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음악에서 도망치지 않아"...래퍼 쿤타의 선택

2022-01-10 08:58
래퍼 쿤타 인터뷰


패배감과 우울감에 빠져있던 쿤타는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 싶어서 쇼미더머니10에 나왔다. 집에서 혼자 앉아 누군가를 탓하하고 세상을 향한 미움이나 분노를 키우지 않으려고 무엇이라도 한 것이다. 처음 본선 진출을 목표로 출연을 했지만 점점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고 한 결과 4위를 차지했다.

자신의 힘들었던 순간을 꾸준히 기록하고 그걸 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는 쿤타가 음악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Q.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름이나 음악은 알아도 얼굴은 모르는 정도가 좋다고 하셨어요. 근데 이제 얼굴이 알려졌는데 그때와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나요?

A. 아니오. 너무 불편해요. 밥 먹는데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분들이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하시는데 안 해드리면 조금 그렇거든요. 근데 부모님이랑 있을 때는 절대 안해요.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는데, 너무 불편해요.
 

Q. 쇼미더머니 출연 전과 후 달라진 건 뭔가요?

A. 저는 면허가 없어요. 그래서 지하철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근데 지하철을 못 타는 게 제일 불편해요.
 

Q.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나요?

A. 근데도 알아보더라고요. ‘뭐지’하면서 생각해봤는데 저도 마스크를 써도 대충 알아보긴 해요. 2년 이상 마스크를 쓰다보니까 마스크 안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Q. 언제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나요?

A. 길을 가는데 “쿤타 씨 아니세요?”라고 하면서 싸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어요, 그때 약간 당황했는데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쿤타 씨 아니세요?”라고 계속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마스크 안을 볼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죠.
 

Q. 쇼미더머니에 나가게 됐던 계기는 뭔가요?

A. 안 나가면 죽겠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안에만 있었잖아요. 그리고 저는 다른 아티스트들처럼 저를 홍보하는 방법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예요. 그러다 보니까 홍보계획을 잘 못짜는 편이거든요. 그런 부분이 막막해서 나간 것도 있어요.
 

[사진= 엠넷]



Q. 퍼스널 브랜드 시대인데요. 다른 아티스트들은 자신을 어떻게 알리고 있고, 쿤타는 쿤타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리고 있나요?

A.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았으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걸 모르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요. 저도 저를 어떻게 알려야 될지 모르겠어요. 마케팅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아티스트 본인이 마케팅을 해야 되는 시대잖아요. 마케팅의 세계는 너무 어려워요.

 
Q.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장 크게 배운 건 뭔가요?

A. 쇼미를 나가기 전까지는 많은 분들이 경쟁 프로를 왜 보는지 이해가 안됐어요. 근데 나가고 나니까 직장인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노가다 뛸 때 그런 마음이었어요. 일이 없으면 공치는 거잖아요. 공치고 올 때가 많았어요. 옆에 투덜투덜 대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나보다 힘 못 쓸 것 같은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은 다 되는데 나는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모두 거절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여기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거절 속에서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쇼미를 통해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배운 것 같아요. 이제는 누군가를 무시 못하겠어요. 거절은 우리 속에서 삭혀야 되는 거잖아요. 그걸 너무 많이 당하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와야 되는 거예요. 인턴이 되면 뭐해요. 정직원이 못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 안에서 누군가는 거절 당하고 누군가는 선택 받는 건데 우리는 선택에만 초점을 맞춰놨고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아무렇지 않아요.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거죠. 그 과정에 대해 거절을 당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삭히면서 이겨내고 그 직업까지 간 거거든요. 그걸 보면서 내가 정말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업들에 대한 존중도 생겼고요.
 

래퍼 쿤타 [사진= 김호이 기자]


Q. 힙합계에 얼마나 계셨죠?

A. 앨범 기준으로 하면 15년이 넘죠.

 
Q.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킨다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의 쿤타가 있기 까지 누군가의 선택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A. 저는 다 제가 선택했어요. 제가 그런 선택들을 할 수 있게 자율성을 준 어머니한테 감사해요. 어머니도 ‘이렇게 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있었을텐데 어머니도 그걸 내려놓은 거니까, 어머니께 감사하죠.
 

Q. 직업병이 있나요?

A. 직업병 보다는 염따한테 배운건데 일어나면 무조건 컴퓨터부터 켜요. 제 방이더라도 제 방으로 출근해요. 출근해서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뭔가를 하고 그날 하루를 마감해요, 그래서 저는 일어나서 몇시간 동안은 작업을 하고 퇴근벨이 울려야 쉬어요. 제가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직업이 될 수 없겠더라고요.
 

Q. 아티스트 쿤타에게 출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제 방으로 출근하는 게 편하긴 해요(웃음), 누워있다가 구르면 바로 직장이니까, 거리가 가까운 직장이죠. 근데 저는 출근한다는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알바 같은 것에서 출근해본 적은 있지, 직업을 가지고 출근해본 적은 없거든요. 저한테 출근한다는 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인 것 같아요.
 

Q. 쇼미를 통해서 힙합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10살 청소년 송민영이 힙합을 즐긴다는 게 인상 깊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저는 그걸 보면서 힙합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이끌고 핵심이 될 건 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 핵심이 될 거예요. 저는 그걸 받아들였어요. 이건 영한 문화라는 트렌디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 위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예요. 제가 해야 될 음악이 바뀔 뿐이에요. 그걸 보면서 힙합은 영원한 젊은이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쇼미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건가요?

A. 제가 베이식과 있으면서 베이식한테 정신적으로 의지한 게 많아요. 인력시장인데 베이식이 인력시장 선배예요. 이 삼촌만 믿으면 저보다 나이는 어린데 이 베테랑만 믿으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Q. 안태현의 삶을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그냥 사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간접적인 문제들이 생기잖아요.
근데 누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어요.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근데 그냥 살아있기 때문에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의미를 찾는 거고요.
 

Q. 쿤타의 삶의 의미는 뭔가요?

A. 저는 ‘우리 엄마랑 여기서 어떻게든 끝낸다’예요. 저의 어머니가 가시기 전까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행복한 걸 어머니가 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목표예요.
 

Q. 언제 제일 행복하세요?

A. 아직 목표치는 못 온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니께 해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하면 마음이 놓이면서 행복해질 것 같아요.
 

래퍼 쿤타 [사진= 김호이 기자]



Q. 어머니한테 해드리고 싶은 건 뭔가요?

A. 어머니가 보실까봐... 되기 전에 말을 하면 허언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언젠간 은퇴를 할 건데 그때 정말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어요.
 

Q. 언제 은퇴를 하고 싶으세요?

A. 어머니한테 그걸 드리는 순간이 ‘어머니 이제 은퇴하겠습니다. 음악은 제가 사용할 물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하고 그걸 내려 놓은 순간이 될 것 같아요.
 

Q. ‘바래’에서 삶이 영화면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A. 많은 사람들이 힘들잖아요. 아프면 청춘이다 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고요. 아프면 아픈거고, 힘들면 힘든 거예요. 근데 그걸 이기고 나면 그때 아팠던 기억이 추억이 되긴 할 거예요. 배트맨이 깡패들 때려 잡는 건 영화에 나오지도 않아요. 조커 정도는 돼야 그게 영화로 나오거든요. 그때가 배트맨한테 제일 고난의 시간이거든요. 제 삶에서 제일 하이라이트는 벗어났기 때문에 벗어나고 나면 제일 고통스러운 순간인 것 같아요. 제 유년시절이 제일 고통스러웠어서 그때의 사진을 별로 안 보고 싶어요. 근데 그때가 저와 어머니한테는 돌이켜 보면 힘들었지만 그나마 행복했던 기억이에요.
 

Q. 쿤타에게 영웅은 누군가요?

A. 지금은 스폰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정치가가 내 인생을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이제는 아니예요. 정치가 분들이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게 국민들은 정치하시는 분들이 세상을 바꿔줄 거라고 생각은 절대 안 해요. 본인이 삶을 바꿔가는 거지, 제 삶에서 중요한 건 누가 당선이 되고 정권을 잡는지가 아니예요. 인생은 본인이 바꿔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는 종교라고 생각해요.
 

Q. 쿤타로서의 안태현, 사람으로서의 안태현의 어떤 사람인가요?

A. 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Q. 쿤타에게도 유명세와 돈, 화려한 삶이 꿈의 전부던 시절이 있었지만 자메이카 여행을 통해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다고 들었어요.

A. 다같이 모닥불 피우고 살면 괜찮아요. 근데 서울에 들어와서 택시 타면 생각이 또 달라져요(웃음),
 

Q. 음악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A. 많은 분들께 죄송하지만 비난과 비판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안 봐요. 최근에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런 것에 있어서 조금 무던해요. 관심이 없어요. 원래 제 음악을 안 듣던 때부터 시작해서 무관심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요.
 

김호이 기자와 래퍼 쿤타 [사진=김호이 기자]


Q. 쿤타가 요즘 바라는 건 뭔가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거든요.

A. 돈이요. 저는 진짜 돈이에요.
 

Q. 쿤타의 목적지도 돈인가요?

A.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못 사는 게 있다고 얘기하는데 돈으로 못 사는 건 사실상 없는 것 같아요. 지갑에 돈이 부족할 뿐이지. 그러면 안 팔리는 건 신념으로 가지고 있고 팔아야 되는 건 다 팔아서 어떻게든 행복해지자는 생각을 해요.

직장인의 목표는 돈이에요. 명예는 가졌지만 돈이 없으면 꽝이에요. 명예도 있고 돈도 많으면 사냥 당해요. 제일 좋은 예가 명예는 없지만 돈은 많은 거예요. 그러면 조용히 잘 살 수 있어요. 제가 꿈꾸는 건 돈만 많은 거예요. 그렇게 안 태어났기 때문에 명예를 쫓으면서 돈을 쫓을 수밖에 없어요. 두 개를 다 가져야죠. 그러면 언젠간 사냥 당해서 죽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언젠간 사냥 당할 것도 알고 있어요.
 

Q. 쿤타의 '깐부'는 누구인가요?

A. 저는 집시의 탬버린 친구들이요. 목적성이 없었거든요. 그 집이 개판이었는데 그 집이었어도 괜찮았어요. 비참하다는 생각은 절대 안 했고 그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거든요. 그래서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어요. 목적이라곤 우리끼리 좋은 음악하면서 좋아하는 걸 해보는 거였어요. 그때가 제일 순수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엠넷]



Q.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쿤타의 영감이 음악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A. 저는 영감이 오기를 안 바래요. 제 이야기에서 제가 느낀 바를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거짓말을 쓰고 싶으면 영감이 필요하죠. 지금까지는 타인의 얘기, 시스템의 문제들에 대해서 비유해서 쓰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저에 대한 얘기도 초점이 맞춰져서 이번에 제일 큰 수확은 제 얘기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럴 수 있게 유도를 해준 염따한테 고마워요.
 

쿤타가 전하는 메세지 [사진= 김호이 기자]



Q. 앞으로는 음악에 쿤타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나요?

A. 최근에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얘기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포기하고 싶을 땐 포기하셔도 돼요. 그건 여러분이 잘 못하고 있는 게 아니예요. 자기 자신한테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도망 좀 가면 어때요. 그게 나라를 팔거나 남을 팔거나 타인한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도망가셔도 돼요, 여러분 자식 낳으면 그렇게 못 해요. 친구들 보니까, 애 낳으면 도망 못 가요. 애 낳기 전에 도망도 쳐보고 할 거 다 하세요. 실패도 해보시고요. 엄마 아빠들이 도망을 갈 수 없기 떄문에 제일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Q. 어디로 도망가고 싶으세요?

A. 저는 이제 도망 못가요. 어머니를 모셔야 되잖아요. 제가 사실 어렸을 때 도망갈까봐 한 게 문신이에요. 이러면 다른 일 못하니까. 도망가도 돼요. 
 

김호이 기자와 래퍼 쿤타 [사진= 김호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