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익재단 점검-한진⓶] '공익' 이름 걸고 '사익' 추구…이사회 독립성·일감몰아주기 논란
2022-02-15 06:01
한진그룹은 정석인하학원, 정석물류학술재단, 일우재단 등 3개의 공익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정석인하학원은 인하대, 항공대, 인하공전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정석물류학술재단은 물류 분야 학문에 대한 연구 지원, 일우재단은 국내외 인재에 대한 장학사업·문화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이들 세 재단의 공통점은 공익법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진 계열사에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진그룹 계열사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정석인하학원은 한진칼 보통주 1.9% 및 우선주 0.62%, 대한항공 보통주 1.49% 및 우선주 0.62%, ㈜한진의 3.18%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석물류학술재단은 한진칼 0.95%, 대한항공 0.23%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일우재단도 한진칼 0.14%, 대한항공 0.11%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문제는 세 재단이 정작 공익목적사업 투자에는 소극적이면서 재단이 보유한 한진 계열사 지분을 바탕으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이용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세 재단이 지난 2020년 3월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보유지분을 활용해 조원태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대표적 사례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의 경영권 분쟁에도 불구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은 무난히 통과됐다. 이를 두고 세 재단이 보유한 당시 한진칼 지분 3.38%가 조 회장 연임에 결정적 우군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공적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이 오너 일가의 사익 추구에 이용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밖에도 한진 공익재단이 한진그룹의 사익 추구에 활용한 사례는 다양하다.
정석인하학원이 운영하는 인하대는 대학발전기금을 활용해 지난 2012년 7월과 2015년 6~7월 각각 50억원과 80억원, 총 130억원어치의 한진해운 회사채를 매입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법원이 한진해운에 파산선고를 내리면서, 인하대가 매입한 채권들은 휴지 조각이 됐다.
한진 공익재단과 계열사 간에는 연간 수억원대의 내부 거래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진 계열사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020년 한해 동안 정석인하학원으로 부터 7억3000만원, 한진칼은 일우재단과 정석물류재단에 각각 3억5000원, 1억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8년에는 교육부가 정석인하학원이 인하대 부속 병원의 청소, 경비 용역을 한진 계열사에 몰아주고, 병원 지상 1층의 카페를 조현민 한진칼 전무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했다며 적발하기도 했다. 또 일우재단 장학생 35명의 장학금 약 6억원을 인하대 교비 회계에서 집행됐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정석인하학원은 교육부의 처분이 합당하지 않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교육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교육부가 2018년 함께 제기한 조원태 회장의 인하대 학위취소 결정을 두고는 소송을 공익법인인 정석인하학원이 직접 소송을 진행해 사인인 조 회장의 학위 지키기에 발 벗고 나섰다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교육부는 조 회장이 인하대에 부정 편입했다고 판단하고 편입과 졸업 취소를 통보한 바 있다. 이에 정석인하학원은 조 회장 학위취소가 부당하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정석인하학원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부는 현재 이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하기로 한 상태다.
◆정석인하학원, 이사진 15인 중 7인이 한진 전현직 임원…독립성 보장 안돼
전문가들은 한진 공익재단 문제의 원인으로 독립성이 보장돼 있지 않은 이사회 구조를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정석인하학원의 경우 15명의 이사 중 7명이 한진의 전현직 임원으로 나타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강영식 전 한국공항 사장, 서용원 전 한진 대표이사, 류경표 한진 대표이사, 이수근 대한항공 부사장, 박인채 대한항공 전무이사, 이화석 전 대한항공 전무 등이다.
하지만 공익법인법에 따르면 이사회 구성 시 계열사 임원 등을 포함한 특별관계인 수는 이사 현원의 5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 정석인하학원은 학교법인으로 사립학교법의 규정을 우선 적용받아 법 저촉은 빗겨 갔지만 공익법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인하대 교수회는 지난 2019년 5월 성명을 내고 재단 이사회 내 한진그룹 관계자 비중을 축소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법률 위반이 아니더라도 도의적으로는 당연히 문제가 된다”며 “공익법인의 설립 취지와외 목적에 따른 적절한 업무를 할 수 있는 이사진으로 구성돼 야 하는데 목적과 무관한 사람들이 이사진으로 구성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정석인하학원 관계자는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 달리 정석인하학원은 인하대 출신 교수를 이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이사회 독립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도 평가해 달라”며 “점차적으로 공익법인법 취지에 맞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