권을 전제로 만들어진 수많은 다른 법률과 충돌되어 형사사법체계에 대혼란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인수위 측은 "'5‧18 진상규명법’', '포항지진피해구제법' 등에서는 관련 범죄혐의를 검찰총장에게 고발하도록 하고, 검찰총장은 검사로 하여금 관련 범죄를 수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검수완박법이 통과되면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결국 관련자의 피해가 제대로 구제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등에도 공정위가 관련 범죄를 검찰총장에게 전속적으로 고발하도록 규정하면서 검사의 수사를 바탕으로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도록 조치하고 있다"며 "만약 검수완박법이 통과된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이 어려워지고 처벌에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힘없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만 심각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밖에 '국제형사사법 공조법', '범죄인 인도법' 등도 법무부장관과 검사를 국제형사사법체계에서 수사의 주재자로 규정하고 있다. 최소 50여 개국과 맺은 여러 '형사사법공조 관련 조약'과 '한미행정협정' 역시 검사의 수사권을 전제로 체결돼 있다. 자칫 외교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 그럼에도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민주당
민주당의 목표는 이달 내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5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를 공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에서 이견이 큰 법안은 별도의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최장 90일 간 논의를 더 할 수 있다. 민주당이 목표하고 있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등의 이달 내 법제사법위원회 처리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인 민주당 3명, 국민의힘 3명으로 구성되는데 무소속 의원이 있을 경우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무소속 1명으로 된다. 만약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면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을 채울 수 있다.
이에 민주당은 지난 8일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던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법사위로 사보임시키며 협조를 기대했다. 그러나 양 의원은 검수완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사실상 '위장 탈당'으로, 안건조정위가 구성된다면 야당 몫으로 합류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민주당 내 강경파인) '처럼회' 이런 분들은 막무가내였다. 강경파 모 의원은 특히나 (검수완박 안 하면) 죽는다고 했다. 다른 분한테서는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내게 두 가지 이유를 말했다. 하나는 지지층마저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번에 안 하면 못 한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 퇴임 전에 못 하면 안 된다는 맹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가. 대통령 탄핵도 시킨 국민인데 국민을 믿고 가야지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검찰공화국'에 대한 공포감이 팽배하다. 정권이 넘어가기 전 검찰의 힘을 최대한 빼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기간 검찰에 자체 인사권과 예산편성권 등을 부여해 강화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특히 보수진영에서 '조선제일검'으로 불리는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윤 당선인의 모습에 경악을 넘어 공포심까지 느꼈다는 사람도 있다. 검찰 출신 대통령(윤석열), 여당 국민의힘 원내대표(권성동), 법무부 장관(한동훈) 삼위일체가 갖춰졌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검사동일체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였다"며 "특정 목표가 정해지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겠는가"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국무총리 관련 수사 때 검찰의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2003년 폐지된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는 전국의 검사들이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유기적 조직체로 활동한다는 원리다. 핵심은 상명하복이다. 윤 당선인이 검사 시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은 사실 '사람이 아닌 검찰조직에 충성한다'는 것 아니었냐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