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고문 후유증' 이을호 전 민청련 부위원장 별세

2022-01-27 10:30
운동권 이론 정립…코로나19 확진 후 투병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이을호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빈소 모습 [사진=민청련동지회]


이을호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고인은 지난달 18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 경희의료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기저질환에 따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1955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고를 수석 졸업하고, 1974년 서울대 사회계열로 입학했다가 철학과로 전과했다. 4학년이던 1977년에는 소설가 김영현 등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다. 졸업 이후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1983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주도한 민주화 운동단체 민청련 창립에 참여했다. 여기서 기획실장, 정책실장, 상임위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정책실장으로 있던 1984년 4월 내부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당시 운동권의 운동론을 CDR(시민민주혁명론)·NDR(민족민주혁명론)·PDR(민중민주혁명론) 등 세 가지로 정리해 ‘C·N·P 논쟁’에 불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듬해 민청련 활동으로 검거돼 남영동 대공분실을 거쳐 남산 국가안전기획부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분열 증세가 나타나 정신병원에 유치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질환은 반복해서 재발됐고, 본인과 가족이 장기간 고통을 겪었다.

훗날 고인은 "무차별 구타를 당한 후 스스로가 올빼미로 생각되고, 밤새 옥돌을 갈고 있는 환상 속을 헤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1986년 6월 구속집행 정지 결정으로 풀려났지만, 2011년까지 매년 3개월 정도는 정신이상 증세로 입원해야 했다.

2018년에는 우석대 김근태연구소 부소장에 취임해 세계철학사 번역서를 내기도 했다.

추모식은 27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2호실)에서 열린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