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칼럼] 교육부 통제에서 대학을 해방시켜라
2022-04-19 20:12
"위기의 대학 - 새 정부, 교육개혁은 이렇게' (1)
"위기의 대학- 새 정부, 교육개혁은 이렇게'
최근 대학 관련 검색어는 단연 ‘위기’와 연계된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자 여론이 들끓는다. 대학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있고, 일부는 대학이 망하면 지역 소멸이 가속화한다고 우려한다. 정원 감축과 학사 구조 개편이 대학 내에서 진행되고, 대학 총장들은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교육재정 확충을 정부에 요구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필사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당당하게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우리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전수하는 기본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가? 사회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선도하면서 인간과 사회의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가? 세계 10위권 경제 역량에 걸맞은 세계 10위권에 드는 대학을 보유하고 있는가?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누리고, 고등교육의 수혜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는가? 필자 생각에 대학의 위기는 근원적이고 심오하다.
필자는 새 정부에 바라는 교육개혁 칼럼(3월 25일자)에서 대학의 위기를 네 개 범주로 나누어 진단했다. ①정체성의 위기:지식정보화시대 대학 효용성의 위기 ②경쟁력의 위기:수도권 집중과 서열화로 공정경쟁 소멸의 위기 ③소멸의 위기:학령인구와 재정 위축에 따른 존립 위기 ④관리의 위기:교육부 폐지론과 대안 부재의 위기.
이제 하나씩 정밀하게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자.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교육부 폐지론과 관련지어 ‘관리의 위기’를 다루고자 한다.
(1)대학의 위기에 대한 책임
인수위 방침의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이 방안의 구체적인 이유는 "교육부의 지방대 정책은 획일화된 평가에 따른 기계적 지원 등에 머물러 각 지역 특색에 맞는 대학 발전과 인력 양성을 이끌지 못했다"는 당선인 핵심 관계자의 지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사를 읽으면서 교육부의 무능과 무책임, 나아가 이기주의에 대한 원망이 만시지탄의 아쉬움과 함께 밀려왔다.
지방대 위기는 이미 한 세대 전에 인지되고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이 뒤따랐다. 실제로 2000년 연말에 작성된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지방대학 육성대책'은 위기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내놓은 처방전이었다. 당시 지방대는 우수학생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 심화로 공동화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적령인구 감소, 정원 확대, 경쟁력 약화로 정원 미달 사태가 심화할 우려가 높았다. 그래서 정부는 지방대학 발전을 통한 지역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을 세우고, 한편으로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적합한 지방대학의 역할을 제고하는 정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문건의 위기 진단과 대책은 최근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종 공청회와 토론회에서 쏟아지는 발표문의 문제의식과 대처 방안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문건은 6개 육성 대책을 제시한다. 1. 지방대학의 자생역량 강화 2. 권역별 산·학·연 연계 체제 구축 3. 지역 평생학습센터를 중핵 기관으로 육성 4. 지방대학 학생 취업 기회 확대 5. 우수 학생과 교수 유치 여건 조성 6. 양적 감축·내부 혁신을 통한 질적 발전 추진. 만약 이 대책들이 성실히 이행되었다면 오늘날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난날의 얘깃거리가 되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제는 교육부의 정책 구현 의지였다. 이들 대책 가운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항목은 산·학·연 연계와 평생학습기관으로서 지방대학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지휘·감독권 관련 대책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대책과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지방대학의 자생 역량 강화’ 방안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방안은 세부적으로 정부 주도에서 자체 발전 의지 조장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고 대학별 자체 발전 계획을 평가하여 지원함으로써 비교우위, 특성화 분야 중심으로 대학의 자율 구조조정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특성화 분야 육성은 자취를 감추고, 구조조정을 위한 대학평가만 남았다.
작금의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지방대를 고사시키고 대학 생태계를 망치는 주범이 바로 대학평가다. 교육부 스스로 육성 대책에서 지방대의 위기 원인을 수도권 집중과 학령인구 감소로 지적하고도 평가지표에 이런 요소들을 반영하지 않는 난센스가 바로 대학평가라 할 수 있다. 설립 주체가 다르고 재정 여건이 판이한 국립대와 사립대를 함께 묶어서 재정건전성을 평가하고, 지휘·감독권을 쥐고 교수 정원을 부여하는 국립대의 교수 확보율을 평가기준으로 삼는 모순이 판을 친다. 설립 목적이 판이한 일반 대학과 종교재단 설립 대학을 함께 비교하고, 대형 종합대학과 소형 대학을 함께 경쟁시키는가 하면 지역의 인구 및 산업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자비할 정도로 단순하게 비교한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가 지적한 교육부 정책의 실패 요인도 바로 이 지점이다.
또한 양적 감축·내부 혁신을 통하여 질적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육성 대책을 밝혔다. 여기에는 국립대학 구조조정 평가사업을 통해 특성화와 내부 혁신을 강력하게 유도하면서 국립대와 사립대 간 역할 분담을 추진하는 참신한 실행 계획이 들어 있다. 그에 따라 국립대학에 기초학문과 보호 학문 분야 및 대규모 예산 소요 분야를 육성하는 역할을 부여하려고 했다. 또한 기준 미달 사립대에 대해서는 정원 감축 및 재정 지원 중단 등 행정적·재정적 조치를 취하고, 설립 목적 달성이 곤란한 대학법인을 위한 퇴출 경로 마련이 검토되었다. 그리고 수도권 대학 신증설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국립대 교수들이 오래전부터 국립대 특성화와 집중 투자를 요구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매우 이례적이고 주목할 만한 정책 방향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립대 특성화는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경쟁과 인센티브 확대를 통한 교육·연구의 질 제고에 맞춰 교수계약 임용제와 연봉제가 도입되고 교수업적 평가제가 개선되었다. 그 결과 교육부는 대학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달성했고, 대학 당국과 교수집단은 교육부의 갖가지 평가에 휘둘리는 신세가 되었다. 한편 수준 미달 사립대 퇴출과 수도권 대학 증원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며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아쉽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2000년 이후 갖가지 정부 지원 교육사업이 진행되면서 ‘선택과 집중’ ‘구조조정과 통폐합’ ‘재정지원사업’ ‘역량 강화’ ‘특성화 사업’ 등 대학 구성원들을 옭아매는 구호가 난무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행여 사업비를 따내지 못해 부실 대학으로 낙인찍히고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감이 대학가를 휘감았다. 실제로 필자도 그런 우려 속에 ‘지방대학특성화사업(CK-1)'에 뛰어들어 재정지원사업의 본질과 대학의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결과 교육부에 대한 분노만 더 커진 경험이 있다.
대학정책의 핵심은 교육부의 통제에서 대학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그 단서는 KAIST 등 5개 연구 중심 대학에서 엿볼 수 있다. 1962년 이래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과 ‘과학기술백서’ 편찬, '과학기술진흥법'(1967) 제정, 총리 산하 종합과학기술심의회 설치·운영(1973∼1996), 한국과학재단 설립(1977), 특성화공과대학육성사업(1977) 등 과학기술 발전에는 오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었다.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은 모두 특별법에 근거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산을 지원받는다. 교육부 통제를 벗어나서 충분한 예산을 지원받을 때 대학이 대학다움을 가질 수 있음을 여기서 확인한다.
반면에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모든 대학을 지원과 육성의 대상으로 대하기보다는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본다. 상기 5개 특성화 대학과 달리 일반 대학을 규율하는 법은 '고등교육법'이다. 이 법은 고등교육의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나아가 법률 제정의 적극적인 의지와 목적을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기본법에 고등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학교를 두기로 했으니 그에 관한 법률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등교육법이 있는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대신 학교의 종류, 학교의 구분, 학교의 설립 등, 학교규칙, 교육재정 및 다수의 등록금 관련 조항 등과 교수의 구분과 신분, 학칙 제정과 그 내용, 신입생 선발과 입학사정관 운영, 입시전형료 징수와 사용, 수업 시간과 학점 부여 기준, 졸업 사정 등 학사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요컨대 상세하고 촘촘하게 규칙을 정한 일종의 실무지침서와 다름없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에 '대학법'이 없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작년 하반기에 대학 자치와 학문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안정적이고 충분한 재정 지원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국립대학법(안)'이 발의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법의 근본적인 취지는 국립대학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있다. 정진후 의원이 2104년 법안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의 부속기관이자 단순한 교육행정 집행기관에 불과한' 대학을 대학 자치와 국가의 지원이 보장되는 명실상부한 학문기관이자 최고 교육기관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교육부는 이 법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오래전부터 국립대학은 대학을 관리·통제하는 사무국장 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하여 2017년 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가 공들여 작성했던 국립대학법 초안은 총장이 교원이나 고위공무원 가운데 사무국장을 임명하는 방안을 제시해왔다. 이 파격적인 제안은 2021년 6월 공청회에서 '사무국장은 ········· 총장의 추천으로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다'로, 11월 최종 발의안에서는 다시 '해당 대학의 의견을 들어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다'로 거듭 후퇴했다. 법안 통과를 위한 발의자의 고뇌와 더불어 관리·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교육부의 강한 의지가 동시에 감지된다.
필자가 보기에 교육부는 대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지원과 정책 수립에 별 관심이 없다. '중앙행정기관의 부속기관' 혹은 단순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의 관리와 통제에 집중한다. 어쩌면 권위주의 시대부터 관료주의에 찌든 교육행정이 지금까지 계속 답습된 결과로 이해한다. 만약 국립대가 ‘국립대의 특성과 기능에 맞게’, 사립대가 ‘사립대의 특성과 기능에 맞게’, 또한 ‘지역적 특색과 결부 지어 대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정책수단을 활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립대와 건실한 사립대에 OECD 회원국 대학다운 공공재정을 지원했어도 오늘과 같은 위기를 맞았을까?
바야흐로 교육부의 시간은 지나간다. 지방대학이 교육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발전할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수많은 보고서가 국가균형발전 없이 대한민국의 발전은 지속적이지 않다고 경고했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국토연구원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방안'에서 ‘지방대학 육성→지역 혁신 활성화→지역 산업 발전→지방과 수도권 격차 해소→인재의 지방 정착→지방대학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강조하면서 지방대학을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주체 중 하나로 육성하는 자립형 지방화 전략을 추진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도 '지방대학 및 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나아가 2021년 6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대학 혁신 역량 제고 방안'에서 '보다 혁신적인 지방대학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대학정책의 초점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시·도 또는 권역) 단위로 이양해야 하며, 준비된 지역에 대해 과감한 권한 이양(정원, 학과 신설, 운영 형태 다변화 등)과 재정 투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안이든 법률이든 모두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비상대책이었다. 그때마다 교육부의 정책 실현 의지를 의심해야 했고, 교육부의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철학 부재가 노출되었으며, 실천 방안의 부재로 위기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거듭된 실패로 이제 교육부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갔다. 지자체가 교육부 권한을 이양받아 행사하려고 들면 실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 수평적 관계에서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 정부의 지방대학 육성 의지가 지방 소멸을 막고 지방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 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2022) 공저 △교수신문 논설위원,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