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새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신의 한수가 필요하다
2022-04-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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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운용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선 금리정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0월 이후 5개월 연속 3%대 고공 행진이다. 2월에는 3.7%를 기록해 머지않아 4%대도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물가 안정이 초미의 과제로 떠오른다. 소비자물가 급등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붕괴에 따른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설상가상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고급 인력 부족 현상에 따른 임금 상승도 가세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고 물가 안정 목표를 2%로 책정하고 있는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한국의 물가 상승 행진은 비용 측면이 원인인 전형적인 비용인상형 인플레이션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증가해서 물가가 오르는 수요견인형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한 정책이다. 비용인상형 인플레이션인데도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둔화되는 부작용이 수반된다. 특히 지금은 한국도 투자나 소비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세계경제 둔화로 수출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어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도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설상가상 미국 연준이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한국도 금리를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지 않을 경우에는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이 예상되어 한국은 동조 금리 인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소규모개방경제다.
이 정도만 해도 딜레마인데 설상가상 일본 엔화가 최근 급격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금년 초만 해도 달러당 114엔대를 보이던 달러당 엔화 환율이 최근 130엔대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엔화의 가치는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정도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 8월부터 일본 수입액이 급증하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를 지속한 데다 경상수지마저 지난해 11월부터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의 경상적자는 작년 9433억엔 흑자에서 1조1887억엔 적자로 추락할 것으로 일본 재무부는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은행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은 자본 유출을 우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 엔화는 글로벌 결제 비중에서 3% 정도로 큰 수준이 아니지만 기축통화인 데다 일본은행은 미국 연준과 상시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어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없어 오직 경기와 물가만 보고 금리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일본은 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9%, 1월 실업률은 2.8% 수준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엔화 가치가 이처럼 하락하는데 한국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라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금리를 올리고 있어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지난 3월 초만 해도 100엔당 1050원대였던 원·엔 환율이 최근에는 980원대까지 하락했다. 앞으로도 한국은 금리를 더 올리고 일본은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원·엔 환율은 더욱 하락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한국의 수출이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품목이 많은 한국은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국 통화정책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고공 행진하는 물가상승률과 미국 금리 인상 및 외환보유액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가능성을 고려하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고 경기 부진과 일본 엔화의 큰 폭 약세를 고려하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재정도 확장 기조에 머물고 있다. 내년에도 10조원 정도 지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지만 이미 슈퍼 예산 규모여서 여전히 내년 예산도 작지 않은 규모가 될 전망인 데다 당장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 보전을 위한 추경이 거론되고 있다.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의힘과 국채 발행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간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유념해야 할 중요한 변수가 한국은 지금 재정·금융·외환의 복합 위기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재정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통계 매뉴얼이나 선진국 기준의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 기준으로는 GDP 대비 130% 안팎이어서 위기 상황이다. 유로존 수렴 조건은 60% 미국 예산통제법은 100%를 위험 수준으로 보고 있다. 금융도 한국은행이 3월 24일 발표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명목GDP 대비 민간 신용(가계·기업 부채 합) 비율은 220.8%로 전년 말 대비 7.1%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금리 인상이 지속되어 취약 계층과 취약 기업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 미국의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엔화 약세가 있은 후 그 여파로 한국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이 둔화되면서 외환위기가 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997년에 경험해서 알고 있지만 위기가 한번 오면 새 정부의 경제는 붕괴되고 사회는 실업 급증으로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에는 재정에 여유가 있어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마련해 위기에 처한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구제해 주었는데도 엄청난 경제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1997년 1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총 168조7000억원인데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2분기 현재 공적자금 운용 현황에 따르면 2021년 6월 말 기준으로 회수액은 117조6000억원을 기록해 회수율은 69.7%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의 마지막 방파제인 재정이 바닥 수준이어서 위기가 한번 오면 기업과 금융에 미칠 충격파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 여파를 고스란히 새 정부가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새 정부의 거시정책 운용 여건이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통화당국 수장인 한국은행 총재와 재정당국 수장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교체된다. 사면초가인 거시경제 여건을 돌파할 수 있는 경험과 실력으로 무장한 인사의 기용이 새 정부 성공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경제정책론에서 틴버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정책 목표의 수와 정책 수단의 수가 일치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법칙이다. 정책 목표의 수보다 정책 수단의 수가 적으면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책 목표는 물가 안정, 성장과 일자리, 그리고 외환시장 안정이다. 그런데 정책 수단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뿐이다. 설상가상 재정은 5년 내내 팽창 정책을 지속해서 갑자기 큰 폭으로 줄였을 때 충격파를 고려하면 갑자기 줄이기도 힘든 상황이다.
하나 남은 수단인 외환과 환율 수단은 한국이 사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어 있는 소규모 개방 경제인데 외환시장 개입도 수년 전 체결한 한·미 환율협정으로 개입 내역을 공개하게 되어 있어 사실상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틴버건의 법칙에 따라 정책 목표의 수보다 정책 수단의 수가 적은 데서 오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신의 한 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럴 때 미시정책을 동원해야 한다. 외환시장 안정은 중단된 달러 기준 통화스와프인 한·미, 한·일 통화스와프가 중요한 해결책이다. 국제금융시장을 활용한 다양한 2선 외환보유액 확보도 중요하다. 재정정책이 한계에 직면해 있어 성장과 일자리는 규제 혁파, 법인세 인하 등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해 돌파해 나가는 것이 정공법이다. 원자재 공급망발 인플레이션 요인을 진정시키기 위한 공급망 개선에도 진력해야 한다. 새 정부의 성공과 경제 반등을 위해 곧 들어설 새 경제팀의 훌륭한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