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철의 AI 인문학] ⑭ 피그말리온의 전설, 자율주행연구로 다시 시작되다

2022-04-15 00:05

“이 조각상 같은 여인을 제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세속의 여자들이 정결하지 못하다고 믿었던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형이라 생각하는 여인의 형상을 조각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조각상 여인이 탄생하고, 피그말리온은 이 조각상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그는 키프로스의 신, 아프로디테에게 이 조각상을 사람으로 환생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피그말리온의 정성에 감복한 아프로디테는 그 소원을 들어 주었고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과 행복한 일생을 보냈다. 피그말리온 신화의 줄거리다. 

1968년 미국 과학자들은 여러 기계들을 조합하면서 간절한 바람을 보냈다. 이 기계 조합이 사람처럼 움직여 주길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때 아프로디테가 재림한 것인가? 이 기계가 실제 살아 있는 인간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로봇 이름은 셰이키(Shaky the Robot). 요즘 자동차 업계에선 자율주행 경쟁이 매우 뜨겁다.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프로젝트가 바로 셰이키다.

사실 60년 전에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든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당시 개발을 주도한 스탠퍼드연구소(SRI) 인공지능 센터에선 해결해야 할 난제가 너무 많았다. 자율주행을 처음으로 상용화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스탠퍼드대 출신임을 감안하면 그 당시 자율주행 연구가 머스크에게 유전된 것은 아닐까?

로봇 관점에서 문제를 보자.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바닥, 의자, 책상 등을 인식한다.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카메라를 통해 점의 집합체로 입력한 다음 직선, 곡선과 같은 기하학적인 특징을 찾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을 해야 한다. 이 연산이 끝나면 로봇은 한 발짝 전진한다. 앞에 놓인 책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뀌었다. 앞에 했던 그 엄청난 연산을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계산을 해야 한다. 로봇 공학,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연구를 융합하고 논리적 추론과 신체 행동을 함께 연구해야 했다.
 

찰스 로슨 스탠퍼드연구소 연구원이 만든 인류 최초의 자율운행 로봇 '셰이키'. [사진=스탠포드연구소]


피그말리온의 전설이 되풀이된 것일까? SRI는 이 엄청난 난제들을 놀랍게도 모두 해결해냈다. 장애물로 가득 찬 3차원 공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율주행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한 것이다. 카메라를 비롯한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 정보를 수집한 뒤 바퀴가 달린 발로 신호를 보내 자유자재로 자율주행을 했다. 거리계와 범퍼에 장착된 근접 센서를 통해 실제 물체와 접촉하거나 충격하는 것도 감지했다. 좀 느리긴 해도 셰이키의 발명은 당시로서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셰이키는 뒤뚱뒤뚱 흔들면서 운행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로봇학습과 기획(SHAKEY: Robot Learning and Planning)'이라는 24분 길이의 동영상이 로봇과 자율운행의 가능성을 증명하게 됐다. 1970년 '라이프'는 셰이키를 '최초의 전자 사람'이라고 했다.

입력된 명령에 따라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로봇도 있었다. 1954년에 개발된 최초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Unimate)는 사람 대신 로봇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 로봇팔이었다. 로봇의 아버지 조지프 엥겔버거(Joseph Engelberger, 1925~2015)가 개발한 유니메이트는 유압 작동기로 가동되어 무게가 150㎏인 금속 부품을 들어올리고 자기저장장치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 로봇팔을 처음으로 산업 현장에 투입한 곳은 바로 제너럴모터스(GM). GM은 유니메이트로 부품의 이동이나 용접 등에 활용함으로써 본격적인 로봇 시대를 활짝 열었다.
 

최초의 휴머노이드 '와봇'. [사진=와세다대학교]


셰이키의 출현에 자극을 받아 더 정교한 로봇을 개발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치로 가토(Ichiro Kato, 1925~1994)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는 1971년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하는 지능형 로봇인 '와봇(Wabot)'을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와봇은 사람처럼 물건을 잡고 스스로 걷기도 했다.
 
영생의 세계를 발견한 과학자들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등장으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지구 말고도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수천년 전부터 하늘나라, 천당, 극락, 지옥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오늘날 상식이 된 디지털 세상을 처음으로 추론한 사람은 독일의 천재 과학자 콘라드 추제(Konrad Zuse, 1910~1995)였다. 1967년 그는 ‘계산 가능한 공간(Calculating Space)’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우리 세상을 디지털화 할 수 있으며,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세상은 가시적으로 우리 삶과 융합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디지털세계에 우리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고, 이 자아는 앞으로 슈퍼인공지능을 만나 사이버 세상에서 더 우리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사이버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참된 자아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나에 대한 더욱 선명한 인간적 특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통하는 모든 메시지, 이미지, 검색 결과, 과업은 모두 사이버 세계에 반영된다. 이러다 보면 우리는 육체적 사후에도 사이버 세상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천국은 사이버 세상이 아닐까?
 
NFT의 조상
그림, 음악을 비롯한 창작물이 자산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을 이용해서 표현하는 예술작품이 블록체인을 만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디지털 아트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예술은 그 시대에 편재했던 사회적 경향과 주제를 반영했다. 20세기 중반, 예술가와 공학자들은 예술적 작업과 컴퓨터 공학의 오래된 학문적 관습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창의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학제적 협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1966년에 공동 설립한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그룹은 새로운 표현수단을 만들기 위해 미술, 영화, 무용, 과학기술의 만남을 시도했던 비영리 단체다. 이들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을 확장시켜 개개인이 소외되지 않게 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물질, 기술, 공학이 동시대 미술에 적용 가능한 여러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수행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예술과 공학과 사회 사이에 새로운 상호관계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 이런 시작이 블록체인의 대체불가능토큰(NFT) 기술과 만나 예술 영역을 금융 분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1968년 런던 현대미술연구소(ICA)는 '인공두뇌의 우연한 발견(Cybernetic Serendipity)'이란 전시회를 개최했다. 자시아 레인하르트(Jasia Reichardt, 1933~)가 큐레이팅한 이 전시는 음악, 과학, 문학, 철학 등 여러 장르와 컴퓨터 예술을 통해 예술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는 행사였다. 관람객 6만명을 끌어모은 전시는 컴퓨터로 인해 열린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역사적 신호탄이 되었다.
 

1968년 열린 사이버네틱 세렌디피티 전시회 포스터. [사진=런던ICA]


절실한 자기정체성을 추구하던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은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계산되어 출력된 선과 점들을 예술품으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컴퓨터로 창작하는 작품에는 전통적인 비평 기준이 적용될 수 없으며 또한 인간의 손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인공두뇌를 이용한 작품들을 예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예술이 축적해온 영적인 기품이나 인간적 감수성, 독창성 같은 가치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한 일부 예술가들은 컴퓨터가 그려내는 선과 면에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재료의 등장, 그리고 기존 예술 체제에 전복을 일으키지 않고는 넘어설 수 없는 예술성의 한계라는 흥미진진한 도전장을 들고 컴퓨터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인공두뇌의 우연하고도 기분 좋은 발견을 경험한 예술가들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창조하는 예술, 통계적인 사항에 대한 프로그래밍의 변화를 회화적 조합으로 표현했고, 기호에 의한 자동적·기계적·순차적 구조를 시각화했다. 기술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질을 예술 영역에 도입하는 식의 예술적 표현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컴퓨터 아티스트들은 처음에는 기술자로 시작하여 때때로 자신의 작품에서 표출되는 세렌디피티, 즉 흥미로운 결과에 심취하게 되었다.
 
강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투사한 HAL9000
HAL9000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 1917~2008)의 미래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이다. 이 작품 속 우주 탐사선 디스커버리호의 두뇌와 중추신경 역할을 담당한다. 언어와 이미지를 인식하고 감각을 인지한다. 예술품을 감상하고 인간과 체스를 두어 이길 수 있는 지적·정서적 능력을 갖췄다. 인간에게 대항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힘까지 지닌 슈퍼 인공지능이다.

HAL9000은 인간 형상이나 로봇 모양을 취하지도 않았다. HAL9000은 평범한 컴퓨터처럼 구동장치와 메모리를 포함한 여러 부품으로 이루어졌으며 우주선체의 설비 장치에 내장되어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본체가 대상을 인지하면 빨갛게 빛나는 카메라 눈을 갖고 있고 이 눈을 통해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한다.

HAL9000은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답답한 적이 없느냐는 지상 인터뷰어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대답한다. HAL9000은 "인간과 일하기를 즐기고 항상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말한다. 아시모프의 로봇 3대 원칙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소설 속 HAL9000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HAL9000 시리즈는 컴퓨터 중 가장 믿을 만한 기계입니다. 정보를 잘못 이용하거나 실수를 한 적도 없습니다. 저희는 완벽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HAL9000은 승무원 데이비드 보만(David Bowman)과 프랑크 풀(Frank Poole)을 우주 바깥으로 내던지고 그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승무원 보만이 HAL9000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HAL9000의 기억장치를 해체할 때 이 인공지능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보만에게 사정한다. 그러면서 신음하는 목소리로 두려움을 호소한다. "무서워요, 내 마음이 사라지고 있어요. 기억이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HAL9000은 마지막으로 내장된 기억을 더듬으면서 자신이 만들어진 날짜와 만든 사람을 더듬는다. 그리고 자신을 만든 랭글리(Langley)가 가르쳐준 노래 ‘데이지 벨(Daisy Bell)’을 부르면서 완전히 기억을 상실한다. 기억을 상실한 HAL9000은 죽은 것으로 간주된다. 운영체제와 메모리가 손상되면 강한 인공지능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에 나온 HAL9000은 감정 변화도 겪고, 두려움을 느끼며 인간에게 대항하는 의지도 갖고 있다. HAL9000은 인간의 의도를 읽고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며 선제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펼치는 욕망도 보여준다.

200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직도 인간의 대척점에 서는 인공지능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가상의 기계 HAL9000은 미래 인공지능의 향방에 대해 수많은 상상력을 제공해 주었다.
 

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사진=강시철 비엔씨티코리아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