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세원그룹 삼부자의 4000억원대 배임혐의
2021-10-15 00:10
지난달 말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김문기 세원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두 아들에게는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두 아들 소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세원정공 등 세원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그동안 기업의 2세 승계를 위해 자녀들 소유의 회사를 세운 뒤 상장회사들이 취득할 이익을 자녀들 회사로 이전시킨다는 의혹을 사는 회사들이 많았다. 세원그룹도 그중 하나였다. 이후 항소심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유사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 세원그룹에서의 배임이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지 판결을 통해 확인된 사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원그룹은 일반에는 생소할 수 있지만 자동차부품 업계에서는 유명한 회사다. 세원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세원정공, 세원물산, 세원테크로 차체모듈을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1차 협력업체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미국과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그 협력사들도 함께 진출했다. 미국과 중국의 세원그룹 해외계열사들이 차체모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세원정공 등 주력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 차체모듈 및 단품, 조립설비, 금형, 제작공법 등과 관련된 상표권, 특허권, 지적재산권(Know-how) 및 제반 기술정보를 제공받아야 하고, 주력 계열사들 및 그 협력업체로부터 단품, 조립설비, 금형 등을 제공받을 필요가 있었다.
주력 계열사들은 협력업체와의 기존 관계를 바탕으로 해외계열사들에 CKD(반조립제품) 부품 및 조립설비, 금형 수출업무를 독점적으로 수행하며 매우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해당 수출업무는 소수의 인원만으로 수행할 수 있었으므로 다른 업체에 대행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수출업무는 자동차 차체모듈 및 단품, 조립설비, 금형, 제작공법 등과 관련된 상표권, 특허권, 지적재산권 및 제반 기술정보와 현대자동차 그룹 및 협력업체에 대한 영업정보 내지 영업력을 가지고 있는 주력 계열사들이 해외 진출의 높은 위험을 부담하면서 해외계열사들을 설립함으로써 창출한 사업 기회였다.
그런데 김문기 회장 일가는 주력 계열사들이 해외계열사들에 대한 위 수출업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게 되자 그 일가 소유의 회사를 별도로 설립하고 위 수출업무를 대행하도록 해 이익을 몰아주기로 했다고 한다.
김문기 회장 등은 주력 계열사들의 이사 및 대표이사이므로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위 회사들 이익을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위 회사들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도 있다. 세원그룹의 해외계열사들에 대한 위 수출업무를 기존의 주력 계열사들이 아닌 자녀들 회사에 의뢰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판단함에 있어 합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해 실질적으로 검토한 후, 이를 근거로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에 따라 주력 계열사들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결정해야 할 업무상 임무가 이들에게는 있었다.
그럼에도 김문기 회장 등은 위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수출업무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을 자녀들에게 몰아주기로 마음먹었고, 이에 따라 수출업무를 대행할 업체인 자녀들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자녀들 회사 명의로 위 수출업무를 대행하게 하고 수출업무로 발생하는 이익을 자녀들 회사에 귀속시켰다고 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자녀들 회사에 귀속시킨 이익을 검찰은 4236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법원은 위 수출업무를 통한 이익 전체를 김문기 회장 등의 업무상배임 범행으로 인한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얼마의 이익이 배임행위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수출업무는 자녀들 회사 설립 전후 모두 세원그룹 본사의 직원들이 실질적으로 수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수출업무 외에 자녀들 회사의 인사, 재경 업무까지 모두 주력 계열사들이 수행했다고 한다.
김문기 회장 자녀들은 주력 계열사들의 사업기회, 주력 계열사들 직원들을 이용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배를 불린 것이다.
반면 세원그룹 일가가 막대한 이익을 얻는 동안 상장회사인 세원정공과 세원물산을 비롯해 세원테크까지 주력 계열사들의 종업원과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세원정공과 세원물산의 주식은 위 배임혐의로 인해 2019년 7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거래가 정지돼있는 상태다. 거래정지만으로도 큰 피해인데 상장적격성 심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가 더 확대될 위험성도 크다. 주력 계열사들의 이익 감소는 임금과 복리후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력 계열사들의 종업원들도 결국 피해자다.
이와 같은 방법이 이용되는 것은 사실상 상속세나 증여세 부담 없이 아버지의 기업을 자녀들이 상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탈세로 이어지므로 이러한 배임행위의 피해는 해당 기업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재정을 부실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기도 한다.
세원그룹 이전에도 이미 수년 전부터 같은 방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상장기업들 중에서도 유사한 방법으로 배임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곳들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잠재돼있는 피해자도 많고 사회적 해악도 크다. 그럼에도 그동안 그런 기업인들이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듣기 어려웠다.
대구지역의 다른 자동차부품업체도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상장회사가 얻었어야 할 이익이 자녀들 개인회사로 이전하고 있었다. 소액주주들이 고발했지만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수사 끝에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배임혐의는 경영판단의 문제와 결부돼 있어 입증이 어렵다. 그래서 수사기관이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해야만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요즘은 대장동 사업으로 화천대유가 얻은 막대한 이익과 이를 둘러싼 정치권력, 사법권력의 부패혐의에 온 사회의 이목이 쏠려 있다. 세원그룹 같은 사례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돼왔고 의혹을 받는 곳도 많다. 그래서 화천대유 못지않게, 어쩌면 더 심각하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법당국이 보다 적극적인 의지로 다른 기업들도 수사해 유사 사례를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