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우크라 사태와 美··中·러의 복잡한 수 싸움

2022-02-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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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팬데믹 3년 차, 각국이 코로나와 사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에 악재가 연발하면서 지구촌이 휘청거린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질병이나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에도 바쁜데 지역 분쟁까지 겹치면서 거의 패닉 상태다.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이에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받는 경제주체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타격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외 정세가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지나치게 대선(大選) 정국에 함몰되어 대응 소홀로 치명타를 입지나 않을지 심히 걱정된다.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하여 주요 경쟁국들은 이번 사태의 파장과 자국에 미치는 영향을 시시각각으로 언론이 분석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운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보다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가입을 신청하면서 사태가 촉발되었다. 러시아는 턱밑에 있는 우크라이나가 서방 진영으로 편입되는 것이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구(舊) 소련의 우산 아래 들어가 있던 동유럽 국가들을 나토 회원국으로 끌어들여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산이다. 종신 집권까지 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욕을 가진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의 변신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마지노선인 셈이다. 유럽에서는 점점 고립화되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에 힘이 밀리면서 양 대륙에 걸친 큰 국토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점점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도 편하지 않다. 흔들리는 패권을 다잡기 위한 미국의 포석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우월적 지위를 지속해서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년 8월에 9·11 테러 이후 20여 년간 탈레반 정권 축출을 위한 아프간 전쟁에서 전격 철수했다. 베트남전(戰) 이후 미국엔 또 하나의 치명상이었지만 ‘제국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끝과 승산이 보이지 않는 무모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거세게 대들고 있는 중국으로 과녁을 옮기려는 의도된 전략이다. 이런 배경에는 미국에서 대량의 셰일 오일·가스가 생산됨으로써 중동에서 러시아와 지루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으로서는 전선(戰線)을 축소해야 힘의 분산을 막고 결집이 생겨난다. 두 개 이상의 전쟁에 동시에 개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전통적 동맹 기반인 유럽이 안정적으로 굴러가야 한다는 점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날로 커지는 중국의 위세를 막기 위해 오바마 정권부터 소위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노선을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정권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바람대로 한동안 유럽은 평온했다. 하지만 졸지에 터진 우크라이나 리스크는 갈 길 바쁜 미국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하나의 중국’에 맞서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잠잠했던 북한의 도발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시한폭탄 같다. 남중국해로 뻗어 나오는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 간 잠재적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정부 컨틴전시 플랜 필요,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최소화해야
 
중국은 다소 묘한 입장이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고 중립적이면서 원론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국에 위기가 될지, 아니면 기회가 될지에 대해 신중하게 현상을 직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에는 복잡한 계산식이 깔려 있다. 미국과는 극단적 대립을 피하고, 유럽에 대해서도 등을 돌리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러시아 제재에는 반대하면서 양국 관계를 손상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우크라이나는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상에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한편 중동부 유럽 16개 국가의 협력체인 ‘16+1’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실제 중국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다. 국영 CCTV는 연일 우크라이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민첩함을 보이면서도 가상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더 심도 있게 다룬다.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 위험이 있을 때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가능성을 두고 전문가 패널 토론이 열기를 띤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지도 예전과 같지 않고, 최근 대만과 미국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상이 아닌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한 일본, 인도, 호주 등 미국 편에 서고 있는 국가들이 이에 동조할 수 있다고 본다면 중국이 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방정식에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중국에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외교적 노력이 결렬되고 전면전으로 가면서  사태의 장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서방 국가의 러시아 제재가 본격화되고, 조만간 우리도 이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가 더 커질 것이 확실해졌다. 당장 필요한 것은 우리 수출 시장과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점검이다. 원자재 수급과 가격 동향, 차·반도체·가전 등 수출 주력 상품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앞서 나갈 필요는 없지만 동맹국이나 주변국의 대응을 실시간으로 살피면서 정권 말기지만 컨틴전시 플랜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무능한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초한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자적인 생존 능력이 없고, 외부 세력에 의존하는 국가의 말로가 처참하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