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 통(通)]'베트남 여성이 사라진다'...성비불균형 문제 심각
2021-12-11 06:00
2019년 100대 111.5명...여아 부족 6만2000여명
낙태, 남아선호 등으로 불균형지수...세계 3위권
여성인권 증진, 사회시스템 마련, 인식전환의 필요성
낙태, 남아선호 등으로 불균형지수...세계 3위권
여성인권 증진, 사회시스템 마련, 인식전환의 필요성
베트남에서 출생률 대비 성비(性比) 불균형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출생 성비는 한 해 태어난 여자 신생아 100명 대비 남자 신생아의 출생률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으로 출생 성비의 자연적인 비율은 100명당 105~106명 정도다.
베트남 보건부에 따르면 2019년 베트남 출생아 성비는 여아 100대 남아 111.5명을 나타냈다. 지난 2018년에는 100대 114.8명을 나타내 세계 3위권까지 치솟았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동북아 지역과 비교해도 격차가 심하다. 2020년 기준 출생 성비는 한국이 100대 104.9명, 중국이 100대 105.3명, 일본이 100대 95.4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베트남의 성비 불균형 문제가 지속될 경우 결혼 적령기의 신부 부족, 노동력의 적절한 배분 문제, 인구 재구성의 어려움, 매춘, 사회불안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건부는 최근 이러한 성비 불균형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대적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이 성비 불균형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도시화와 자본주의에 남아선호로 회귀하는 베트남
베트남은 그동안 성비 불균형 문제가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베트남의 여성 인권은 아시아권에서 우수한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평등사상, 여성의 전쟁 참여 등을 배경으로 베트남 여성의 지위와 참여도가 크게 신장됐고 출생 성비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베트남 인구에서도 여성이 50.073%(4874만329명)를 차지하며 남성 49.927%(4859만8254명)보다 더 많다.하티꾸인안(Ha Thi Quynh Anh) 유엔인구기금(UNFPA)의 인권활동가는 “남아선호 사상은 베트남에서 출생 시 성별 불균형의 근본 원인이 된다”며 “베트남에서 출생 시 성 불균형의 원인은 젠더(성) 고정관념에 따른 성 선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의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은 여전히 가계를 이어가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노동력을 늘리며 나이가 들어도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남존여비를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생각은 수천 년 동안 베트남 사람들의 생각과 관행에 존재해 왔다”고 짚었다.
또한 유산 상속 문제도 남아선호 사상 강화에 영향을 준다. 베트남은 대부분이 남자 형제가 더 많은 상속을 받는데, 이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에 따라 제사 등 책임을 주로 아들이 짊어지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부모는 딸의 보살핌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위와 사돈이 꺼리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 반면 며느리는 또 다른 자녀다. 어느 가정에서나 부모는 만약 아들이 없이 늙어간다면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 같은 남아선호 사상은 최근엔 오히려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도시와 중산층 이상의 인구에서 더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중산층 이상의 성비 균형은 여아 100명당 남아 112.9명이다.
특히 수도 하노이의 경우에는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한 지역으로 지적됐다. 하노이는 2019년 여아 100명당 남아 112.8명을 나타냈다. 지난 2015년의 114.5명보다는 일부 개선됐지만, 여전히 하노이시의 성비 불균형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시 당국은 이 같은 점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성비 불균형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시민들의 인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한 낙태가 횡행한 것도 성비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의학의 발달로 태어날 때 베트남 역시 태아의 성 선택이 가능해졌다. 베트남에서 낙태는 불법이 아니다. 베트남에서는 인구 조례에 어떤 형태로든 태아의 성 선택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5월에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려 1000여 구의 태아 시신이 하노이의 한 창고에서 발견된 것. 사건은 하노이의 한 시민단체가 낙태된 영아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의식으로 밝혀졌지만, 이는 베트남에서 손쉬운 낙태의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유엔인구기금의 '2020년 세계 인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 법칙에 따라 태어난 예상 소녀 수와 1년에 태어난 실제 소녀 수의 차이를 가정해보면 매년 약 6만2000명 이상의 여아가 낙태를 통해 생명을 상실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티꾸인안 활동가는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신혼부부들이 첫째, 둘째 아이가 딸일 경우 셋째는 아들을 낳기 위해 자녀를 계속 출산한다”며 “또 자녀를 1명만 갖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미리 성별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인해 여아의 낙태가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한국처럼 될 수도”···베트남, 인식 제고 통해 출생 성비 균형에 초점
인구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성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 제고와 사회보장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베트남은 사회보장시스템이 미흡해 많은 노년층이 연금이나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부모의 경우 항상 건강과 은퇴 후 생활을 걱정하기 때문에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사회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나오미 키타하라 베트남 국제인구기금 사무소장은 “성 불평등은 여전히 모든 가정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며 “성 불평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며 아내가 딸을 낳아도 남편과 시댁이 함께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해줄 것이라고 믿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무엇보다 베트남 법령상 유산 상속은 남녀 모두 동등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인식시키고 이러한 인식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뜩한(Hoang Duc Hanh) 하노이 보건청 청장은 “성별 불균형은 사회질서와 안보에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결혼 적령기의 남자 과잉과 여자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많은 남성이 독신 생활을 하게 되어 가족 구조가 무너져 미래 인구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응우옌주아뚜(Nguyen Doan Tu) 인구가족계획국장은 “이제는 강력하고 시기적절한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며 “출생 성비 불균형이 지속되면 향후 2050년까지 베트남에서 결혼 기회를 상실하는 남성이 230만~43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트남 정부는 성비 불균형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선정하고 시급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베트남 중앙당집행위원회는 최근 결의안을 채택하고 2030년까지 출생 시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09명 미만이 되도록 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설정했다. 최종 목표는 2050년까지 남녀 출생 성비를 자연 상태로 맞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건부와 교육훈련부, 노동부 등은 대대적인 캠페인과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우선 농촌 지역에서 여성과 소녀의 지위를 개선하는 지원 모델을 마련하는 한편 매년 젊은 부부는 첫째 태아의 성을 선택하지 않고 셋째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약속에 서명하는 것을 권장하기로 했다.
또한 각급 단위로 성평등과 출생 성비에 관한 세미나를 조직하고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에게는 출산건강관리, 가족계획 교육프로그램을 적용한다. 아울러 보건부는 법적인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각급 의료기관의 태아 관리운영 강화와 낙태 조항을 더욱 세분화하고 노년에 대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관련 제도도 준비하고 있다.
팜응옥띠엔(Pham Ngoc Tien) 노동보훈사회부 성평등부 국장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과거 1980~1990년대 한국이나 중국이 겪었던 사회문제가 베트남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생 시 성 불균형은 남아를 선호하는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서 비롯된다”면서도 “성비를 자연스러운 균형으로 만드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베트남은 항상 양성 평등을 국가 발전의 목표이자 원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