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할까] 출품작 반 이상이 첫 공개...리움 ‘현대미술 상설전’
2021-10-15 06:00
회화·조각·설치 작품 총 76점 전시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휴관에 들어간 지 1년7개월여 만에 재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이 ‘현대미술 상설전’을 개최한다.
출품작의 반 이상이 리움 상설전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라 주목 받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리움미술관에서 ‘현대미술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 작품 총 76점이 전시됐다.
지하 1층의 ‘이상한 행성’ 전시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현실 너머를 표현한 작품들이 예술을 통해 관람객을 자유로운 상상과 사유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이어서 1층의 ‘중력의 역방향’ 전시는 빛과 움직임 등 비물질의 영역으로 확장된 작품으로 초현실적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이상한 행성’이라는 제목으로 꾸며진 이 전시실에서는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괴물, 기계 생명체와 같은 생경한 존재들이 부유한다.
전시된 작품들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 그리고 공존하는 존재들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마치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전시에서는 생태와 환경, 기계와 인간, 의식과 무의식 등 다양한 논의를 담은 작품들을 살펴 본다.
전시장 입구에는 모래 위에 누워있는 해골 뼈 위에 하늘거리는 홀씨를 가진 기계 생명체 최우람의 ‘쿠스토스 카붐’이 위치한다.
작가는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가상의 기계 생명체를 창조해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모색한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아니쉬 카푸어의 ‘이중 현기증’은 사물을 왜곡해서 반사하는 곡면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이다. 관람객은 작품 주변을 걸으며 조각과 상호작용하면서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혼돈을 경험할 수 있다.
‘이중 현기증’을 마주한 벽에는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일관되게 추구했던 이승조의 ‘핵 86-74’이 걸려있다.
원통형을 핵심 모티프로 하는 작품은 규칙적인 반복의 형태를 가지지만 관람객의 눈에 잔상을 남기며 무한히 팽창하는 느낌을 준다. 관람객은 단단하고 견고한 원통형과 부드럽고 모호한 띠의 결합에서 작품에 내재된 능동적인 리듬을 경험할 수 있다.
좁은 문 안에 위치한 볼프강 라이프의 ‘장소도 시간도 실체도 없는’은 꿀 내음을 풍기는 천연 밀랍으로 만들어져 후각을 자극한다. 따사로운 조명과 아늑한 공간은 관람객을 명상의 시간으로 이끈다.
코로나로 한 번에 한 사람만 작품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편안한 조명과 꿀 내음이 잠시나마 해외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건너편 천장에 걸린 노란 고치 형태의 작품은 아니카 이의 ‘완두수염진딧물’, ‘점박이 도롱뇽’, ‘푸른 민달팽이’이다.
기계음을 내뿜고 안쪽에 로봇 곤충이 날아다니는 이 작품은 마치 살아있는 기계를 보는 듯한 착각을 유발한다. 작가는 이처럼 유기체와 인공물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을 통해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전시장 가장 안 쪽에 위치한 이불의 ‘몬스터: 블랙’은 수많은 촉수 혹은 팔다리로 뒤덮인 유기적인 형태로 식물, 동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한 에너지와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품은 모든 생물학적 신체와 사회적 성(性)정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화된 유기체를 형상화하는 동시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암시하기도 한다.
<중력의 역방향>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리, 금속, 아크릴 등으로 구성된 작품은 재료 본래의 물성을 갖고 있으나 작품의 투명성, 빛이나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시간을 초월하거나 무중력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초현실적 감각을 자아낸다.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두 개의 육면체로 구성된 나와 코헤이의 ‘에어셀-A_37mmp’ 와 ‘에어셀-B_27mmp’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무한히 분열하는 세포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투명한 판 위에 규칙적으로 찍힌 수천 개의 점은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면서 변화무쌍한 패턴을 보여준다. 작품을 응시하면 벽과 바닥의 구분이 없는 흰 빛으로 가득한 방에서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로버트 어윈의 ‘무제’는 원반과 조명등만으로 구성된 단순해 보이면서도 매우 섬세한 작품이다.
원반은 조명등의 빛을 받아 클로버 형태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데, 이때 빛의 굴절로 인해 원반의 가장자리와 그림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 결과 원반은 우리 눈에 물질적인 실재감 없이 마치 환영처럼 비춰진다.
이 작품은 빛의 성질을 이용해 인간의 시지각을 실험하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검은 공백>은 전통 수묵화에서 현대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에 등장한 검은색을 다룬다.
검정은 죽음과 절망, 저항, 미지의 세계를 상징하고, 동양에서는 물과 북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에서 검정은 극단적 간결미를 드러내거나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세계를 그리는 색이기도 했다. 모든 빛이 흡수되어 사라져버린 검정에는 긍정과 부정을 넘나드는 폭넓은 상징과 의미가 가득하다.
전시장의 초입에 위치한 최만린의 ‘현(玄)’은 검은색의 조각적, 상징적인 구현을 보여준다.
작가는 검은 빛의 오묘함과 심오함을 담은 한자 ‘현(玄)’을 조각으로 형상화하여 서체의 생명력을 담은 한국적 조형을 탐구하고 우주적 깊이와 무한성을 담아냈다.
최욱경의 ‘레디와 백조’는 검은 잉크로 완성한 운동감과 작가 특유의 표현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리스 신화를 추상으로 표현한 대담한 시도에서 전통적 소재의 고착화된 해석과 표현을 탈피해 자신만의 시각을 제시하는 작가의 도전정신이 뚜렷이 드러난다.
작가들은 씁쓸함과 카타르시스를 남기는 ‘블랙 유머’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모순을 담아내기도 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풍자한 폴 매카시의 ‘설백(雪白) 난쟁이(행복이)’는 순진무구해 보이는 대중문화 캐릭터들의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일곱 난쟁이 중 가장 낙천적인 행복이를 검고 기괴한 형태로 구현하여 그 이면에 도사리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폭력성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