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서울시, 일제가 폐쇄한 숭례문 '개폐의식' 부활

2022-03-15 17:28
1907년 日 왕자 한양도성 지나기 위해 강제 폐쇄

15일 오전 10시께 약 115년만에 숭례문 개문의식이 재현되고 있다. [사진=최태원 기자]


“이게 뭐에요? 남대문 문 여는 행사에요?”
 
15일 오전 10시께 서울특별시 중구 숭례문 앞, 한 행인이 웅장하게 진행 중이던 개문의식을 구경하다 물었다. 각종 무기로 무장한 20명에 달하는 의식 참여자들과 북새통을 이루는 취재진들에 행인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십명의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개문의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버킹엄 궁전의 근위대 교대식을 연상케 했다.

서울시는 이날 근 115년만에 숭례문 ‘개폐(문)의식’을 재현, 온전한 ‘파수의식’을 했다.

개폐의식은 조선시대 한양 성곽을 수비하는 군례의식인 파수의식 중 하나다. 조선시대, 매일 오전 4시께 시간을 알리는 관직인 ‘금루관’의 신호에 맞춰 도성문을 열며 한양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의식이다.
 
개폐의식은 구한말 한양도성 성곽이 헐리며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영구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1907년 일본 왕자가 한양을 방문하기 위한 길을 뚫기 위해 한양도성 성벽이 헐면서 개폐의식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이 헐렸기에 개폐의식을 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파수의식은 도성문을 여닫는 ‘개폐의식’, 지키는 ‘수위의식’, 순찰하는 ‘순라의식’, 수문군 ‘교대의식’으로 구성돼 한양도성 전체를 수비해왔다.
 
서울시는 이러한 민족의 무형유산을 활용하기 위해 조선시대 문화의 중흥기였던 영·정조 시대 무관 장비를 복원, 2005년부터 ‘수위·순라·교대’ 의식을 해왔다. 하지만 개폐의식은 문화재의 일부인 문을 직접 여닫아야 해 문화재 파손 위험성으로 인해 그간 진행돼오지 못했다.
  
이에 시는 온전한 파수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를 통해 숭례문 점검과 문을 여닫는 교육을 진행, 개폐의식을 성사시켰다.
 
‘대전통편’ 등 조선시대 사료에 근거해 전문가 자문을 통해 한세기 만에 재현된 개문의식은 시민들이 탄복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우선 오전 10시께 덕수궁 수문장 20명이 개문을 위해 숭례문으로 행진에 성문 앞에 취위(자리에 서다)했다. 이후 금루관의 신호에 맞춰 개문을 알리는 징소리와 나각·나발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징소리는 본래 종을 33번 치는 것으로 알려진 의식을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도성문을 열기 위해 선전관(선전관청 소속 무관)과 금군(궁중 수비군)이 선전표신과 부험을 들고 도성문 앞으로 취위했다. 도성문의 열쇠가 든 약시함(열쇠가 담긴 함)을 든 호군(정 4품 무관직)과 군사도 이들의 옆에 자리했다. 선전표신은 조선시대 표신 중 가장 중요한 표신으로 왕명을 전달할 때 사용됐다. 부험은 도성에 출입하는 성문지기 등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 맞춰보던 일종의 증표다.
 

15일 오전 이뤄진 숭례문 개문의식에서 선전관이 개문에 앞서 약시함에 문제가 없나 확인하고 있다. [사진=최태원 기자]



선전관과 금군은 숭례문 개문 명령의 진위와 신분 확인을 위해 선전표신과 부험을 확인 후 약시함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문제가 없음이 확인되자 호군의 명령에 따라 군사들은 숭례문의 문을 힘껏 밀어 개문했다.
 
100여년이 넘는 시간 중단됐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개문의식에 구경하던 시민들은 나직하게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이희숙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숭례문의 역사성을 배경으로 한 수문군의 파수의식을 통해 2000년 역사도시 서울의 유산을 시민들이 일상 가까이서 향유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며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코로나19로 침체된 도심이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