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익재단 점검] 공익활동은 '뒷전' 대기업 공익재단, 해마다 몸집만 불렸다

2022-02-09 06:00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ㆍ승계 도구로

올해부터 공시 대상 기업집단(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특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가운데 기업집단 공익재단 관련 내용에는 '대기업이 설립한 공익재단을 관리할 기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이는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공익법인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이용한 사익편취 행태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아주경제>는 전부개정 공정거래법 시행 원년을 맞아 대기업 공익재단의 공익활동 현황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 등 전반적인 운영 실태를 점검해 본다.<편집자 주>


일부 대기업 공익재단이 몸집 키우기에만 전념하고, 공익활동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현상은 최근까지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주경제가 포스코·LG·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삼성 등 주요 대기업 10개 공익재단(LG연암재단·LG상록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아산사회복지재단·아산나눔재단·포스코교육재단·포스코1%나눔재단·현대차정몽구재단) 결산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18년 이후에도 이들 공익재단의 총자산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했다.

하지만 공익활동은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이들 공익재단의 총자산은 지난 2020년 말 현재 10조2824억원으로 2018년 대비 1조1192억원 급증했다. 같은 기간 잉여금도 3000억원 늘었다. 유일하게 줄인 것은 분배비용뿐이다.

재단들의 2020년 현재 분배비용은 1103억원으로 2018년 대비 264억원 줄었다. 그 분배비용은 2018년부터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 아주경제]


분배비용은 수혜자 또는 수혜단체에 직접 지급하는 장학금과 지원금으로 순수 목적활동에 들인 돈을 의미한다. 각 재단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분배비용 감소가 공익활동성 저하와 직결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감소추세가 이어지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앞서 지난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공익재단을 상대로 운영실태 전수 조사를 벌인 결과, 대기업 공익법인이 학술지원이나 자선사업 등 고유목적(공익목적)을 위해 벌어들였거나 지출한 비중은 일반 공익법인(약 60%)의 절반인 30%에 불과했다.

대기업 공익재단은 경영권 승계에 악용되고 있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보유 165개 공익법인 중 66개가 119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계열사 중 47개 회사의 지분은 총수 2세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공익법인이 가진 주식은 주로 총수 2세 출자회사 등 지배력과 관련된 회사에 집중됐지만 수익에 기여한 비중은 1.06%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에도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대기업 공익법인이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에도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공익법인 165개 중 100개는 계열사나 총수 일가와 상품용역, 부동산, 주식, 자금 등을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인 계열사에 출연받은 재산을 부당하게 저가 혹은 무료로 임대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자기내부거래 금지’ 조항을 어긴 사례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 공익재단이 설립 취지와 달리, 각종 이해관계에 얽힌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지자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전부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들은 국내 계열회사의 주식을 취득·처분하거나 내부거래 시 이사회 의결 및 공시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아울러 이사회 의결·공시의 대상이 되는 내부거래 금액은 순자산총계 또는 기본순자산 중 큰 금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원 이상인 거래로 한다.

국세청도 공익재단에 대한 사후관리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은 지난해 본청에 공익중소법인지원팀을 신설, 운영하고 있다. 해당 팀은 공익법인 사후관리와 중소기업 세무컨설팅, 기부금 단체 관리 업무 등을 전담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익재단에 대한 정부의 제도 개선 움직임이 그동안 대기업 공익재단들의 관행처럼 이어진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일부 대기업 공익재단의 폐단을 잡아내기 위해 ‘겨냥성 규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일반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로 번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겸 세무전문대학원장)는 “페널티만 주는 방식만 택하면 대상자들은 또 다른 우회로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집단은 지배구조의 계속성에 대한 욕구가 있고, 또 공익법인으로서 기본으로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한 충돌이 존재하는데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함께 적절히 사용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