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동물학대 처벌..."왜 벌금형 그치나"
2022-01-30 14:46
법정 최고형에 못 미치는 처벌...실형 드물어
재물손괴죄 병합 시 겨우 실형
"수사·사법기관 재량에 처벌 상이"
재물손괴죄 병합 시 겨우 실형
"수사·사법기관 재량에 처벌 상이"
A씨는 서울 소재 집에서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 강아지·쥐 등을 잔인하게 죽이는 내용의 영상을 업로드한 혐의로 지난해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이른바 ‘동물 n번방 사건’이라고 불린 이 사건에 대해 A씨는 지난해 8월 법원에 정식재판청구 취하서를 제출했고, 약식기소에 따른 벌금형 300만원이 확정됐다. 같은 해 강아지의 목에 약 2kg 쇠망치를 매달아 동물 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견주는 1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2월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행위를 한 경우 종전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법정 최고형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의 처벌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그나마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재물손괴죄’와 병합되는 사건에 그쳐, 동물보호법 위반 그 자체로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힘든 실정이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경의선 숲길 고양이 사건’이다. 지난 2019년 7월 정모씨는 서울 마포구 경의선책거리 인근 식당 주인 A씨가 돌보던 고양이 ‘자두’에게 세제가 섞인 사료를 먹이려다 자두가 이를 거부하자 자두의 꼬리를 잡아 바닥에 수차례 내려치고 머리를 발로 밟는 등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정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죄였다. 정씨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징역 6월을 선고했고, 정씨가 항소해 진행된 2심에서도 징역 6월이 그대로 유지됐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변호사는 “동물학대 처벌 형량은 국내 다른 제도 형벌과 비교해 낮지 않지만, 막상 판결을 보면 이런 법정 최고형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며 “일부 재판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동물학대에 대한 법원의 인식은 크게 향상된 것 같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변호사는 “지금까지 민법상 동물은 물건이어서 재물손괴로 함께 기소가 됐다”며 “동물 학대만 기소됐을 때보단 재물손괴가 같이 들어가야 형량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풀이했다.
동물 학대 처벌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8월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길고양이 학대 전시 커뮤니티 수사 요구’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영상답변을 통해서다. 당시 박영범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동물학대 관련 범죄의 양형 기준 마련을 요청한 바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 양형위는 현재로선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법 관계자는 “지난해 초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출한 ‘동물학대 범죄 관련 양형 기준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양형위원회에서 검토했다”면서도 “(양형 기준을 설정해야 하는) 다른 범죄들이 있어 동물학대 범죄는 당시 채택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양형 기준이 없다 보니 경찰과 검찰, 법원의 수사나 기소, 형량 단계에서 각자의 재량이 적용돼 동물 학대 처벌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변호사는 “법상 형량이 모자란다기보단 실제 적용에 있어 가볍게 처벌되는 게 측면이 있다”며 “양형 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참고에 그치지만 ‘참고할 만한 좋은 기준’으로, 양형 기준이 마련되면 법원에서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내다봤다.
서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한다는 건 결국 이에 대한 법원의 인식 변화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라며 “지금처럼 죄물손괴죄로 같이 기소되지 않더라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만으로도 ‘중한 범죄다’ ‘동물 생명권도 중요한 판례 고려 요소다’라는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