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CEO 라운지] 비서도 디지털로…진옥동 신한은행장의 '파격 DT 실험'

2021-10-23 07:00

지난 8월 30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신한은행 본점에서 화상회의로 진행된 '제1차 ESG 경영위원회'에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참석하는 모습. [사진=신한은행 제공]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디지털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을 핵심 기치로 삼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상품 판매 및 영업 현장뿐 아니라 일선 업무 전반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연임을 확정지으며 이례적으로 추가 2년의 임기를 부여받은 진 행장이 디지털과 관련된 '승부수'를 꺼내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진 행장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 "디지털전환 성공 여부에 조직의 명운이 달린 만큼, 전방위적 DT를 추진하기 위해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역량 개발에 자원을 집중하고 인재 영입의 문턱을 더 낮추겠다"며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에 최적화된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DT 최적화 환경 '수평적 조직' 만들기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진 행장은 최근 행장 이하 임원 비서실을 축소하고 해당 인력 전원을 전국 영업점으로 재배치했다.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과 업무 효율화를 위한 전략적인 판단에서다.

대신 부행장급 임원들에게 제공했던 비서 서비스를 디지털로 대체했다. 임원들의 업무를 돕고 일정 등을 관리할 일명 '디지털 비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부행장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업무 및 일정 관리 등을 손수 처리하고 임원들 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계열사인 신한DS에 요청해 임원들 전용 비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일부 디지털로 대체하기 힘든 업무의 경우 경영지원팀에서 보조한다. 지원팀은 현실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인력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일들을 전담할 예정이다.

수평적 조직 구축은 완전한 디지털금융 구현의 일환이다. 진 행장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 진 행장은 2019년 은행장 취임 당시부터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을 강조해왔으며 코로나19 이후부터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업무 프로세스 도입을 시도해왔다.

일례로 지난 8월 진 행장은 새로운 조직문화 정착 실험에 나섰다. 지점장 이상 리더들에게 집무실 문을 상시 개방하도록 권고한 것에 이어 임원실 내부 가림막과 커튼까지 철거했다. 현재 신한은행 6층 등에 임원 집무실이 모여 있지만 향후에는 일부만 남겨두고 부행장을 포함한 인원들이 각 층에서 실무진과 함께 일하도록 할 계획이다. 남은 집무실은 6개월씩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구조로 만들어 임원들의 개인 방은 없어진다.

진 행장은 임원과 직원 간 경계를 허물고 업무 능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이러한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직적인 조직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임원실 장벽을 허물어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결재와 회의, 상담 등에 이르기까지 직원과 임원 간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 절차에 보다 더 속도를 높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임원 직위 체계를 '부행장-부행장보-상무' 3단계에서 '부행장-상무' 2단계로 간소화한 데 이어 올해 2월부터는 시중은행 가운데 최초로 직급을 없앴다. 과장·차장 등 기존 직급 대신 부서마다 호칭을 자율적으로 정해 사용하도록 했다. 기존 직명은 '부장-부부장-차장-과장-대리-행원' 6단계였지만 '부장-수석-프로' 또는 '부장-매니저-파트너' 등 3단계 이하로 변경하고 호칭은 부서마다 자율적으로 정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조직개편을 통해 20개 사업그룹 안에 '디지털 혁신 랩(DI Lab)'도 만들었다. 사업그룹 내 디지털 전문가를 일종의 혁신 전담관인 'DI랩장'으로 선임하는 조직 개편 및 인사 발령을 냈다. 사업그룹은 부행장급 인사가 장(長)을 맡았다. 은행의 여신, 경영기획, 신탁 등 은행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 단위다. 빅테크(대형 IT기업)와 핀테크(정보기술) 기업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진 행장은 지난해 2월에는 DT 추진단을 통해 영업현장의 디지털 기반 혁신 사업을 발굴하고, 종이 없는(Zero Paper) 업무환경을 구축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주 진행되는 임원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한다. 옷차림이 사고의 유연성을 좌우한다는 생각에서 복장 자율화를 도입해 직급과 성별을 구분했던 유니폼을 없애기도 했다.
 
끝없는 DT 실험정신···디지털에 감성 녹인 지점 
진 행장이 그리는 디지털 영업 전략의 핵심은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다. 진 행장은 "고객 중심을 위해서는 디지털 역량과 함께 고객을 위한 휴먼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신한은행은 올 7월 디지털에 감성을 녹인 디지털 특화 점포 '디지로그 브랜치'를 선보였다. 서울 서소문과 신한PWM목동센터, 한양대, 인천 남동중앙금융센터 등에 지점을 열었다. 

디지로그 브랜치에는 '신한은행' 로고가 없다. 은행권에서 은행 이름 없이 서비스 브랜드만을 명시한 최초 사례다. 디지털 혁신단을 통해 최근 10년간 거래 고객을 분석해 최적화된 '고객 여정'을 설계했다. 컨시어지 데스크(고객 안내), 고객경험존(CX존), 컨설팅 라운지(고객 관계 강화) 등 3단계 여정으로 구성했다. 디지로그 브랜치 내 단순 업무 처리는 컨시어지에서 셀프뱅킹으로, 상담 업무는 100% 예약제로 수행할 수 있다. 또 인공지능(AI) 은행원을 배치해 화상상담을 통한 원격 업무수행으로 진행된다.

서소문점 CX존에는 나와 비슷한 성별, 연령별, 세대별 등 98개 고객군별 맞춤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보통사람 보통금융'과 성격유형검사인 16가지 금융 성향별 금융행태를 분석해주는 'SFTI' 등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향후 AI 음성로봇 SOLi(쏠리)를 통해 내년까지 콜센터 업무를 최대 50%까지 감축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진 행장의 특명에 따라 디지털 플랫폼(020) 구축 및 비즈니스 연계 추진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020 사업의 핵심은 별도의 음식 주문 플랫폼 구축뿐 아니라, 비금융 플랫폼 기반 혁신적 금융 비즈니스의 창출을 통한 금융 본업의 확장이다. 신한은행은 이를 통해 은행 독자적으로 얻을 수 없었던 비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뉴비즈(New-Biz)를 발굴하고 플랫폼에서 생성되는 비금융 데이터를 통해 금융 영역을 확장 추진할 방침이다.

또한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에 맞서 전사자원관리(ERP) 플랫폼 기반 기업 비즈 강화에도 경주한다. ERP 사업자인 더존비즈온과 제휴를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데이터 기반 고객 관리체계를 구축해 중견중소기업(SME) 시장 선점 및 미래 SME 디지털 금융 발전 기반을 확보하겠단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