㉔담빛예술창고와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의 만남
2022-02-16 10:36
양곡수매창고의 실험적 변신
담양 도심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객사리 석당간(石幢竿), 남산리 5층 석탑, 이 세 곳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붉은색 창고 건물이 있다. 객사리 관방천변에 위치한 담빛예술창고. 바로 뒤로 10미터만 가면 관방제림이 쫙 펼쳐진다. 담빛예술창고는 해동문화예술촌과 함께 담양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공간이다. 모두 근대산업유산을 되살렸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담빛예술창고는 2015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 가면 두 채의 붉은색 창고가 사람을 맞이한다.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단순하고 육중한 건물 두 채는 ㄱ자로 연결되어 있다. 창고 외벽에는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南松倉庫’(남송창고)라고 쓰여 있다. 붉은 벽돌 위에 쓰여진 뽀얀 페인트 글씨가 정겹게 다가온다. 영락없는 1970~1980년대 풍이다. 그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이라면 건물의 외모에서 양곡창고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것이다.
담빛이라는 이름이 이색적이면서도 참 따스하고 아름답다. 담빛은 창고를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공모를 통해 채택한 이름이라고 한다. ‘담양의 빛’이란 뜻으로, 담양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린다.
담빛예술창고는 야외 전시공간, 문예카페(남송창고 1개동), 갤러리(남송창고 1개동과 신축 건물)로 꾸며져 있다. 앞쪽 외부의 잔디마당에는 귀여운 판다 조형물, 자동차 조형물 등을 설치해 놓았다. ‘천년 담양’ 심벌마크가 새겨진 우체통도 보인다. 이 우체통은 무언가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잔디마당에는 갤러리 전시에 맞춰 수시로 새로운 미술품을 설치하고 교체하기도 한다.
문예카페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단연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다. 남송창고 리모델링이 한창이던 2015년 담양에선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박람회를 기념하고 동시에 미래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논의 끝에 대나무 이미지를 살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만들기로 했다. 필리핀의 파이프오르간 전문업체인 카릴론 테크놀로지에 제작을 맡겼다. 700여개의 대나무가 들어갔고 높이 4미터, 폭 2.6미터. 문예카페의 한쪽 벽의 절반 정도를 꽉 채우는 웅장한 규모다. 국내 유일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반 파이프오르간에 비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더 따뜻하고 아늑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양곡창고 건물이다 보니 천장이 높다. 그래서 소리의 울림이 공간 내부를 휘감아 도는 듯 더 넉넉하고 더 깊다. 태교에 좋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최고의 힐링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다보면 성당이나 교회 예배당에 들어온 듯하다. 그 평화롭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담빛예술창고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이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담양과 광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다. 이에 대해 담빛예술창고의 이명지 큐레이터는 “마니아층이 형성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귀띔한다. 이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담양에서 만나는 최고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새로 지은 담빛예술창고 2관의 2층에는 담양의 역사문화와 관방제림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관방제 관방제림’과 ‘천년 담양 역사보기’다. 이 가운데 특히 ‘천년 담양’ 코너가 눈길을 끈다. 고려 때인 1018년에 새로운 군현제도가 이뤄지면서 담양군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게 되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그때부터 담양이라는 지명이 1000년 넘게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담빛예술창고의 전시 기획은 자신감이 넘친다. 담양군문화재단의 설명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담양이 큰 도시는 아니지만, 담양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전시, 국내에서 최초가 되는 전시를 기획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전시나 상업적인 전시보다는 미술사에 기록이 될 만한 전시나 현실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담빛예술창고는 도시재생 차원을 넘어 어느덧 담양 문화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담양의 대나무 문화, 가사와 누정 문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싱그러운 문화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옛것과 요즘 것의 조화가 그윽하고 향기롭다. 담빛, 그 이름에 잘 어울린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 담양군․ 담양군문화재단 '담빛, 예술을 담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