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RCEP 발효를 바라보는 美·中의 속내는?

2022-01-26 20:27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겸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3억 명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초대형 메가 FTA인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이 지난 1월 1일 발효되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FTA로 국회 비준이 늦었던 우리는 2월 1일부터 정식 발효된다. RCEP 회원국의 교역규모는 약 5조6000억 달러(약 6700조원)로 세계무역의 약 32%를 차지하고, 2020년 기준 한국과 RCEP 회원국 간 교역규모는 4840억 달러(약 580조원)로 전체 무역액 비중이 거의 50%에 이른다. 무역국가인 우리 입장에서 경제영토가 그만큼 확대되는 것이다. RCEP 발효는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기존 한-아세안 FTA가 상품무역 중심이었다면 RCEP는 서비스 및 투자분야에 있어 시장개방 수준을 높인 협정이다. 둘째, 간접적인 한·일 FTA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일본은 RCEP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로 일본과의 교역확대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중·일 FTA 체결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참여국 대부분 국가와 FTA를 체결한 우리는 제한적인 경제적 이익이라는 한계점과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이다 보니 기존 FTA 대비 추가적인 시장개방이 합의되지 못한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RCEP 발효는 단순히 참여국가의 교역액 및 투자 증가 등 경제적 이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RCEP는 미·중 양국 간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외교 및 경제적 의미가 숨어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시점에서 미·중 양국은 RCEP 발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RCEP를 바라보는 미·중 양국의 대내외적 속내를 좀 더 들여다봐야 향후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우리의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다. 우선 중국의 속내부터 살펴보자. 중국은 RCEP가 발효되자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승리로 세계경제 회복에 공헌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 입장에서 RCEP 출범은 대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중국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둔화되고 있는 중국경제의 새로운 성장기회로 보고 있다. 2021년 기준 중국과 RCEP 회원국 간 교역규모가 12조700억 위안(약 2284조5000억원)으로 전체 교역의 약 31%를 차지한다. 또한 중국 FDI(외국인 직접투자) 자금유입의 10% 정도가 RCEP 회원국으로 서비스 투자개방 확대로 향후 RCEP 회원국 자본이 계속 유입되는 이른바 ‘사이펀 효과(siphon effect)’도 기대하고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RCEP 발효가 중국 GDP 성장률 약 1∼1.5% 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반중국 동맹노선에 대응해 RCEP 경제통합을 기반으로 점차 중국 주도의 다자간 경제협력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겠다는 의도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탈피하고 역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점차 좁혀지고 있는 글로벌 사회에서의 전략적 공간을 확대하는 기회일 수도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놓고 미·중·일의 3국간 벌이는 경쟁국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호주 및 뉴질랜드, 일본 등 반중전선에 있는 국가들과 관계 개선도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불투명한 가운데 중국은 주도적으로 RCEP 회원국 간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간다는 속셈이다. 셋째, RCEP를 통해 역내가치사슬(RVC)을 강화해 미·중 간 공급망 탈동조화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세계 최대의 FTA인 RCEP를 중국 주도의 역내가치사슬 구축에 매우 좋은 기회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 중국이 전담했던 산업의 다운스트림에서 업스트림으로 이전할 수 있고, 첨단산업 영역에서의 한·중·일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RCEP 발효를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는 어떨까.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빼겠다는 미국이 더욱 조급해지는 형국이다. 미국이 배제된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CPTPP 재가입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RCEP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나 CPTPP보다 훨씬 큰 규모다. 비록 초기 중국이 주도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막대한 시장영향력과 중국 경제의존도를 감안하면 향후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CPTPP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작년 9월 CPTPP 가입을 공식화하자 미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따라서 RCEP 발효는 미국의 CPTPP 재가입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동인이 될 수 있다. CPTPP는 금융 및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 완화 및 개방, 데이터 거래 활성화 등 중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처럼 각 산업 및 규범에 있어 개도국 지위로 5~10년의 양허유예 혜택을 받으며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브루나이 등 대다수 CPTPP 가입국들은 중국 가입을 지지하고 있어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이 반대하더라도 최종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이처럼 중국의 CPTPP 가입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현재 미국은 중국의 CPTPP 가입을 막고 글로벌 통상 거버넌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 내 많은 여론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신뢰성이 무너진 WTO 체제 국면에서 CPTPP마저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통상규범이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트럼프 시절 논의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대신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네트워크(IPEF)’ 구축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 국가들과 동맹을 강화해 반중 경제안보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구축될 것이다. RCEP의 본격적인 출범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높고 벌이는 미·중 간 정치·외교·안보·경제전쟁의 또 다른 단초가 될 수 있다. 경제와 안보를 분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미·중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넘어 우수한 산업기술 역량의 중견국으로 적극적으로 다자주의 통상채널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박승찬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칭화대 경영전략박사 △주중 한국 대사관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