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CEO열전 ⓷]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고객 신뢰 확보가 곧 영업력"

2022-04-05 15:49
IB에서만 27년 근무한 '한투맨' 실력 탄탄
작년 순이익 1조4500억원 업계 1위 성과
사모펀드 100% 보상 파격적 리스크 관리
증권가 "또 한명의 롱런할 CEO 탄생" 평가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증권업계에서 상당수 최고경영자(CEO)가 재선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는 ‘안정 속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리스크, 증권산업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 등 녹록지 않은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에 아주경제는 올해 재선임에 성공한 대형 증권사 CEO들의 경영 행보를 되짚어보고 향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눠본다. <편집자주>

한국투자증권은 사장을 자주 바꾸는 회사가 아니다. 성과가 꾸준하다면 장기간 복무가 가능한 곳이다. 2000년 취임한 홍성일 전 사장은 8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고 그 뒤를 이은 유상호 전 사장은 11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2019년 취임한 정일문 사장은 회사 실적을 극대화시키면서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했다. 이대로라면 증권가의 또 다른 장수 CEO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정일문 사장은 2019년 1월 한국투자증권 신임 사장에 취임했다. 1988년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30년 넘게 이직 없이 복무하며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으로서도 공채 사원이 사장으로 취임한 첫 사례다.

그의 생존 비결은 IB(기업금융)다. 30년 재직 기간 중 무려 27년을 IB본부에서 근무했다. 2004년 LG필립스LCD의 한국·미국 증권거래소 동시 상장과 2007년 삼성카드 상장, 2010년 당시 역대 최고 규모(4조8000억원)였던 삼성생명 상장 등이 정 사장 작품이다.

사장 자리에 올라서도 성과는 이어졌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과 영업이익 모두 1조원을 돌파했다.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1조4502억원으로 전년 대비 104.9% 증가해 업계 1위였다. 영업이익도 1년 만에 70.1% 증가한 1조2940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다변화된 수익 구조와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호실적의 배경으로 꼽았다. 기업공개(IPO)·유상증자·회사채 발행 등 IB 전반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해외 주식 거래와 비대면 서비스 강화 등 위탁매매 부문에서도 빛을 발했다.
 

한국투지증권 전경[사진=한국투자증권 제공]


정 사장은 올해도 직원들에게 시스템 정비를 통한 경쟁력 제고를 주문했다. 연초 신년사를 통해 △리스크 관리 △디지털 혁신 △의사결정 과정 투명화 등 3가지를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근간이자 앞으로도 계속 주력해야 할 과제라고 천명한 바 있다.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으면서도 자화자찬은 하지 않았다. 정 사장은 "우리가 낼 수 있는 최고 성과는 아니었다"며 "모든 분야에서 경쟁사가 넘보지 못하는 압도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 사장은 올해 전 부문에 걸쳐 시스템 재정비를 추진 중이다. 정 사장은 "재정비는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낡은 굴레를 버리고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처음부터 살펴 개선·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새롭게 생각하고 과감히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갈 길도 중요하지만 지나온 길도 살펴봐야 한다는 게 정 사장의 생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6월 판매책임이 있는 라임, 옵티머스, 팝펀딩, 디스커버리 등 10개 부실 사모펀드 상품의 고객 투자금 100%를 선제적으로 보상했다. 

그 결과 두 달여 만에 총 600억원에 달하는 보상금 지급을 완료했다. 후속 조치로 사후관리부서도 신설했다. 

정 사장의 파격적인 약속에 다른 증권사들이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리스크 관리에 필요한 비용은 장기적으로는 투자'라고 생각하는 게 정 사장의 평소 지론이다.

정 사장은 "향후 분쟁조정 결과나 손실률이 확정되더라도 지급한 보상금은 회수하지 않겠다"며 "고객 신뢰가 회복되면 영업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