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투기] 이해충돌방지법 해결책 될까

2021-09-18 08:00
내년 5월 시행…시행령 입법예고
법령 강화…위법 시 책임은 '글쎄'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법안 발의 8년 만인 지난 4월 29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법안이 뒤늦게 힘을 받게 된 데에는 올해 3월 전국을 강타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 영향이 컸다.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들도 다수 연루돼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특히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부(富)'의 척도로 작용하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워낙 오른 탓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내년 5월 19일 시행되는 이해충돌방지법은 이미 시행 중인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한 쌍으로 묶여 언급되기도 한다. 공직사회 청렴도에 대한 국민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 "LH·SH 등 공직자, 가족이 땅 사도 신고"
 

지난 3월 16일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들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10가지 행위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 공직자는 사전에 이를 신고하거나 피해야 한다. 미공개 정보를 통해 재산상 이익을 취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미공개 정보를 받아 이익을 얻은 제3자도 처벌 대상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이해충돌방지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다음달 20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친다. 시행령은 신고·제출, 제한·금지 의무가 효율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다.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부동산을 직접 취급하거나 부동산 개발업무를 하는 공공기관 공직자는 본인이나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 존·비속은 물론이고,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 사업지구 내 부동산을 보유·매수한 사실을 알게 되면 14일 이내에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시행령은 부동산 직접 취급 공공기관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새만금개발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포함한 16개 광역도시·개발공사를 지정했다. 공공기관 부동산 개발업무는 공공주택·산업단지 조성·도시재생·항만 재개발·역세권 개발 사업 등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근거 법률과 조문을 규정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을 직접 취급하는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 등 부동산 개발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 공직자들도 신고 의무가 생겼다.

사적 이해관계자 범위도 넓혔다. 공직자를 지휘·감독하는 상급자와 청탁금지법상 금품수수 허용 범위를 초과하는 금전거래가 있는 자(친족 제외), 비상임위원이었던 자로서 해당 공직자 안건을 심의·의결했던 자 등이 추가됐다. 공직자 직무수행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를 사적 이해관계자로 정한 것이다.

학연·지연·혈연·종교 또는 채용 동기 등으로 친분 관계에 있는 자가 직무 관련자여서 공정한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이해충돌방지담당관이 판단하는 경우도 해당한다. 해당 공직자는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하고 회피를 신청해야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소속 고위공직자나 고위공직자 배우자가 대표자인 법인과 수의계약은 원칙적으로 불가하지만, 특정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나 해당 물품 생산자가 1인뿐이어서 불가피한 경우에는 허용된다.

◇ 500만명 이상 영향권···"기존 유사 규정 법령 다듬어야"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해충돌방지법 대상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국회의원 등 약 190만명이다. 이들 직계가족을 포함하면 최소 500만명 이상이 영향권이다.

하지만 시행 시기에서 알 수 있듯 이번 LH 사태로 적발된 공직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헌법상 위헌 소지가 우려된 탓이다.

지난달 20일 기준 경찰은 LH발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총 4325명을 내·수사하고, 이 중 1727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 결과 44명이 구속됐으며 나머지 1683명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또 561명은 혐의가 확인되지 않거나 공소시효가 지난 이유 등으로 불송치·불입건됐다.

국회의원도 최근까지 전·현직 총 33명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들 가운데 7명은 무혐의 등으로 마무리됐다. 여야 모두 강도 높은 조치를 약속했으나 탈당 권유는 정말 '권유'에 그쳤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만 탈당을 선언하고,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사직안이 가결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가 하면 청탁금지법과 달리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도 이해충돌방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신 여야는 사립학교법과 언론 관련 법안에서 별도로 이해충돌방지 관련 조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해충돌방지법 시행과 그 내용에 있어 몇 가지 보완을 제언했다. 지난 5월 내놓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유사 규정들이 포함된 법령 간 중복이 없도록 기존 법령상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이 기존 부패방지 법령상 규정을 구체화하거나 적용 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방지 규정, 공무원 행동강령상 행위제한 규정 등이 해당한다.

아울러 입법조사처는 최근 '2021 국감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공직자의 암호화폐 거래도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무상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어 가상화폐도 일반 재산처럼 보유 현황을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현행 공직윤리 체계는 각종 이해충돌 방지 제도로 공직자의 재산적 이해충돌을 막고 있지만, 암호화폐 관련 제도는 미흡하다"라며 "암호화폐 보유 현황 신고, 관련 직무로부터의 제척·기피·회피 등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회는 국회의원이 본인·가족의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이해충돌 여부를 심사받도록 한 '국회법 일부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로써 국회의원은 일반 공직자보다 더 엄격한 이해충돌방지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