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성' 자가진단키트 구해요" PCR 비용 부담에 꼼수 등장

2022-02-23 08:31
진료소서 자가진단키트 '본인 여부' 안 따져
지인 양성키트·사진 제시해 무료PCR 받아
"자율·책임 의존 방역체계 허점"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PCR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오른쪽 신속항원검사소는 썰렁한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양성 반응이 나온 자가진단키트 없이는 유전자증폭(PCR) 검사에 많게는 10만여 원이나 비용이 드는 새 방역 지침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타인의 양성 자가진단키트를 구해 PCR 검사를 무료로 받는 사례가 등장했다. 자가진단키트를 검사자 본인 것인지 구분하지 않은 채 PCR 검사가 이뤄지는 현행 방역 절차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23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경기 고양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A씨는 최근 가족이 코로나19에 확진돼 자가진단키트로 코로나19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사흘 넘게 감기 증상이 계속되자 A씨는 PCR 검사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자가진단키트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12만원을 지불하고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고민에 빠진 A씨는 며칠 전 지인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지인은 자가진단키트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와 보건소에 이를 제시하고 PCR 검사를 받았다. A씨는 그 지인에게 연락해 양성이 나온 자가진단키트를 건네받아 선별진료소에 이를 보여주고 무료로 PCR 검사를 받았다. A씨는 “자가진단키트가 내 것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과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양성 반응이 나온 자가진단키트를 구하지 못했을 때는 이를 촬영한 사진으로 대체한 사례도 있었다. 30대 B씨는 최근 근육통 등 몸살 증상이 나타나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했지만 음성이 나왔다. B씨는 더 정확한 검사 결과를 위해 PCR 검사를 받고 싶었다. B씨는 친구가 앞서 온라인으로 공유해준 양성 자가진단키트 사진을 저장해 선별진료소에 제출했다. 선별진료소 관계자는 “원래는 안 되지만 이번만 해드린다”며 B씨에게 PCR 검사를 실시했다.

실제 취재진이 서울에 위치한 선별진료소와 병·의원 10여 곳을 방문한 결과, 양성이 검출된 자가진단키트를 선별진료소나 병·의원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병원 관계자는 “자가진단키트 회수에 대해 방역당국에서 내려온 안내 등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에서도 “(양성) 자가진단키트를 소지하고 있어도 되냐”고 묻자 “그러시라”고 답했다.
 
‘양성 자가진단키트 사진’과 관련해서도 서울 지역 한 보건소 관계자는 “양성 자가진단키트 실물을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가끔 양성 자가진단키트를 촬영한 사진도 확인 방법으로 쓰고 있다”며 “양성 자가진단키트 사진을 PCR 무료 검사에 활용하는 것과 관련해 방역당국에서 지침을 받은 바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타인의 양성 자가진단키트로 PCR 검사를 받는 편법은 현행 방역지침의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성 자가진단키트 결과가 PCR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 본인 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보니 타인의 양성 자가진단키트를 동원해 PCR 검사를 받으려는 시도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현재 서울 소재 병·의원에서 실시하는 PCR 검사 가격은 10만원 안팎으로 책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실한 방역지침 때문에 일부 병원에선 환자가 양성 자가진단키트를 제시하더라도 검사 정확도뿐만 아니라 본인 것인지 진위를 가리기 위해 병원 자체적으로 한 번 더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한 뒤 양성일 때 PCR 검사를 진행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 방역 체계는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것을 골자로 해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개인 양심에 방역 체계를 의존하다 보니 애초에 타인의 양성 자가진단키트를 동원하는 사례 등을 원천적으로 막을 외부적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