㉕골목길의 아련한 추억과 아기자기한 매력

2022-02-21 11:33

다양한 삶의 흔적담빛길과 다미담예술구

담양의 관방천변에 국수거리가 있다. 이곳에선 예로부터 담양 5일장과 죽물시장이 열렸고 이 덕분에 50여 년 전부터 자연스레 국수거리가 형성되었다. 죽세품 사용이 급감하면서 담양 죽물시장의 명성은 사라졌지만 국수거리의 명성은 지금도 여전하다.
국수거리부터 담양의 원도심이 시작된다. 원도심이 대개 그러하듯 담양의 국수거리 주변 곳곳엔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정겹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쓸쓸한, 그래서 아련한 추억과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곳.

담양 국수거리 인근의 담빛길. 담빛골목창작소라는 안내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이광표]

국수거리 인근 골목에 가면 그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국수거리가 관방천변을 따라 형성되었으니 국수거리 인근 골목도 관방천을 따라 쭉 이어진다. 담양의 오랜 내력이 축적된 골목은 크게 두 개의 블록으로 나뉜다. 담양읍 객사리에 있는 골목은 담빛길이라 부르고, 담주리에 있는 골목은 다미담 예술구라 부른다. 2016년부터 원도심 문화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그 덕분에 새롭고 젊은 분위기가 어우러지고 있다. 요즘 부각되는 뉴트로(New+Retro) 분위기인 셈이다.
담빛길은 국수골목에서 곧바로 이어진다. 담빛길에 들어서면 골목길 풍경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예쁜 간판들이 스쳐 지나간다. 담빛작은도서관, 담빛공예관-전남무형문화재 낙죽장 이형진연구소, 담빛커피 인문학북스, 가현정북스, 담빛골목갤러리, 담빛골목창작소, 담빛라디오스타, 마실나온 고양이&라떼 하우스…. 길을 걷다보면 잠시 멈춰 기웃거리고 사진 찍고, 이 골목 저 골목 샛길로 빠져보고 거기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된다. 골목길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담양 향토사 전문서점 이목구심서.[사진=이광표]


담장에 크게 씌어 있는 담빛골목창작소라는 문구를 따라 무언가에 이끌리듯, 조심조심 그러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골목길 깊숙이 발을 들여 놓으니 ‘이목구심서’라는 서점이 나온다. 향토사 전문서점이다.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는 18세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 가 쓴 수필집. 서점의 이름뿐 아니라 간판과 입구 디자인부터 범상치 않다.
담빛골목창작소 간판의 맞은편엔 가현정북스가 있다. 담양으로 귀농한 농부작가 가현정 씨가 운영하는 동네 책방이다. 책방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어려서부터 책방 주인이 꿈이었다”는 가씨는 이 책방에서 자신의 저서( ‘가현정 작가의 귀농이야기’ ‘명옥헌에 올라 도덕경을 읽다’ 등)와 귀농 관련 서적, 그림책 등을 판매하고 북토크와 글쓰기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바로 옆 별도 가게에서는 감, 딸기, 옥수수, 호박 등 그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그는 담양의 대표적인 원림 가운데 하나인 명옥헌(鳴玉軒)에서 명사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담양 사람이 되어 담양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담양의 지역주민방송인 담빛 라디오스타 스튜디오 모습.[사진=이광표]

담빛길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공간은 ‘담빛 라디오스타 스튜디오’. 2018년 문을 연 담양 지역주민 라디오방송국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공간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운영을 종료한 것이다. 그동안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간씩 이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했다.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은 스튜디오 유리창을 통해 내부에서 진행되는 방송 모습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스튜디오 앞에 마련한 담빛쉼터에서 사연도 보내고 듣고 싶은 음악도 신청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도 가능했고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었다. 직접 보면서 들을 수 있는 담양의 ‘보이는 라디오’였다. 그런데 지금은 들을 수 없다. 담양 사람이든 담양을 찾아온 여행객이든 새로운 경험이자 좋은 추억이었을 텐데, 3년 만에 종료되었다니 아쉽기만 하다. 담양군문화재단의 신민영 주임은 “지난해 계약과 건물 임대가 종료되었고 현재 라디오 방송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간판은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에 더 매력적인 공간이 들어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담양 지역사회에서의 객관적인 평가가 있겠지만, 3년짜리 기획보다는 좀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기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곳이 더 멋진 공간으로 부활하길 기대해본다.
또 다른 골목인 다미담예술구는 쓰담길, 근대문화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골목길은 담빛길과 분위기가 좀 다르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일부 건물을 신축해 근대 분위기로 꾸며 청년 상인과 문화예술 활동가들에게 제공했다.
이 골목을 걷다보면 신축 건물의 기둥에 붙어 있는 동판(銅板)이 눈에 뜨인다. ‘창평면사무소-1962년 촬영된 담양군 창평면사무소 디자인 반영’ ‘금성면사무소-1951년 촬영된 담양군 금성면사무소 디자인 반영’ ‘대동의원-1952년 기록된 동산의원의 전신인 前 대동의원 디자인 반영’ ‘담양군농업협동조합-1914년 11월 26일 설립 당시 담양지방금융조합 건물 디자인 반영’…. 담양지역에 있던 근대건축물의 사진을 토대로 그와 비슷한 분위기로 건물을 지어 담양의 근대 분위기를 되살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미담 예술구 골목 풍경.[사진=이광표]

다미담예술구는 예술과 차(茶)와 낭만이 있는 거리를 지향한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이런저런 행사가 열렸다. 2021년 9월 열린 ‘다미담에서 나를 만나다’는 전남 지역의 차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자리였다. 담양의 죽로차(竹露茶)를 필두로 장흥 강진 보성 화순 등지의 전통차와 전시, 공연, 도깨비장터가 어우러졌다. 2021년엔 지역 미술가들이 참여하는 직거래 미술장터가 열렸다. 젊은 작가들에게 작품 판매의 기회를 제공하고 미술 애호가들이 부담 없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였다. 다미담예술구는 이렇게 젊음과 예술, 화합과 공유를 추구하고 있다.
골목길에서 카페가 빠질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다미담 갤러리&카페’. 담양군이 직접 운영하는 이 카페에서는 수시로 전시가 열린다. 천장에는 대나무를 이용한 조명이 달려 있고 한쪽 편의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꽃과 나무와 장독이 사람을 반긴다.

다미담예술구에 있는 전통찻집 일화오엽의 내부.[사진=이광표]

찻집 일화오엽(一花五葉)도 매력적이다. 이곳은 청년창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 문을 연 전통차 전문점. 입구에선 “오늘 밀크티 OO잔 남았습니다”라는 안내문구가 찾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초록색 톤의 인테리어가 눈에 확 들어온다. 테이블 서넛, 바에 놓인 의자 서넛.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아늑하고 품격이 있다. 일화오엽의 최신 대표는 주문한 차를 정성껏 내어준다. 문화인류학 전공자답게 최 대표는 죽로차의 맛과 의미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해준다. 국수거리 골목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바로 앞에는 담양에서 가장 오래된 담양슈퍼도 있고, 농부작가의 책방도 있고 철물점도 있지요….”
다미담예술구 인근 천변리엔 문화복합공간인 정미다방이 있다. 이곳은 원래 1959년 문을 연 천변정미소였다, 담양사람들이 즐겨 찾던 정미소였으나 2000년대 들어 폐업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됐다가 2019년 담양군이 매입해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정미다방은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자 방문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래된 천변정미소 간판과 새로 붙인 천변리 정미소 간판이 대조를 이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옛날 간판에 들어 있는 ‘전화 2286’이 세월의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문화복합공간 정미다방. 1959년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사진=이광표]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행사가 열리지 않을 경우엔 문이 닫혀 있는 공간들이 보인다. 현재 다미담예술구 골목 한편에서는 ‘루프탑 가든형 담양시장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상설시장과 5일장이 이곳으로 들어오고 다양한 문화공간이 마련된다. 올해 안으로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 공간은 다미담예술구로 곧바로 연결되어 담양 사람들과 여행객들에게 생동감 넘치는 동선(動線)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관방천의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이 일대는 더 붐빌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 담빛길과 다미담예술구에도 더 많은 상시 프로그램들이 정착될 것이며 담양의 스토리도 더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후원=담양군(군수=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 이대겸 《천년역사 담양에서 펼쳐지는 도시재생 디자인 이야기》, 오마주,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