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파악도 안된 '배달비 공시제'... "가격인하 효과 미지수"

2022-03-04 06:35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치솟는 배달비를 잡기 위해 시행한 ‘배달비 공시제’가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배달비 산정 방식 등 시장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없이 각 배달 앱에 공개된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데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첫 공시부터 수치 오류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소비자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소단협)는 지난달 25일 배달비 공시제를 시작하고 배달앱별 배달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12~13일 서울 25개구별 각 1개동에서 치킨‧떡볶이를 최소 주문액으로 배달 주문했을 때 배달의민족(배민)‧요기요‧쿠팡이츠 배달비를 비교한 조사다.
 
배달비 공시제는 배달요금 경쟁을 통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단협에서 비교한 건 각 음식점주가 정한 금액이지, 배민‧요기요‧쿠팡이츠 등 각 배달앱에서 정한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달비는 음식점주와 소비자가 함께 부담한다. 예컨대 배달비가 5000원이라면 음식점주 본인이 2000원을 부담하고 소비자에게 3000원을 부담하게 하는 식이다. 이번에 소단협이 비교·공시한 건 3000원에 해당하는 소비자 ‘배달팁’에 해당한다. 따라서 배달앱별 배달비 가격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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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대상 선정도 도마에 올랐다. 배민‧요기요가 운영하는 단건배달 서비스인 배민1‧요기요익스프레스는 자체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반면 일반 묶음배달은 배달대행업체가 배달 수수료를 결정한다. 하지만 정작 배달대행업체는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소단협 측은 단건배달인 배민1과 묶음배달인 요기요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 비교하기도 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업태를 이해하지 못한 탓에 수치 오류도 발생했다. 소단협은 당초 조사에서 “서울 중랑구에서 ‘반경 2~3㎞’ 내에서 배민1으로 분식을 주문했더니 배달비가 7500원 나왔다”고 발표했으나 이 내용이 오류로 확인되자 이틀 뒤 ‘반경 3~4㎞ 내’로 기준을 수정했다.
 
현재 배민1 입점업소에는 배달비 5000원인 프로모션 가격이 적용되고 있다. 3㎞ 이내 주문 건은 거리할증이 없어 배달비 총액이 5000원을 초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단협 측의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배달비 책정 방식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오류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조사로는 당초 공시제 도입 취지인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배달비 상승의 핵심 원인은 단건배달 시행 등으로 인한 라이더 부족 때문인데, 이미 배달 앱에 공개돼 있는 가격을 다시 모아 보여주는 ‘줄 세우기’만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 시장에는 배달 플랫폼이 라이더와 직접 계약을 맺는 단건배달 서비스가 있고, 배달 대행사가 중개하는 서비스가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비교·공시한 점 등으로 미뤄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며 “가격 인하 등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