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IP 중심 시대의 콘텐츠 산업, 서사 전략에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2022-03-31 14:24
‘오징어 게임’에 관해서라면 너무나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어쩔 수 없이 ‘오징어 게임’으로 글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이 산업적으로 남긴 가장 큰 교훈은 IP가 가진 중요성이다. 콘텐츠 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리스크가 매우 큰 산업이고 국내 콘텐츠 제작 관련 기업들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인지도 높은 작가와 스타급 출연진 등 특정 생산요소에 제작비를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은 산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지금까지도 대단한 성취를 거두고 있지만 국내 미디어 산업 관점에서 보면 IP를 전적으로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어서 전체 제작비의 일정 부분만이 국내 콘텐츠 산업으로 돌아왔다. 제작사 입장에서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제작비와 이윤까지 보장해 주는 넷플릭스와의 협업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미디어 산업 입장에서 ‘오징어 게임’과 같이 큰 성공을 거둔 콘텐츠의 성과 중 극히 일부 외에 모든 것을 넷플릭스에 내어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
OTT 산업의 활성화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 증대라는 필연적인 귀결로 이어졌다. OTT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내가 선택한 플랫폼에서 어떤 콘텐츠를 볼 수 있는가다. 넷플릭스가 주도하던 국내 SVOD 시장은 웨이브, 티빙 등 국내 OTT 플랫폼들이 경쟁력을 갖춰 나가면서 경쟁 양상이 변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었던 디즈니 플러스가 예상보다 고전하면서 국내 콘텐츠가 가진 가치가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즉, 국내 OTT 시장에서 아직까지 마블 등 자체 콘텐츠를 주력으로 하는 디즈니 플러스보다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를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는 넷플릭스와 국내 OTT 플랫폼들의 경쟁력이 보다 높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도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 OTT 시장에서 시업자 간 경쟁 양상이 향후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국내 OTT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한겨레의 서정민 기자는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에 실린 「‘오징어 게임’신드롬 취재기」에서 IP 측면에서 ‘오징어 게임’과 차별되는 사례로 ‘지옥’을 꼽는다. ‘오징어 게임’의 IP는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지만 ‘지옥’의 IP는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IP 활용을 국내 창작자 혹은 제작사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가진 차별성이다.
‘돼지의 왕’은 이미 2011년에 개봉된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는 아니지만 연상호 감독 특유의 세계관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니버스의 초기작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1년 전에 개봉되었던‘돼지의 왕’은 이제 티빙을 통해 드라마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서사의 힘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대한민국 콘텐츠가 가진 힘은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서 많은 콘텐츠를 통해 입증되었다, 좋은 콘텐츠와 서사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이제는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만큼 중요해졌다. 대한민국 콘텐츠의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그에 부합하는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한류가 조명받은 이후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놀라운 성취를 이뤄왔다. 콘텐츠 산업은 무형의 가치가 큰 만큼 내실을 다지기 쉽지 않으며, 국내와 같이 내수시장이 협소한 국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콘텐츠에 꾸준히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제작비 의존도가 높아져 온 이유도 국내 시장이 갖는 특수성에 기인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사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IP 확보를 통한 종합적인 콘텐츠 활용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위험 부담이 커질수록 콘텐츠가 가진 산업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IP 확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에 수반되는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OTT 시장 내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2022년 콘텐츠에 관한 서사 전략과 활용 방안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