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순 담연 대표 “설 자리 잃어가는 한복…전통에 대한 자긍심 갖는 게 중요”

2021-12-06 06:00
담연의 옷이 전통스러운 건 형태가 아닌 자연스러움
원단 손수 염색…영화 ‘광해‘ 의상에도 사계절 담아
한류 연계 협업콘텐츠 지원사업 선정 해외시장 진출

 

지난 11월 30일 서울 강남구 담연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한 이혜순 대표  [사진=유대길 기자]


“오천년의 역사가 담긴 한복에는 선조들의 삶과 지혜,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치마와 저고리 등에는 놀랍게도 황금 비율이 쓰였습니다. 겨울 원단은 치마 안의 공기가 바깥쪽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 줍니다.”
 
이혜순 담연 대표는 최근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복의 디자인은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다”라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복을 입는 가운데, 시대에 따라 생활 양식이 바뀌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온 것이 한복이다”라고 말했다.
 
‘소중한 전통문화를 지키자’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대표는 ‘한복과 함께 하는 삶’을 택했다.
 
평소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것은 누군가에는 특별하게 생각되지만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 대표는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게 옷이다. 오천년 동안 내려온 옷인데 보고서 흉내내려고 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담연의 옷은 ‘전통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는 “담연 옷은 정말 개량이 많이 된 옷이다”라며 “담연의 옷이 전통스러운 것은 형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내가 계속 입으면서 지속적으로 조율이 이뤄진다. 오늘 시대에 대한 배려가 구조적으로 담겨있다. 이렇게 변하면서 후손들에게 전달이 되는 게 전통문화다”라고 평소 생각을 전했다.
 
대가들은 자연을 ‘그들만의 눈’으로 바라본다. ‘한국 단색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서보 화백은 지난 9월 열린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예술가는 감성의 파장을 포착해야 한다. 색채를 느끼고 자신의 색으로 해석해야 한다. 내 스승은 자연이다. 자연을 담은 색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은 다양했다. 먹기 좋은 홍시색 작품은 기분 좋은 햇볕처럼 따뜻하고 달콤한 느낌을 줬다.
 
담연의 한복을 보면 색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철학이라고 밝힌 이 대표는 “당당하게 담백하게 그 가치를 빛내주는 게 자연”이라며 “뛰어가든 걸어가든 기어가든 자연은 거르는 게 없다. ‘올해는 여름이 너무 길어’ 또는 ‘가을이 너무 짧아’라고 하지만, 감이 열렸다가 떨어지고 단풍이 붉게 물들고 떨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빼놓지는 않는다”라고 짚었다.
 
이 대표 역시 빛나는 자연의 색을 한복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겨우내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올라올 때의 그 나무 껍질 색이 참 묘하다. 말라죽은 것 같기도 하지만, 밑에서 생명이 막 움직이는 게 전해진다. 새벽 동트기 직전 하늘색은 위대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염색팀과 함께 자연의 색을 한복에 담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담연 한복의 모든 원단은 사람이 손으로 염색해 수백 가지 미세한 채도를 만들어내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담백하고 깊은 색상으로 표현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의상을 만들 때도 자연에서 색을 가져왔다.
 
한복의 색뿐만 아니라 재료 역시 자연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사계절을 담았다. 봄이면 한복의 색과 부피를 밝고 가볍게 해 태동하는 자연의 생기를 전한다.
 
여름에는 안동포, 삼배, 모시 등 마 껍질에서 만든 실로 옷을 짓는데, 이는 담연 한복의 주 소재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실로 원단을 짜고 따뜻한 솜을 덧대어 한복을 만든다.
 
이 대표는 “계절에 순응하고 자연이 주는 재료로 옷을 만들며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자연 회귀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30일 서울 강남구 담연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한 이혜순 대표  [사진=유대길 기자]

 
이처럼 전통을 지키고 있는 이 대표의 눈에는 전통이 사라지는 것도 더욱 확연히 들어온다.
 
이 대표는 “전통문화는 생활 속에서 변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이 단절됐다”라며 “조선총독부는 1934년 ‘의례준칙’을 만들어, 한복이라는 옷을 축소했다. 그 좋은 디자인의 옷을 다 묻어버리고 두루마기 하나로 표현하게 됐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이 대표는 “우리 것이 대단하다는 것보다는 이래서 안 좋아 저래서 안 좋아라고 교육을 시킨 게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바로잡는 교육을 안 했고, 그러면서 한복을 안 입었다. 일상 속에서 바뀔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디자인을 변형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입어야 한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입어보고 생활을 하는 것과 눈으로만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고름이 길어서, 치마가 길어서, 저고리 기장이 짧아서라며 조율을 들어간다”라며 “긴 고름은 내리면 정리가 되지만 짧은 고름은 정리가 안 된다. 오히려 국 그릇 같은 데 들어갈 수도 있다”라고 예를 들었다.
 
한복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결혼, 돌잔치에나 입는 예복이 됐고, 현재는 이마저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전통 복식과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한복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가운데, 중국의 일각에서는 한복이 자신들의 전통 의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일본 기모노와 중국 치파오는 한 디자인으로 내려왔다. 한복의 형태는 우리가 변화를 준 것이다.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대표는 “무엇보다도 전통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지만 이를 지키고 후대에 이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류와 함께 최근 전 세계인이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는 점은 긍정적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영향력 있는 한류 문화예술인들과 협업하여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한복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2021 한류 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담연은 이번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 대표는 “주제는 ‘상업적 전통’으로 정했다. 한복은 일상에서 입혀졌던 옷이다. 디자인이 다양하고 모든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가 들어간 옷이다”라며 “예전과 비교했을 때 문화도 달라지고 사람의 체격도 달라져 있기 때문에 그 비율조절을 하였는데 그 마무리는 우리의 전통 직물로 했다. 우리에게는 한복이 아름다워 보이고 품격 있어 보이게끔 함께 발달한 전통 직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한류 연계 협업을 통해서 요즘 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돼 좋은 시간이었다”며 “그들과 한복의 품격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뜻깊었다”라고 말했다.
 

’2021 한류 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담연 이혜순 대표가 만든 한복. [사진=한복진흥센터 ]

’2021 한류 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담연 이혜순 대표가 만든 한복. [사진=한복진흥센터]

’2021 한류 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지원사업’을 통해 담연 이혜순 대표가 만든 한복. [사진=한복진흥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